brunch

흔들려야 산다

사랑을 읽고, 쓰고, 삽니다.

by 아타마리에


내 삶은 여러 시기를 지나며 방향과 결을 바꾸어 왔다. 젊은 날의 나는 자기 계발서와 전공 서적을 붙들고 살았다.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삶을 추구했고, 남들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가는 것에 집착했다. 머리로 쌓아 올리는 지식과 성취야말로 인생의 본질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널뛰는 감정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었고, 이성적으로 설계된 삶만이 가치 있다는 조금은 오만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네 번의 출산과 한 번의 장례, 일련의 사고들을 겪으며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삶이 이성적 구조로 완성되거나, 이상향처럼 쌓아 올려 어느 순간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적어도 나에게 삶은 네가 틀렸다고 말하는 듯했다. 부딪히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는 그 혼란스러운 과정 속에서, 삶은 진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였을까. 최근 다시 펼쳐 든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이전과 다르게 읽혔다. 이성의 울타리인 수도원을 벗어나 자유와 감각, 예술과 감정을 통해 자기 실존을 확인했던 골드문트의 여정이, 이제는 낯설지가 않았다. 삶의 어느 순간부터 나 역시 지적 성장이 아닌 내면의 자유와 감정의 파도 속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균형을 찾아간다는 것은 고정된 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 찾아가는 것임을, 나는 책이 아닌 경험으로 배워야만 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전공 서적 대신 로맨스 소설을 집어 든다. 가족 여행을 떠나던 어느 날, 공항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우연히 집어 들은 콜린 후버의 책은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서야 몰래 읽어야 할 만큼 달콤하고, 격정적이며, 관능적인 그 이야기들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나 자신을 속여왔는지 깨닫게 했다. 내가 추구해 온 이상적 인간상, 이성적이고 절제된 모습 뒤에 숨은 진짜 나를 마주하게 했다. 여전히 낭만을 꿈꾸고, 격정을 갈망하며, 통제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흔들리는 한 인간을. 어쩌면 그 긴장과 흔들림이 한 인간의 삶이었다.


계몽적인 문장들 대신, 내 감정을 일으키는 이야기 속에서 얻은 깨달음은 의외로 단순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을 위한 기술이나 효율의 논리만이 아니라는 걸. 오히려 사랑이라는 거대한 파도,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격정이야말로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에너지가 아닐까. 사랑은 고통과 눈물로 다가오지만 동시에 기쁨과 창조의 원천이 된다. 우리는 그 파도 속에서 자신을 넘어서는 힘을 얻고, 타인에게 마음을 내어주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성은 삶을 세우는 기둥이다. 하지만 사랑은 그 기둥에 생명을 불어넣는 숨결이다. 지금도 내 삶은 이성과 사랑, 두 끈 사이에서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비로소 알게 된 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는 머리로만 쌓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흔들리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는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 속의 사랑을 읽고, 글로 사랑을 쓰고, 삶 속에서 사랑을 행하며 살려고 한다. 그것이 흔들림 속에서도 나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keyword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