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부 Oct 12. 2024

연애 5주년, 남자친구의 암을 알게 되다

2020년, 이 고약한 녀석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우리의 비슷한 성향 중 하나인 "센 고집"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의 것은 각자 결정했다.


서로에게 의견을 구하지 않는 한,

부딪히기만 하고 조율이 안되는 걸 알기에

서로의 성향이 같으니까 더 존중했다.


오빠의 허벅지에 큰 점이 하나 있었다.

만나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그 점은 점점 커졌고 모양이 이상해졌다.


나는 어디선가 TV에서

점의 모양이 이상하면

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기억이 났다.


"오빠, 점이 모양이 이상하면 암일 수도 있대, 병원 가보는게 어때?"

"에이, 이게 무슨 암이야, 어렸을 때부터 있던 거야"

"그래도 한번 가보자"

"됐어"


이 대화를 끝으로 난 더 이상 점 얘기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가장 후회하는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를 꼽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점에서 피가 나고 통증이 생겼다.

오빠는 암이라는 생각은 없었지만

피가 나고 아프니 이제야 병원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집 근처 점 빼는 병원을 여럿 가보는데

다들 거절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

그렇지만 2020년은 내가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오빠를 병원에 데리고 갈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다른 병원도 가보라는 말뿐,

크게 신경을 못썼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별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믿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다행히 점 전문 병원에서

점을 제거해 주고 조직검사를 해주겠다고 했다.

이때도 나는 보험회사를 다니는 친구가 있어서

암보험을 하나 가입하자고 했다.

내 남자친구는 실비도 하나 없는 무보험자였기 때문이다.

"암보험 가입했다가 아니면 해지하면 되잖아"

"귀찮아"


나도 그냥 넘어갔다.

오빠만 탓하기엔 내 탓도 있다.

우리의 두 번째 후회 포인트


나는 오빠와 싸우기 싫어서 그냥 넘어간 것이

지금 보면 꼭 싸우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닌 것 같다.


서로를 위하는 대화 방식이

꼭 필요한 것을 못하게 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주말에 같이 예능을 보며

지코바 매운맛이랑 틈새라면을 먹고 있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한번 오셔야 할 것 같다고,

그때부터 뭔가 여자의 촉이랄까

병원에서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병원 가기 며칠 동안 너무 긴장됐었다.


인터넷에서 매일 "악성흑색종"에 대해 찾아보고

매우 악성도가 높은 암이라는 말에 밤을 지새우고

오빠 몰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오빠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지, 못 사는데'

이 생각뿐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오빠의 병명은

"악성흑색종"이고

우선 큰 걱정하지 말고 큰 병원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오빠는 B형 간염 보균자로,

오빠가 다니던 대학교에

대학병원이 있기 때문에

그 병원으로 향했다.


사실 "악성 흑색종"은

매우 악성인 피부암이지만,

1기일 경우에는 제거만 하면 완치가 되는 암이다.


대학병원에서는 이미 제거했으니

좀 지켜보자는 말을 했고

1 기면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1기인 줄 알고

1년을 또 신나게 보냈다.


오빠가 가장 좋아하는 음주와 함께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