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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선과 악을 올려둔 천칭은 어느 쪽으로 쓰러지나.

by 후기록 Mar 2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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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어째선지 좀 아쉬웠어요.

물론 잘 만든 영화긴 했어요. 재밌었고, 의미도 있었죠.

그런데도 어딘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요즘은 '사연 있는 악당'이라는 게 참 많은 것 같아요. 악당도 하나의 캐릭터로서 그 캐릭터가 쌓아오는 서사가 관객으로 하여금 받아들여지고, 악한행동에 대한 이해. 뭐 쉽게 말해서 '그럴만하네'라는 이해를 동반한 애정을 받는 일이 많죠. 일단 악당이라서 매력을 사는 것도 쉬운데 거기에 이유를 덧붙이는 일이 되니까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대부분의 캐릭터는 그런 '사연'있는 행동들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연에 따라서 하는 행동들은, 나름의 개연성을 가지고 있고요. 특히 하나의 중심서사가 되는 영탁의 경우가 그렇죠. 우연찮게 대표가 되고,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정치체계를 구축하고.(그게 정말 필요했는가/옳았는가 는 차치하고) 자신이 위협이 되는 일들을 겪고, 자신과 자신을 따르던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한 몸을 내던지고. 아무튼 그런 개개별의 캐릭터빌딩에 대해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따지자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거기다 좋은 연기까지 얹어지게 되면? 캐릭터빌딩에 구멍들은 그 훌륭한 연기로 메꿔지게 되니, 이걸 싫어하기란 참 쉽지 않죠.


하지만 제가 이 영화가 꽤 불편한 지점은, 그런 악에 대한 고찰이 상당히 수준급인데 비해. 영화가 직접적으로 '옳다'라고 제시하는 선에 대한 묘사가 너무 부실하다는 거예요. 상기한 '사연 있는 악당'에 비해 선역의 사연은 너무나 비루해요. 이러한 악과 선의 개연성의 불균형을 느꼈을 때 저는 개인적으로 설명하려는데 노력하고, 더 많은 말을 하는 캐릭터 쪽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에 따른 행동들을 옹호하는 게 아닌, '캐릭터의 매력'이라는 부분에서) 선의 캐릭터로 대표되는 명화는, 그래요 솔직히 말할게요. 너무 게으른 캐릭터예요.


선이든 악이든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쉽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걸 설득하는 건 별개의 문제죠.  (마치 아이의 왜요?를 설명하는 일 같다고 할까요...) 특히나 선은 언제나 '악의 평범성'에 저울질당해야 하는 숙명에 올라와 있기도 하죠. 우리는 선에 이끌리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선에 도달하기까지의 끊임없는 선과 악을 구별하기 위한 배움이, 그 행동의 가치를 받아들일 이해가 더 나아가선 그 의지를 관철할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일이 선을 이루는 게 어려움이 되곤 해요. 하지만 더욱이 그렇기 때문에 그 선이란 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이런 선과 악의 저울질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캐릭터예요. 대표적으론 명화의 남편인 민성이 그렇죠. 본인의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타인을 배척하는 일에 고민하는 것. 결국 아내가 위험에 처하게 된 상황이 왔을 때, 민성은 스스로 악을 자행하는 자로 화하게 되기도 하고요. 다분히 사람답고,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행동. 우리는 그런 인간다움에 연민을 느낍니다. 마음이 동하는 일이고요.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점에서 선을 그리는 명화의 캐릭터는 게으르다고 생각해요. 목숨이 오늘내일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원래 착했다'라는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는 게 참 아쉽습니다. 잘 만든 악역을 만드는 일과는 별개로, 솔직히 말해서 악을 그리는 일은 쉽습니다. 누구든 원하든 원하지 않던 너무도 쉽게 자신과의 다름에 대해 선을 긋고 차별하는 일을 행하는 것처럼 악한 행동이란 너무도 쉽게 자행하곤 하니까요. 쉬운 일을 골라서 그걸 아주 잘 깎아내서 모양새를 좋게 잡아놓곤 (심지어 그게 악의 측면이고) 정작 마지막에 와선 우리에게 보여주고 하려고 했던 말이 사실 정말 어렵고 깊게 고찰해야 하는 부분이어야 했을 선을‘착하게 사십시오' 정도로 끝내버린다면 전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하긴 어렵겠습니다. 저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존재하면, 그것에 집중하는 게 좋은 말하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파트 사람들이 그렇게 해서 망했잖아? 악하게 행동해서 벌 받았다고 생각하면 반면교사도 될 수 있는 거 아냐?', '언제나 선을 선택할 수 있는 갈래는 있었어. 항상 악을 선택했을 뿐이지'라고 한다면 뭐 그것도 맞지만, 한편으론 크게 동의는 안됩니다. 악을 표현하는 게 선을 반증한다는 일이 된다는 건 절대 당연하게 연결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우리 대다수는, 어떤 게 좋은 행동인 것 인지 알면서도 무시하곤 하잖아요? 심지어 설득력이 있는 이유가 있으면 오히려 그 악이 당연한 걸로 받아들일 테고요. 어느 하나 다를 것 없이 아파트 주민의 한 명처럼 말이죠.


아무튼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요. 영화 전체의 완성도는 상당히 좋았고요. 디스토피아의 안전가옥 설정은 사실 흔한 편이긴 하지만, 그걸 우리나라에 적절하게 적용시킨 상황 설정도 나름 설득력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영화 자체에 오브제들 (황궁아파트와 드림팰리스, 바둑돌, 번데기캔 그 외 등등)의 의미들도 고찰해 보면 꽤 재밌겠다 싶었어요.


사실 명화가 결국엔 어떤 큰 역할로 존재해서 그렇지 명화를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들도 너무 좋았고, 주 조연들의 연기들 또한 너무 좋았어요. 너무나 잘 만든 집에 흠이 하나 있는데, 그 흠이 엄청 굵은 붓으로 안 어울리는 페인트를 방을 가로질러 쫙 그어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래서 그런 모든 장점들을 업고서도 애정이 별로 안 생기네요... 아쉬운 영화. 참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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