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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영겁 1

영겁

by ToB

아나톨리 페트로프 총괄 책임자는 72시간째 잠들지 못했다. 그의 눈앞,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에는 화성의 ‘아레스 발리스(Ares Vallis)’ 협곡에서 발신되는 정체불명의 신호가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분석은 불가능했지만, 단순한 잡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복잡한 수학적 상수와 양자적 요동이 뒤섞인, 명백한 ‘지성’의 흔적으로 느껴졌다.


인류는 마침내 외계 지성의 증거를 찾았지만, 동시에 절망적인 난관에 부딪혔다. 그 신호는 인류의 모든 AI와 슈퍼컴퓨터가 해독을 시도할 때마다 더욱 복잡한 형태로 변이하며 응답했다. 마치 인간의 논리 체계를 비웃는 듯했다.


“결과 나왔나?”


아나톨리가 쉰 목소리로 물었다.


“방금 ‘크로노스 7’ AI의 딥러닝 결과가 나왔습니다.”


젊은 분석가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결론은... ‘해독 불가’입니다. 신호의 패턴이 인간의 ‘직관’ 혹은 ‘의식의 비선형성’을 요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관제실에 침묵이 흘렀다. ‘직관’. ‘의식’. 기계가 아닌, 진짜 인간을 보내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아나톨리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15년 전의 기록 영상을 재생했다. 그의 손끝에서 홀로그램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가 재생한 파일의 제목은 ‘암스트롱 사고 기록’. ‘스캔-삭제’ 방식으로 전송되었던 우주비행사의 비극.


화면 속, 전송 포드에 들어서는 우주비행사의 얼굴은 공포와 희망으로 뒤엉켜 있었다. 잠시 후, 그의 육체는 원자 단위까지 완벽하게 스캔된 뒤 한 줌의 빛으로 소멸했다. 보고서의 문장은 건조했다.


‘원본의 성공적 소거 완료.’


장면은 6광년 떨어진 행성 케플러-186f의 재구성실로 전환되었다. 빛의 입자들이 춤을 추며 소멸했던 것과 분자 구조까지 동일한 남자를 빚어냈다. 심장이 뛰고, 폐가 호흡을 시작했다. 생물학적으로 완벽한 성공. 그러나 재구성된 존 암스트롱 2세는 눈을 뜨지 않았다. 그의 뇌는 살아있었으나, 그 안에는 어떤 의미 있는 활동도 없었다. 텅 빈 뇌파, 텅 빈 눈.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사본의 의식 형성 실패. 원인 불명.’


아나톨리는 영상을 껐다. 원인은 불명이 아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은 영혼 없는 시체를 우주 저편으로 배달했던 것이다. 아나톨리에게 그 영상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짊어져야 할 과학의 원죄였다.


그의 시선이 기록보관실의 유리창 너머, 거대한 격납고에 세워진 새로운 전송 게이트로 향했다. 우아한 아치 형태의 ‘싱크로-스트림(Synchro-Stream)’. 과거의 야만적인 기술에 대한 인류의 공식적인 사과이자, 새로운 희망이었다. 파괴가 아닌 연결. 복제가 아닌 이전. 이론적으로는 완벽했다. 뇌의 뉴런 하나하나를 목적지에 준비된 인공 뉴런과 양자적으로 얽히게 하여, 의식을 서서히 그리고 연속적으로 전달하는 방식. 이론상으로, 의식의 연속성은 완벽하게 보장된다. 하지만 아나톨리는 알고 있었다.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일 때, 인간은 늘 예상치 못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바로 그때, 문이 열리고 클라라 림 박사가 들어왔다. 현존하는 최고의 외계언어학자이자, ‘스캔-삭제’ 방식의 가장 강력한 비판론자였던 에블린 리드 박사의 유일한 제자.


“신호를 분석해 봤습니다.”


클라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AI가 실패한 이유를 알겠더군요. 저건 ‘정보’가 아니에요. 저건 ‘질문’이에요.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고 있어요. 기계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죠.”


아나톨리는 클라라의 통찰력에 감탄하면서도, 그래서 더 잔인한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맞소. 그래서 우린 ‘싱크로-스트림(Synchro-Stream)’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소. 기계가 아닌, ‘인간’을 보내야만 하니까.”


클라라의 눈이 커졌다. ‘싱크로-스트림’은 아직 단 한 번도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해 본 적 없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탑승자로... 박사님을 지명할 수밖에 없소.”


클라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녀의 스승, 에블린은 ‘성공적으로’ 유로파에 전송되었다. 그녀는 ‘스캔-삭제’ 방식의 가장 강력한 비판론자 중 한 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진보를 위해 그 기술로 목성 위성 유로파로 떠났고, 그곳에 ‘완벽한 복제품’을 남긴 채 지구에서 ‘사망’했다. 유로파의 ‘에블린’은 스승의 모든 기억과 지식을 가졌지만, 클라라가 알던 스승은 아니었다. 그 뒤로 클라라는 에블린과 모든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지금 진짜 에블린의 철학, ‘의식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믿음을 증명하는 것. 그리고 지금, 인류 최초의 진정한 외계와의 접촉을 완수하는 것. 그녀가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 소명이 눈앞에 있었다.


“... 기술의 위험성은 알고 있습니다.”


클라라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위험성?”


아나톨리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다른 영상을 켰다.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동물 실험 기록이었다. 연결 비율이 10%를 넘어서자, 침팬지는 극심한 혼란 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팔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연결이 50%에 도달했을 때, 침팬지는 모든 반응을 멈춘 채 긴장증(Catatonia) 상태에 빠졌다.


“우린 이걸 ‘영겁의 지연’이라고 부르기로 했소.”


아나톨리가 무겁게 말했다.


“의식의 일부는 지구에, 일부는 화성에 존재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물리적 시간 지연이 뇌를 파괴하는 거요. 당신의 생각과 감각 사이에 수 분, 어쩌면 수십 분의 심연이 생길 거요. 당신의 ‘현재’가 조각나는 경험이오. 그건...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고문보다 끔찍할 수 있단 말이오. 예측조차 할 수 없는 인지적인 장애가 뒤따를 수도 있소. 우리는 당신이 그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아니, ‘당신’이라는 존재가 유지될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소.”


클라라는 끔찍한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침팬지의 눈에서 자신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 고통이야말로 제가 가야 하는 이유예요, 아나톨리.”


“뭐라고?”


“그 ‘지연’이야말로 제 의식이 복제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살아있는 채로 4억 킬로미터를 여행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테니까요. 그 고통을 견뎌내고 저 신호 앞에 서는 것. 그것만이 그들의 질문에 대한 인류의 첫 번째 대답이 될 거예요.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이 고통마저 감수하는 존재’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확신이 담겨 있었다. 아나톨리는 더 이상 그녀를 설득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인류의 운명이, 한 여성의 철학적 신념과 그녀가 감당해야 할 미지의 고통에 달려 있었다.


전송 당일, 클라라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게이트 앞 대기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하얀 우주복의 질감이 낯설었다. 그녀는 품에서 낡은 데이터 칩을 꺼내 홀로그램을 띄웠다. 미소 짓고 있는 스승, 에블린의 모습이었다.


‘기억하렴, 클라라. 진짜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그 길 위에서 길을 잃지 않는 거란다.’


스승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길을 잃지 않는 것. 단순하지만 그녀가 반드시 해내야할 목표였다.


마침내 그녀가 게이트 중앙의 의자에 앉았다. 관제실의 두꺼운 유리 너머로 아나톨리의 굳은 얼굴이 보였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존경과 우려, 그리고 미지의 여정을 함께 떠나는 동지애를 담고 있었다.


반구형 헬멧이 그녀의 머리 위로 천천히 내려왔다. 시야가 차단되고, 외부의 소음이 완벽히 사라졌다.


[생체 신호 안정. 뇌파 동기화 준비 완료.]


중성적인 AI의 목소리가 헬멧 내부에서 울렸다.


[싱크로-스트림을 개시합니다.]


클라라는 눈을 감았다. 헬멧 안쪽에서 수조 개의 나노-프로브가 활성화되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녀의 의식은 이제 막, 인류 역사상 가장 길고 고독한 강을 항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목적지는 화성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미지의 질문, 그 자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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