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
연결 개시 후 1분 (객관적 시간).
클라라의 의식은 고요한 심해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외부의 모든 감각이 차단된 채, 오직 어둠과 침묵만이 존재했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온에 가까웠다. 그녀는 자신의 몸이 의자에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육체가 사라지고 그저 순수한 의식, 생각의 가능성 그 자체로 존재하는 듯했다.
[좌측 대뇌 피질의 0.01% 뉴런, 양자 얽힘 형성 완료. 신호 안정.]
AI의 목소리가 그녀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었다. 귀로 들린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그녀 스스로의 생각처럼 정보가 의식 속에 떠올랐다.
관제실의 거대한 스크린 위, 클라라의 뇌 지도에 작은 불꽃 하나가 피어났다. 아나톨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모든 데이터 스트림이 초록색이었다. 연결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첫걸음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이 여행의 공포스러운 부분은 첫걸음이 아니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클라라, 지금부터 인지 기준선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아나톨리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11분 뒤, 화성 기지의 서버를 거쳐 그녀의 의식에 도달할 터였다.
“30초 간격으로 차임벨 소리가 들릴 겁니다. 소리를 인지하면, 머릿속으로 파란색 정육면체를 그리고 ‘확인’이라고 응답해주십시오. 청각 인지, 시각적 재구성, 그리고 언어적 반응을 측정하겠습니다.”
얼마 후, 클라라의 의식 속에서 맑은 차임벨 소리가 울렸다. ‘딩-’ 하는 청명한 소리. 그녀는 즉시 머릿속에 완벽한 파란색 정육면체를 그렸다. 각진 모서리와 선명한 코발트블루 색상. 그리고는 편안하게 응답했다.
“확인.”
관제실의 스피커로 그녀의 또렷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크린에는 그녀의 뇌가 소리를 인지하고, 시각 피질이 활성화된 뒤, 언어 중추가 반응하기까지의 과정이 매끄러운 곡선으로 그려졌다. 반응 시간 0.82초. 완벽했다. 팀원들 사이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연결 개시 후 15분 (객관적 시간).
[연결 비율 1% 달성. 모든 시스템 안정.]
AI의 보고와 함께, 아홉 번째 차임벨이 울렸다. 바로 그 순간, 클라라는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딩-’ 하는 소리가 예전 같지 않았다. 소리의 시작과 끝이 아주 미세하게 늘어지는 느낌. 마치 물속에서 소리를 듣는 것처럼, 음파에 미세한 저항이 느껴졌다.
그녀는 파란색 정육면체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육면체가 한 번에 그려지지 않았다. 여섯 개의 면이 아주 미세한 시간차를 두고 나타나 조립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응답했다.
“확인.”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 목소리 사이에 투명한 막이 한 겹 생긴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반응 시간 0.95초.”
분석관이 보고했다.
“오차 범위 내입니다.”
아나톨리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오차 범위 내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균열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연결 개시 후 1시간 10분 (객관적 시간).
[연결 비율 5% 달성.]
스물세 번째 차임벨 소리가 울렸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맑은 소리가 아니었다. ‘디이이잉-’ 하고 쇠가 긁히는 듯한 날카롭고 불쾌하게 왜곡되어 있었다. 소리의 일부는 지구에서, 다른 일부는 화성에서 출발하여 그녀의 의식 속에서 충돌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란색 정육면체를 그리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에 나타난 것은 큐브가 아니라, 모서리가 녹아내리고 색이 번져가는 물감들의 이미지였다. 그녀의 뇌는 ‘파란색’이라는 정보와 ‘정육면체’라는 형태 정보를 더 이상 완벽하게 동기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확...... 인......”
그녀의 응답은 3초 뒤에야 관제실에 도착했다. 그것은 단어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신음에 가까웠다. 아나톨리의 얼굴이 하얗게 굳었다. 그는 마이크를 잡았다.
“클라라,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말해줄 수 있겠소?”
그의 목소리는 빛의 속도로 화성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클라라의 뇌 속에서, 그의 질문은 단어의 파편이 되어 흩어졌다.
‘상... 태... 는... 무... 엇... 을...’
클라라는 대답해야 했다. ‘괜찮다’고, ‘견딜 수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녀는 ‘괜찮습니다’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문장을 구성하는 뉴런들의 일부는 지구에, 다른 일부는 화성에 있었다. ‘괜찮’이라는 생각을 형성한 전두엽이, ‘습니다’라는 어미를 처리할 언어 중추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는 4억 킬로미터의 여정을 떠나야 했다.
관제실에는 1분간의 끔찍한 침묵이 흘렀다. 스태프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스피커만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스피커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가 들려왔다.
“...괜.........찮......”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의 의지는 ‘습니다’라는 단어를 완성하기 위해 여전히 우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연결 개시 후 2시간 5분 (객관적 시간).
[연결 비율 10% 달성.]
마흔 번째 차임벨이 울렸다.
클라라의 의식 속에서, 그 소리는 이제 의미 없는 소음의 폭발일 뿐이었다. 파란색 정육면체는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테스트의 내용조차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의식이 거대한 강물에 휩쓸려, 두 개의 서로 다른 강바닥 위에서 찢겨 나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관제실의 시계가 10초, 20초, 30초를 세고 있었다. 클라라의 응답은 없었다. 그녀의 뇌파 그래프는 더 이상 규칙적인 파형을 그리지 않았다. 지진계의 바늘처럼, 의미를 알 수 없는 혼돈의 선들만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문턱에 선 것이다.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을 지나, 얼어붙은 강의 중심으로 떠밀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나톨리는 거의 비명처럼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이미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져 가는 그녀에게 가닿지 못할 메아리일 뿐이었다.
“클라라, 정신 차리시오! 클라라! 응답하시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