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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내정자(The Designated)

내정자(The Designated)

by ToB

이 과정은 ‘존재론적 경로 최적화’(Ontological Trajectory Optimization)라 불렸다. 물리학과 정보이론, 그리고 약간의 형이상학이 뒤섞인 용어였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명확했다. 결정된 결론을 향한, 우주에서 가장 정교하고 낭비적인 형태의 순례(pilgrimage)를 완수하는 것.


프로토콜의 핵심은 '내정자' 원리였다. 수억 개의 ‘정보 운반체’(Information Carrier)가 동시에 방출되지만, 그중 단 하나만이 ‘수용체’(The Receptacle)와 공명할 운명을 지닌다. 나머지는 모두 그 하나를 위한 환경 조성자, 방해 요소를 제거하는 희생적 장막(ablative shielding),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선택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통계적 배경에 불과했다. 확률의 게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절대적인 결정론의 세계였다.


모니터를 통해 그들의 여정을 볼 수 있었다. 각 운반체는 고도로 압축된 '정보 제공자'의 연대기였다. 유전적 역사, 사소한 습관의 가능태, 실현되지 않은 모든 미래의 그림자가 그 안에 암호화되어 있었다. 그들은 단순한 생물학적 매개체가 아니라, 시공간을 항해하는 대리자들이었다.


“K-239가 현재 선두 그룹에 있습니다.”


통제실의 한 연구원이 보고했다. 하지만 ‘선두’라는 말은 무의미했다. 속도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핵심은 ‘공명’이었다. 수용체가 발산하는 미세한 양자 신호에 정확히 조응하는 운반체만이 통과 권한을 얻게 된다. 내정자는 가장 빠른 개체가 아니라, 가장 올바른 ‘열쇠’였다.


신입 연구원이 수석 연구원에게 물었다.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습니까? 어떤 운반체가 내정자인지.”


수석 연구원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알 수 없네. 우린 그저 최적의 조건을 설정할 뿐이야. 하지만 이론상, 그 운반체는 출발하는 순간부터 스스로를 알지. 자신의 존재 이유가 다르다는 것을, 자신의 항법 시스템이 나머지와는 다른 차원의 지도를 참조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고독한 확신일 걸세.”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니터 속에서 수많은 점들이 소멸해갔다. 매질(medium)의 화학적 변화에 의해, 혹은 무작위로 보이는 방어 기제에 의해 항해를 멈췄다. 하나의 운명을 위해 수억의 가능성이 소멸하는 이 과정의 본질에 대해, 프로젝트 내부에서도 철학적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프로토콜이 시작된 지 72시간이 지났을 때, 연구실에 조용한 알림음이 울렸다. 중앙 모니터에 단 하나의 단어가 깜빡였다.


INTEGRATED (통합 완료)


모든 것이 끝났다. 수억 개의 대리자 중, 단 하나의 내정자가 임무를 완수했다. 그것은 단순한 승리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보 제공자의 연장이자, 생물학적 불멸성이었다. 정보 제공자의 모든 과거를 품고, 누구도 가보지 못할 미래로 나아갈 유일한 존재. 모든 것을 위임받은 존재였다.


통제실 밖, 차가운 복도 의자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10년은 늙어 보이는 얼굴로 초조하게 자신의 손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수석 연구원이 문을 열고 나왔다.


“이진우 씨.”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절망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축하합니다. 방금 프로젝트가 성공했습니다.”


순간, 이진우의 세상이 멈췄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입을 막았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연구원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었다. 그는 통유리 너머, 회복실에 희미하게 보이는 아내의 실루엣을 보았다.


그는 모니터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그 빛나는 점을 떠올렸다. 위대한 임무를 완수한, 자신의 유일한 대리자. 고독한 확신을 품고 나아갔을 그 작은 영웅.


이진우는 나지막이 읊조렸다. 경이와 슬픔, 그리고 안도가 뒤섞인 목소리로.


“고맙다… 내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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