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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계기

by 예린 Mar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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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들이쉬고 내쉬면 되는 일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리만큼 낯설었다.     


‘입을 벌려야 하나?’

‘숨을 내쉬면, 몸속 공기가 다 빠져나갈 것 같은데?’     


숨 쉬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도, 다른 걸 떠올릴 수도 없었다.

마치 적막한 방 안에서

가전제품 돌아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릴 때처럼.

평소엔 들리지 않던 소리인데,

한 번 귀에 들어오고 나면

그 소리만 점점 커져서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처럼.


숨 쉬는 것이 그랬다.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어떻게 숨을 쉬는지가 중요했다.

중요한 생각이 생각의 전부가 되자, 숨을 쉰다는 게 점점 더 어려워졌다.


무심히 반복되던 숨이

의식하는 순간부터는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그렇게 과호흡이 왔다.


과호흡은 공황으로 이어졌다.

삶에 작은 균열이 생겼고

그 균열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숨 쉬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으니

그 외의 것들도 자연스러울 리 없었다.

하루를 채우던 일상들이 하나둘씩 멈췄다.

나는 일을 그만두었고

생활의 리듬도 조용히 꺼져갔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결혼한 30대 여성, 아이 없는 아내,

사회에서 멀어진 사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것들만 세고 있었다.


그 숫자가 많아질수록

나는 조금씩, 더 깊이 가라앉았다.


머릿속에선 같은 장면만 반복 재생됐다.

마치 고장 난 리모컨처럼.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았던 화면이

멋대로 틀어지는 것처럼.


그렇게 무기력하게 떠다니다 보면,

정말로 침대 밑으로 스르륵 영원히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내 상태를 처음 알아차린 것도 책 덕분이었다는 걸.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것 말고,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던 날.

누워있느라 하루를 다 흘려보내고,

시간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던 그 삶에서

나를 잠시라도 꺼내줄 수 있는 일.


그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 단단해질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 이 시간이 덜 쓰레기 같을까.

책을 읽으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동아줄처럼, 책을 펼쳤다.     


정확히 어떤 책이었는지,

어느 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오래전에도,

시간이 멈춘 듯 세상에 나 혼자인 것 같았던 날엔

책을 펼쳐 시간을 확인하듯 읽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때처럼.

살고 싶어서, 살아 있다고 느끼고 싶어서.

본능처럼 책을 폈다.


책은 조용했다.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지 않았고,

대신 아주 조용히 거기 있었다.

강요하지 않았다.

싫으면 덮었고,

마음에 닿은 문장은 여러 번 되새기며 읽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밑줄을 그은 문장들이

어딘가 조금씩 닮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버려진 나, 불안한 나.

그리고 책 속에서 그런 나를 발견하는 나.


뿌연 안갯속에서 자꾸만 늪으로 빠지던 날들.

영원히 침대 밑으로 가라앉을 것 같던 시간들을

책 속 문장들이 삶으로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내가 필요했던 말, 듣고 싶었던 말은

언제나 책 속에 있었다.


오시마 노부요리의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책을 읽다

이 문장을 만났을 때, 마음 한가운데를 관통한 것처럼 느껴졌다.  


“금세 불안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금세 불안한 사람은 불안해질 때마다 '자기 탓'을 한다.” (p.56)     


그 문장은 내 마음을 정확히 짚어주고 있었다.

불안한 사람은 자기 탓을 한다는 말.    

 

늘 스스로를 책망하던 나는,

자기애도 없는 모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불안이라는 감정이 

내 전부를 대신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해서 자기 탓을 하고,

자기 탓을 하니까 더 불안해지는 순환일 뿐이었다.

   

이 문장을 쓴 사람은,

나 같은 마음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나를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삶의 에너지를 모으듯 문장을 모으려 책장을 넘겼다.


조금씩, 나는 삶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숨을 쉬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고

책이 있는 도서관과 서점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나를 구해준 그 문장 덕분에.

그리고 또 다른 문장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 덕분에.


체력이 붙은 마음은

읽기만 하던 나를 조심스레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지금 이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나는,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되어갔다. 


문장 하나가 내 숨을 돌려주었고,

나는 그 숨을 붙잡아 쓰기 시작했다. 

아니, 쓰고 싶었다.


살아 있다는 건,

내 마음에 밑줄을 긋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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