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에 머무는 시간
읽지 않은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어느 날 문득 또 한 권의 책을 들여오게 된다.
책을 사는 이유는 무수히 많다.
책 제목이 유독 눈에 밟혀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와서,
아끼던 책의 개정판이 끝내주는 디자인으로 다시 등장해서.
하지만 처음부터 좋아하는 작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아끼는 책도 없었다.
그저 흩어진 내 마음을 바라보듯,
이 책 저 책을 펼쳐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방향도 기준도 없이 읽던 책들이,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오래 머무는 자리를 만들어주었고,
그 자리가 방향이 되어 나의 독서가 되었다.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몰랐던 시절이 있었다.
베스트셀러는 내게 늘 어딘가 맞지 않았고,
‘모두가 좋다’는 책이 나에게도 좋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저 숨 쉬고 싶어서 책을 읽기 시작한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했던 건,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내가 살아가기 위해 만나는 책이었다.
책을 만나기 위해 도서관으로 향했다.
책장마다 빼곡히 꽂힌 책들을 올려다보니
마치 수많은 인생들 앞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쯤에 내 마음을 건져줄 책이 숨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책들을 만나야 닿을 수 있을까.
막막하면서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가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처음엔 ‘심리’라는 글자가 붙은 코너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예민’, ‘불안’, ‘나를 사랑하지 않는’ 같은 단어들이
유독 나를 붙잡았다.
책등에 적힌 그 짧은 단어들이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먼저 알아채고 말을 거는 듯했다.
나는 그 단어들 가운데에서도 내게 맞는 다정함으로
말을 걸어주는 책들로 한 아름 빌려왔다.
어떤 책은 끝까지 읽었고,
어떤 책은 몇 줄만 읽다 덮었다.
어떤 책은 나를 다독였고,
어떤 책은 내게 상처였다.
읽고, 덮고를 반복하다 보니
나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감각이 생겼다.
기준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문장이 나를 위로해 주는가.
문장이 나를 알아봐 주는가.
나는 말투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랬고,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에도 말투가 있다.
문체라고 부르지만, 결국 그것도 말투였다.
조금 강요하는 듯한 문장,
지나치게 아는 체하거나 고압적인 문장은
현실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도망쳐온 세계에서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그런 책은 읽기도 전에
마음의 문을 닫게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을 지나면서도
나는 끝내 내 마음에 맞는 문장을 찾았다.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쓰여있냐에 따라
내게 닿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머물며
어렵게 만난 문장들이 소중해서
나만의 방식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밑줄을 긋고, 필사를 하고,
가끔은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 중
운명처럼 마음을 끄는 책은 특히 그랬다.
지금 찍어두지 않으면 놓칠 것 같아서.
하지만 사진으로 담아둔 문장들은
나중에 꺼내보지 않았다.
문장 사진을 정리하기에도 어려워서
어떤 책이었는지, 어느 페이지였는지조차 흐릿했다.
결국, 내 손으로 다시 써 내려간 문장이야말로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필사를 하며 독서를 한다는 건,
그 책을 아주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알아간다는 뜻이었다.
밑줄을 긋고, 머무르고,
가만히 오래 생각하는 일.
그건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방식과도
조금은 닮아 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한 문장에 오래 머물렀다.
“왜 이 문장이 좋았을까?”를 생각하며
문장을 곱씹다 보면
내 안의 감정이 함께 떠올랐다.
내가 몰랐던 마음의 결을,
문장이 먼저 알아차려 준 것처럼.
책의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마음에 들어온 문장 하나는 오래 남았다.
마음에 들어온 문장들은 별자리처럼 이어지며,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흔적이 되었다.
군데군데 끊어졌던 마음이
그 흔적을 따라가며 천천히 이어졌다.
마음이 이어지자, 드디어 묻고 싶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나와의 대화’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작가의 말: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고 싶어, 두 편으로 나누어 전해요.
조금 길어진 마음의 흐름은, 다음 글에서 이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