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4_티쳐, 냄새나요.
아닙니다. 매일 잘 씻습니다.
6세는 솔직하다.
특히 6세가 된 지 얼마 안 된 봄의 6세는 더더욱 그렇다.
돌려 말하기라 던 지, 포장이라던지, 빈말이라는 건 없다. 대부분의 경우에 없다.
9년 동안 아이들로부터 아주 날카롭거나 살짝 덜 날카로운 직언을 많이 들어왔음에도 여전히 잠깐 숨이 멎은 듯 청각을 제외한 모든 신경이 멈추는 순간들이 있다. 경험이 쌓이며 달라지는 건 당황한 티를 내지 않는 것뿐이다.
정규 수업이 끝난 오후, 마지막 방과 후 수업을 하러 교실 입구에 들어섰다.
티 없이 맑고 착하고 순수하고 밝은 꼬마 요정 N이 불쑥 나에게 다가왔다.
참 감사하게도, 매해 내가 맡은 반에 꼭 나에게 꿈과 희망, 위로가 되어주는 산소 혹은 선물 같은 존재들이 있다. N이 그랬다. 타고난 귀여운 곱슬머리에 하얗고 말간 피부와 귀엽게 볼록한 광대, 조그맣지만 야무지게 오물조물 말을 잘하는 아이다. 눈동자도 반짝반짝해서 가르쳐주는 대로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그런 아이다. 무엇보다도 배려할 줄 알고 이해심이 깊어서 친구들과 갈등이 거의 없고 선생님들의 말씀을 어기지 않는, 말 그대로 마음이 아름답고 성숙한 아이다. 단 한 번도 N에게 굳은 얼굴로 이야기하거나, 주의를 주거나, 갈등 해결을 위해 중재한 적도 없을 만큼 나에게 소중하고 또 소중한 존재다.
입학 전 N은 낯가림이 심했고, 내성적인 친구여서 자기표현을 잘 못해왔다고 N의 어머님께서 입학 전에 상담을 하셨었다. N을 볼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한 마디 한 마디를 더욱 귀 기울여 듣고, 매 순간 N의 표정을 살폈다. N의 작디작은 언행에도 최선을 다해 반응해 주고, 열과 성을 다해 자신감을 심어주었더니 어느 순간, 나에게 부쩍 다가와 마음을 활짝 열뿐만 아니라 원 생활에서 N의 태도가 달라져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N과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이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선생님인 나에게도 참 반갑고 고마운 소식이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목소리와 톤이 달라지고 행동에도 주저함이 없어진다. 우리 원에 다니며 달라지는 N의 모습을 보며 어머님은 나에게, 그리고 나는 N에게 늘 감사해했다.
그런 N이 불쑥 교실 문 앞의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티쳐, 냄새나요."
라고 반격할 수 없는 공격을 해왔다.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스친다.
'점심 식사 후에 아직 양치를 못해서 그런가?'
'오늘 땀을 많이 흘렸었던가?'
'아까 슬쩍 낀 방귀 때문인가?'
'우리 '집 냄새'가 별로인가?'
'평소에 향수를 안 뿌려서 그런가?'
등등 그동안 나의 게으른 삶의 패턴을 재빠르게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나는 9년 차 선생님이다.
전혀 타격받지 않은 척 평소와 똑같이 부드럽고 상냥한 높은 톤으로 정말 궁금하다는 듯이 되묻는다.
"그래~? 어떤 냄새가 나~?"
꼭 마지막 단어의 끝은 톤을 더 높이 올려야 한다.
눈웃음은 필수다.
"좋은 냄새요."
잠깐 멈췄던 숨이 쉬어지고 오감이 서서히 살아 돌아온다.
'됐다! 오늘은 살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깨끗하게 살게요. 양치는 바로바로 하고, 방귀도 퇴근할 때까지 참고, 옷도 자주 세탁할게요.'
6세 아이의 한 마디에 뭐 그리 크게 신경을 쓰나 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끼리의 대화는 생각보다 범위가 넓고 퍼지는 속도도 아주 빠르다. 성인 사회에서의 교내, 사내 소문이 퍼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니, 어쩌면 더 빠른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이런 대화 대부분이 학부모님들께도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나쁜 냄새, 지독한 냄새, 이상한 냄새였으면 나는 우리 반 혹은 우리 원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말 그대로 '냄새나는 선생님'이 될 뻔한 거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천사처럼 예쁜 표정과 옥구슬처럼 맑은 목소리로 나를 천국과, 지옥에 데려갔다가 다행히 지상에 다시 데려다준 우리 N은 고맙게도 마지막 말도 덧붙여주었다.
"선생님한테 코스모스 냄새가 나요."
그동안 코스모스에 큰 감흥이 없었던 나를 반성하며, 앞으로 코스모스를 발견할 때마다 고마운 마음과 아름다운 눈으로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코스모스가 어떤 향을 가지고 있는지 코를 대고 맡아본 적도 없지만, 좋은 향을 가진 꽃이라고 생각한다. N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다.
그리고 지금은 이사를 가서 만날 순 없지만, 우리 반 꼬마 천사 N이 매년 가을 코스모스 축제가 열릴 때쯤에 생각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