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현재 7세 아이들.
작년부터 유독 남아 비율이 높은 반이다. 아무리 성비를 맞춰보려고 해도 결국 돌고 돌아 다시 남아 비율이 높아지는 신기한 반이다.
내 인생에 없었던 남자복이 여기서 '남아복'으로 터지는구나 생각하고 있다.
사람이라고 하기엔 어설펐던 천둥벌거숭이 6세 시절을 지나 졸업을 앞두고 있는 우리 반 남자친구들.
엄마가 챙겨주시는 식사 도구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손으로 밥을 먹고, 이상하게 똑같은 책상인데 남자친구들 책상에서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연필과 색연필을 줍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해 늘 자진해서 서있는 벌을 섰던 시기를 모두가 치열하게 지나왔다.
이제 나름 선배미가 느껴진다. 후배들의 잘못된 행동에 옳은 잔소리도 할 줄 알고 멋모르는 한 살 동생들을 조용히 챙겨주기도 한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기도 하고 괜스레 찡하다가 울컥하기도 한다. 다행히 눈물은 안 난다. 이제 어지간해서는 눈물이 안 난다. 눈물 흘리는 건 그만뒀다.
동생들 눈에는 그저 멋있는 '곧 초등학교에 갈 형님들'이지만, 그만큼 더욱 멋져진 우리 아이들의 창의적이고 신박한 행동에는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한다.
등장인물 E, J, J*은 모두 남자아이들이다.
E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교무실에 있는 나를 찾아왔다.
"티쳐, 제가 넘어졌는데 J랑 J*이 제 몸을 위에서 눌렀어요."
일단 E가 다치지 않았고, 통증이 있는 부위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경우 E도 늘 사건사고의 중심에 있는 친구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질문을 해보니 이번에는 E가 잘못한 게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안 되는 거다. 제1번 생활 규칙이 다른 사람 몸에 손대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른 사람을 함부로 만지거나 아프게 하지 않기'인데!
2년 가까이 그렇게 열심히 강조하며 키웠는데!
넘어진 친구 몸을 위에서 눌.렀.다.니!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믿을 수 없었다.
2년 가까이 함께 하다 보니 내가 어떤 상황에서 가장 엄하게 이야기하고, 변명이 통하지 않고, 예외가 없는지 잘 알고 있는 두 J들은 이미 얼굴이 파랗게 되어 빈 교실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고 다행히 J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잘못을 인정했다.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대답을 못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J*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것은 제1번 생활 규칙에 버금가는 내 빨간 버튼을 누르는 일이었다. 거짓말이 시작되고 거짓말 실력이 늘어가는 7세 아이들에게 이 시기가 정말 중요하다. 거짓말은 옳지 않은 행동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지도하는데 그중 하나가 CCTV를 확인하는 것이다. 웬만한 거짓말은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판별 가능하여 대화로 해결하지만 이번 사건은 안전사고이기 때문에 꼭 반드시 확인해봐야 했다.
원장님, 실장님과 함께 CCTV를 확인했다. 사각지대와 가까운 부분이어서 여러 번 돌려봐야 했다.
먼저 E이 넘어지는 장면을 확인했는데 아무리 돌려봐도 왜 넘어졌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넘어짐이었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고 E가 뭔가를 잡아당기다가 놓친 것도 아니었고, 정말 말 그대로 혼자 가만히 서있다가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평소 E의 행동을 생각해 보면 혼자 넘어지는 게 이해가 전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위험하게 넘어지거나 넘어지면서 다른 곳에 부딪히지 않아서 안심과 동시에 웃음이 났다.
E가 넘어지자, 세상에 둘도 없는 그의 소중한 친구들 J들이 달려온다. 그리고 먼저 J가 넘어진 E에게 뭔가를 한다. 가슴에 손바닥을 대고 꾹꾹 누른다. 곧이어 J*도 똑같이 E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는 모습이 보인다.
장면을 포착했다는 안도의 마음과 동시에 아이들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냥 괴롭히는 것 같진 않아 보였고 반복적인 패턴과 박자가 느껴졌다. 찝찝한 마음에 여러 번 같은 장면을 돌려보았다.
갑자기 원장님께서 웃음을 터뜨리시더니
"J 지금 CPR 하고 있네! "
말씀하셨다.
역시 우리 원장님.
그랬다. J는 넘어진 소중한 친구를 살리려 CPR을 했고 J*는 CPR을 하다가 지친 J로부터 순서를 이어받아 같이 CPR를 했던 것이다.
원장님, 실장님과 빵 터져서 한참 웃다가 갑자기 제정신이 돌아왔다.
얘들아... 제발...
제발 이러지 마...
순간 여러 마음이 스쳤다.
친구를 살리려 노력한 그 마음을 칭찬을 해줘야 할지, 함부로 친구 몸을 눌러댄 행동을 혼을 내야 할지 고민하다가 다시 한번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자 불렀다.
교실로 들어오는 J의 손을 보고 혼을 내야겠다는 마음은 바로 접었다. 장난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본인도 모르게 CPR 손 모양을 하며 들어오고 있었다. 쫙 편 왼손 위에 오른 속으로 깍지를 끼고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꾹꾹 짚으며 의자에 앉았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세 친구들에게 CPR은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 차분하게 설명해 주고 친구가 넘어졌을 때 내가 해야 하는 행동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그리고 빨리 잘못을 시인하지 않았던 J*에게도 또다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반복되는 나의 하루하루를 언제나 기발하고 새로운 행동들로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나의 소중한.
얘. 들. 아...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