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아프다

그런데 해결방법은 모른다.

by 아름다운 관찰자

아이가 개방 병동에서 퇴원 후 집에 와서 A형 독감을 앓았고 곧이어 가족들의 전파로 백일해를 앓았었다. 백일해로 인해 하루 종일 기침을 하게 되면서 기침할 때마다 허리가 아프고 양말 신기도 힘들고 걷지도 잘 못하겠다고 해서 근처 신경외과에 가서 MRI 찍었는데 디스트가 터졌다고 했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고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서 그날 오후에 바로 내시경으로 빠져나온 디스크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저번 달에 큰 아이가 개방병동에 지낼 때 발작해서 난동을 자꾸 피우면 개방 병동에 못 있고 보호병동으로 가야 한다는 간호사들의 말이 거슬려 잠시 스스로 보호병동으로 갔을 때가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개방병동으로 다시 바꿔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 동시에 작은 딸이 백일해로 다른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는데 동생이 아프니 엄마가 옆에 있어야 해서 엄마가 개방병동에 함께 못 있으니 큰아이에게 잠시 그대로 보호병동에 있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아이가 창틀에서 떨어지는 자해를 두세 번 시도하였다. 개방병동으로 옮겨 달라는 자기의 요구가 들어질 때까지 자기 몸을 상하게 할까 봐 겁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작은 딸을 격리실에 혼자 두고 나는 큰아이에게로 갔었다. 그때의 충격으로 허리와 골반에 무리가 간 줄 알고 한의원 치료를 아이에게 권할 참이었는데 디스트가 터져 있어서 수술을 바로 하게 된 것이다.


수술은 내시경으로 하는 것이라 간단했고 아이는 바로 그다음 날 오전에 퇴원을 했다. 그전부터 난 무척 힘든 마음이 올라와 있었고 지쳐 있었기에 수술한 아이랑 같이 하루 병원에서 지내는 것만으로 답답하고 짜증이 올라온 참이었다. 밤새 잠을 잘 못 자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재촉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것도 못 참겠으면 간호사실에 다녀오라고 했더니 아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고 아이와 난 서로 치밀어 올라오는 감정들을 겨우 참고 퇴원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퇴원한 아이를 작은 딸과 함께 두고 난 바로 카페로 나가 혼자서 차를 마시며 기분전환을 하고 오후에 집으로 들어갔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나오는 존의 아내 알리샤처럼 소리 지르기 일보직전의 마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아이는 작은 딸과 공부하고 클라리넷도 무음으로 손가락만 연습하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잘 보내었다고 나에게 다가와 말했었다. 난 힘없는 목소리로 "잘했어. 잘 지내줘서 고마워" 하고 다음날을 맞았다.


다음날도 아이는 자기가 할 일들을 하며 잘 보내는 듯하였다. 수술 후 복대를 차고 되도록 누워서 안정을 취해야 하는데 아이는 공부를 앉아서 하던 중 백일해로 인해 기침을 하다가 갈비뼈가 뚝 소리가 나더니 숨 쉴 때마다 아프다고 했다. 다시 수술한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실금은 어차피 엑스레이상으로는 보이지 않고 실금이 갈비뼈에 생겼다고 해도 할 수 있는 특별한 처치가 없다고 했다. 그 길로 다시 집에 와서 좀 쉬다가 함께 강아지 산책을 나갔는데 아이는 무척 외롭다고 했다. 자기에게는 밝은 빛이 늘 있는데 자기 스스로 검은 우산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난 사람은 누구나 어쩔 수 없이 외로움이 있다고 했고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외로운 건 사실이라고 했다. 그 말에 아이는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간을 발로 차기 시작했고 현관에 들어오고 나서는 발작이 올라와 뛰쳐나가려 했다.


난 급히 작은 딸을 불렀고 언니 붙잡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작은 딸은 난동부리기 시작한 언니에게 화가 나서 고양이 던져 버릴 거라고 했고 아이는 동생에게 욕을 하면서 폭력을 행사하길래 난 정신 차리라고 등짝을 한 대 때렸다. 그랬더니 아이도 나에게 폭력으로 응수를 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못 참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뭘 그렇게 잘못을 했어?" "동생을 때리지 말고 엄마를 때려! 너의 분노가 풀릴 수 있으면 때려!" 그랬더니 엄마인 날 사정없이 때렸고 작은 딸은 말리느라 맞았고 난 동생을 때리는 딸에게 또 한대 뺨을 때렸다. 나와 동생을 향한 아이의 폭력과 저항은 그치지 않았고 난 병원에 다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직접 119를 부르려는 아이를 말리면서 회사에 있는 아빠한테 전화해서 집에 오라고 했다. 아빠가 오기 전 딸은 처방받은 진정제 아티반을 한꺼번에 열 알 이상 스스로 털어 넣고 나서야 잠잠해졌다. 그리고 자기를 입원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집에 있는 것이 너무 힘들고 자기가 난동 부리는 것도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그런 아이를 다시 보호병동에 보내는 것도 주저가 되었다. 분명히 보호병동 안 창틀에 올라가 떨어지는 행동을 할 것이고 수술한 허리가 온전할 리 없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생각하면 개방병동에서 엄마인 내가 함께하며 아이를 24시간 또 지켜보면서 생활하는 것이 최선이었으나 난 더 이상 아이 옆에 함께 있기 힘들었다. 그럴 에너지가 없었다. 정신이 나간 아이에게 구타당하고 세차게 뺨까지 맞은 나는 아이를 향해 다시 웃어줄 수도 없었다. 그리고 개방병동에서 다시 엄마랑 24시간 있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는 간절히 부탁했으나 난 이미 할 수 없는 상태였고 언니 일로 충격받은 작은딸도 엄마를 필요로 했다. 생각해 보겠으니 일단 자자고 했고 아이를 재웠다. 그런데 잠이 깨어 새벽 3시 일어나 공부하고 있던 딸아이에게 아빠가 허리에 안 좋으니 누워 있으라는 말에 다시 발작이 나서 창문 밖으로 뛰어내리려는 딸을 막으려는 아빠에게도 폭력을 행사했다. 한 시간가량 딸을 제압하고 있는 아빠도 힘들어 보여 어쩔 수 없이 딸에게 진정제를 다시 열 알 가까이 먹이고 날이 밝자마자 입원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교수는 없었지만 다행히 외래에 나온 다른 교수님이 아이와 면담을 하고 나서 보호병동 입원처방을 내렸다. 난 보호병동에 들어가도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면 수술한 허리가 무리가 갈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나의 말에 병동 간호사는 담당 교수님과 통화를 하더니 부모의 동반아래 개방병동 일인실에 입원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려 주었다. 마침 설연휴가 시작되어서 엄마인 나 대신 아빠가 일주일 동안 아이 옆을 지키기로 했다. 아이는 입원해서도 계속 난동을 부렸고 아빠는 아이가 하루에도 서너 번 이상 침대에 묶이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처음에는 아이의 소원대로 엄마인 나를 아이 옆에 보내고 자신은 명절 때 일하면 수당이 높으니 입원비를 감당하려는 마음으로 회사로 출근하려던 남편도 아이의 상태를 보더니 나에게 오지 말고 쉬라고 했다. 아이가 이제는 부모와 동생에게까지 폭력을 휘두르는 상태가 되었고 어찌 되었든 조절이 안되니 아이가 정신질환, 정신장애가 있다는 것을 우리 부부는 이번 일로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이 아프지만 서로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부부는 아이가 원하는 대학병원이 아닌 시설이 안전한 다른 2차 병원 보호병동을 알아보아야 할 것 같았다. 대학병원의 보호병동에서는 아이를 받기 꺼리는 눈치였고 창틀공사가 안되어 있기에 우리 입장에서도 보내기가 주저되었다. 그렇다고 대신 부모가 개방병동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위험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옆에서 하루 종일 지키고 있는 것도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그래서 담당 교수님이 전에 말씀하셨던 전기치료를 하기 위해 대구에 갈까도 고려해 보았는데 아이가 거절하고 있고 게다가 허리 수술을 받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주사치료를 한 달 동안 받아야 하는 문제가 또 걸렸다. 집에서 생활해 보니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부모의 눈치가 보이고 그 눈치가 견딜 수 없어 병동에 다시 가고 싶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병원을 그리워하여 입퇴원을 반복하는 것 이 모든 것 자체가 모두 아이의 병적인 증상이었는데 우리 부부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지원해 주고 사랑으로 대하면 심리적으로 회복돼서 아이가 일상생활을 잘할 거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은 아닐까? 일단 설연휴가 끝나 담당교수님이 병원으로 출근하실 때까지 우리는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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