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는 조사를 받기 위해 신분증을 지참하고 남부경찰서에 도착했다.
담당 수사관이 몇 장의 서류를 건네며 자필로 서명하고 사인할 것을 권했다.
"정지희 양과 이승후 군이 동거한다는 소문을 교내에 유포하고 다니셨나요?"
"저는 하늘에 맹세하지만 그런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소문을 들은 적도 없고요."
"여름 방학 끝무렵 도서관 앞에서 정지희 양을 만난 적이 있지요?"
"네 책을 빌리러 가다가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당시 정지희 양에게 교내에 이승후 군과 정지희 양의 동거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정지희 양에게 말하셨죠?"
"아닙니다. 절대로 저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지희 양이 저에게 이승후 군을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말을 듣고 도서관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소문을 들었다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소문을 들은 학생들과 저와 무슨 관련이 있죠?"
"학생들의 자유게시판에 글이 올라왔어요. 정지희 양이 소문 유포자가 홍마리 선생의 측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심하게 그런 일을 왜 하겠어요. 저는 그런 게시판을 알지도 못할 뿐 회원가입을 한 적도 없고 게시판에 들어가 글을 읽은 적도 없습니다. 저야말로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람을 찾고 싶군요. 글을 올린 학생들을 알 수 있을까요"
"익명 게시판이라 이름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임 00 양과 김 00 양을 아시나요?"
"아니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
" 두 학생이 정지희 양의 증인으로 조사에 응하였습니다. 정지희가 홍마리 선생이 교내에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녀서 매우 괴로워하면서 자신들을 찾아왔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증인이라고 하는 학생들도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정지희의 일방적인 말만 들은 거잖아요.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누군지도 모르는 추측일 뿐이고요."
수사관의 질문에 마리가 대답하는 형식으로 조사는 약 두 시간 정도 걸렸다.
마리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마리는 안나의 연구실로 갔다.
(홍마리) “안나야, 살다 살다 이런 경우도 다 있구나. 난 너무 황당하고 TV에나 나올법한 일을 당했어.”
마리는 조사를 받게 된 이유와 상황을 안나에게 설명했다.
(홍마리) "안나야, 너도 알잖아. 2학기 개강하던 날 너랑 점심 먹으면서 무슨 소문 들은 것 없냐는 너의 질문에 나는 전혀 없다고 말했고, 그날 너한테 처음 듣는 소리라고 했던 것 기억나지?"
안나는 말없이 듣고 있었다.
(홍마리) "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정지희가 고소인이고 난 졸지에 피의자 신분이 되어 허위사실 유포죄와 명예훼손죄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어. 안나야, 그때 우리 점심 먹을 때 내가 했던 말과 그런 일은 없었다는 내용의 소견서 좀 써주면 좋겠어."
마리가 안나에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그런 일은 없었다는 내용의 소견서를 부탁했다.
안나는 무거운 표정으로 듣고 있다가 마리에게 말했다.
(노안나) “사실은 나 며칠 전에 노교수님께 불려 가서 야단을 들었어.
강사가 왜 학생과 그런 술자리를 만들어서 이런 사단의 원인을 제공했느냐고, 노교수님 몇 년 후에 퇴직하시면 이제 내가 정교수 임용되는 것은 불 보듯 훤한데,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매우 유감이라고 하시더라. 난 이제 그런 일에 엮이지 않고 피하는 것이 내 신상에 좋을 것 같아”
(홍마리) “ 나도 이런 부탁 쉽지 않은데, 너 상황도 어려운 것 아는데 내 상황이 지금 황당하고 말이 아니라서 부탁 좀 할게.”
(노안나) “ 난 이제 몇 년 후면 교수 임용이 내 소원이야. 내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는 것도 포기했는데 혹시라도 이런 일로 내가 불이익을 당하여 교수 임용에 떨어지고 싶지 않아.
더구나 지금 나도 이승후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정지희 일까지 끼어들고 싶지 않다. 정말 미안해”
안나는 단호했다. 마리는 힘이 빠졌다.
마리는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할 말이 있는데...”
말을 잇지 못하고 우는 마리에게 오빠가 놀라서 물었다.
“ 무슨 일이야? 너 무슨 일 있구나”
“오빠... 나... 엉엉 흑흑”
“ 무슨 일인데... 울지 말고 말을 해 봐”
자초지종을 듣고 난 오빠는 화를 내는 듯 위로를 하는 듯 복잡한 감정이 묻어나는 말투로 말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너 학창 시절부터 안나랑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내가 당부했지, 내 언젠가는 이런 사달이 날 줄 알았다.”
“오빠, 나 너무너무 억울하다.”
“ 울지 말고 진정 좀 하고. 내가 좀 알아볼게. ”
“응...ㅜㅜ”
집으로 돌아 온 마리는 자리에 누워 며칠 동안 열이 나서 몸살을 앓았다.
열과 오한이 없어진 날 아침에 마리는 다시 수사관의 연락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