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 27화] 골목길을 따라오는 발자국

by U찬스


패밀리 레스토랑에 도착 후 안으로 들어가니 오픈 기념행사를 진행하고 있어서인지 동네에서 하는 가게 치고는 손님이 꽤 많았다. 찬희와 일행들은 직원이 안내해 주는 비어 있는 테이블을 향해 걸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자에 앉은 은영은 잠시 옆 테이블을 힐끔 쳐다보고는 앉아 있던 한 남자에게 아는 척을 했다.

"어머, 소장님. 여기 식사하러 오셨나 보네요."

은영의 밝은 인사에 남자도 같은 목소리톤으로 반갑게 인사했다.

"아, 네! 소장님. 여기 임대 계약 제가 해 드린 거라서요. 가게 사장님 얼굴도 뵐 겸 식사도 하러 왔어요."

어디서 많이 듣던 익숙한 목소리에 찬희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그가 누구인지 쳐다보았다. ​순간, 찬희는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얼굴을 또다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은 바로 진우의 군대 선임인 대박부동산 김병욱 소장이었던 것이다. 진우의 죽음에 간접적으로나마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만나기 싫었던 사람.

​못 본 척 얼른 눈을 돌려 피하려 했지만, 그 짧은 찰나에 김병욱 소장과 어쩔 수 없이 눈이 마주친 찬희는 고개를 끄덕여 그와 눈인사했다.
그 모습을 본 은영이 물었다.

"아는 분이야?"

"네, 저희 옛날 살던 집 거래해 주셨던 분."

​찬희는 김소장이 진우의 선임이었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은 자신의 기지에 일순간 놀랐다. 일행에게까지 그런 구구절절한 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 맞다. 소장님 옛날에 명성동에서 오셨다 했죠?"

은영이 김소장을 보며 다시 아는 체했다.

"네. 명성동에서 하다가 여기 4,000세대 입주장에 거래할 게 많을 것 같아서 얼마 전 이쪽으로 넘어왔죠."

자신의 일행과도 이야기를 나누던 김소장은 은영의 질문에도 흔쾌히 답한 뒤, 자신의 일행과도 다시 대화를 이어갔다.

​찬희는 김소장과는 더 이상 눈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맞은편에 보이는 모니터 화면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은영과 승기 보람 세 사람이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말은 거의 듣지 않던 찬희는, 은영이 자신을 부르는 바람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찬희야, 너도 맥주 할 거지?"

술을 마시면 자리가 길어질 것이라 생각한 찬희는 은영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전 병원에서 받은 감기약 먹어야 해서 맥주 대신 주스만 마실게요."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도 두리번거리며 가게의 분위기를 살펴보기는커녕, 여전히 앞만 우두커니 쳐다보던 찬희는 스파게티와 피자가 나오자 이번에는 고개를 숙이고 먹는 것에만 열중했다.

일행들이 주고받는 이야기에 고개 숙여 고개만 겨우 끄덕이던 찬희는 옆 테이블에서 한 번씩 들리는 웃음소리도 안 들리는 듯 자체 음소거를 했다.

그렇게 한참을 앞과 음식만 보며 일행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한참 흘러, 밝았던 가게 밖은 어둠이 짙게 내려와 있었다.

오랜만에 입은 원피스 때문에 추웠던 탓인지, 매장 폐점 준비로 그동안 신경을 썼던 탓인지 몸살기마저 돌기 시작한 찬희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야겠다 생각했다. 그러자 잊고 있던 약이 생각났다.

"맞다. 감기약은 먹고 가야지."

직원에게 물을 갖다 달라고 얘기한 찬희는 직원이 갖다 준 물과 함께 감기악을 털어놓고는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는 컨디션도 별로 안 좋고, 엄마한테 너무 오래 서후를 맡긴 것 같아서 먼저 좀 일어나 볼게요. 보람이 넌 계속 있을 거야?"

은영과 승기에게 아파트에 대한 설명과 퇴사 후 이야기를 듣느라 신이 났던 보람은 자신은 좀 더 있겠다고 하며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일어나 모두에게 인사를 마친 찬희는 세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가게 밖으로 나섰다.

가게를 나와서 차를 대어 놓은 아파트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골목길을 한참을 지나야 했다.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번화가가 아닌 동네 골목길을 혼자 걸어가야 했던 찬희는, 괜히 먼저 가게를 나왔나 싶어 약간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필 원피스와 맞추느라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온 자신도 원망스러웠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이런 쓸데없는 걸 신고 온 거야. 대체!'

이제 와서 자신을 책망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찬희는 신발이 벗겨지지 않도록 발에 잔뜩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때 왠지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아파트가 보일 거라 생각했던 찬희는 더욱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지만,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발자국 소리가 더 가까워질수록 찬희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뛰어 스스로도 주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찬희는 힘주었던 발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온몸이 공포감으로 휩싸여 그 자리에서 그만 멈춰 버렸다.

그때 바로 옆에서 사람의 숨결이 느껴졌고, 그 온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찬희에게 발자국의 주인공이 말을 걸어왔다.

"저... 찬희 씨."


발자국의 주인공은 김병욱 소장이었다.

찬희가 가게에서 나올 때 김소장도 잠깐 일어 나는 걸 보긴 했었지만, 화장실에 간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랬던 그는 화장실이 아니라 찬희를 따라온 모양이었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겁이 난다 싶었는데 아는 사람이 따라와서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한 찬희에게 김소장이 말했다.

"찬희 씨 저랑 잠깐만 얘기 좀 잠깐 할 수 있을까요?"

​찬희는 그가 왜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그의 표정을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무슨 일로.."

keyword
월, 수, 토 연재
이전 27화[소설 26화] 얼어붙지 않는 열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