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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6화] 다시 걷는 길

by U찬스


재활병원에서 퇴원한 찬희는 오랜만에 오게 된 집이 정말 아늑하게 느껴졌다.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편안함을 만끽한 찬희는 현관으로 나가서 목발을 집어들었다. 현관을 나서는 찬희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엄마가 찬희에게 말했다.

"어디 가려고? 혼자 가도 되겠어?"

목발에 몸을 의지한 찬희가 엄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 괜찮아. 엄마. 나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별 것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던 찬희를,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찬희는 대문을 열고 나와 집 근처에 있는 강이 보이는 산책로로 향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그곳에서는 다양한 새들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산책로 바로 옆에 펼쳐진 넓은 강을 보자 찬희는 이리도 평화로울 수도 있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 졌다. 이렇게 살아 돌아와서 멋진 자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음에 찬희는 너무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찬희는 이 광경을 음미하며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새들의 지저귐은 부드러운 음악처럼 귓가를 스치고, 강물은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햇빛은 수면 위에서 금빛 물결을 만들어 내며 찬란한 생명력을 뿜어냈다.

목발 때문에 오래 걷기는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강이 주는 상쾌한 공기에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 찬희는, 잠시 멈춰 서서 고개를 뒤로 약간 젖혔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 정말 자유롭다!"

강이 주는 신선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집으로 돌아온 찬희는, 병원에서 갖고 온 짐들을 정리하다, 자신의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명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병문안을 왔던 선희가 찬희에게 그 명함을 주며 말했었다.

"너 사고 났을 때 거길 지나가던 사람이 119에 신고해서 같이 병원까지 데려다줬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응급실에서 나한테 명함을 주더라. 너희 학교 대학 선배라고 하면서."


찬희는 선희가 건네주는 명함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이석훈..."

찬희는 자신이 사고 이후에 어떻게 병원에 입원하게 된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선희를 통해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응급실에서 너무 경황도 없었고, 그 사람도 명함만 주고 가길래, 나도 상세한 얘기는 못 들었거든. 아무튼 다행히 그 사람이 지나가다가 빨리 신고해 줬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했었잖아. 나중에 몸 좀 괜찮아지면 한 번 연락해 봐."

찬희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석훈이 왜 다시 고향에 내려온 것인지, 그리고 다른 곳도 아닌 그곳을 왜 지나가고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새해라서 부모님 댁에 인사드리러 온 거였나?'

하지만 명절도 머지않았을 텐데, 굳이 새해라고 부모님 댁에 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찬희는 명함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석훈의 이름 아래에는 '해뜰 막국수 대표'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잠깐 고개를 갸웃거린 찬희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음이 한참 울린 후에야 전화기 너머에서는 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선배, 저 찬희예요. 윤찬희. 잘 지내셨어요?"

찬희는 반갑게 석훈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 찬희야! 몸은 좀 어때?"

"선배 덕분에 입원해서 치료 잘 받고 있어요. 너무 고마워서 저희 언니한테 얘기 듣자마자 바로 연락드렸어요."

그러자 석훈이 뭔가 서두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인데 뭘... 찬희야, 지금 점심시간이라 손님이 많아서 길게 통화는 못하겠다. 퇴원하면 우리 가게 놀러 와. 내가 대접할 테니."

"어머. 바쁜데 미안해요, 선배. 아무튼 정말 고마워요. 퇴원하면 바로 찾아 빌게요."

​"그래, 찬희야. 회복 잘하고. 다음에 봐."

그렇게 두 사람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석훈의 가게는 장사가 잘 되는 모양이었다. 전화기 너머에서도 찬희는 가게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석훈이 어떤 계기로 식당을 하게 된 것인지는 퇴원 후 가게에 가서 직접 들어 봐야겠다 생각한 찬희는 자신의 가방 안에 명함을 그대로 넣어 둔 것이었다.


찬희는 명함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집에서 가깝지는 않은 거리였다. 하지만 자신의 차는 이미 폐차를 했기 때문에 탈 수가 없었다. 목발을 짚고 버스를 타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듯해서 택시를 타야겠다 생각한 찬희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병원에 데려다줬던 선배한테 갔다 올 테니까, 혹시라도 늦어지면 서후 유치원 버스에서 좀 받아 주세요. 그 안에 최대한 빨리 갔다 올게요."

​"그래, 너무 걱정 말고 다녀와. 그래도 생명의 은인인데, 인사하러 가는 게 맞지. 조심해서 잘 갔다 와."

"응, 걱정 마세요. 택시 타고 조심히 다녀올게요."

그렇게 찬희는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선 뒤 대기해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이윽고 찬희가 탄 차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찬희는 택시 문을 열고 목발을 잡아당겼고, 목발 끝이 차 바닥에 걸리자 잠시 멈춘 뒤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혹시나 넘어질까 싶어 조마조마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바깥공기에 약간의 불편함은 견딜만했다.

차에서 내린 찬희는 손님들이 줄을 서 있는 해뜰 막국수로 향했다. 열려 있는 식당 안에서는 학생일 때와 다름없이 우렁차고 힘찬 석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들과의 짧은 대화에서도 그만의 활기가 묻어나 가게 안은 생기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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