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는 맘카페와 독서모임에서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하고는, 찬희에게 강연을 요청했다. 지역의 소규모 모임에서 자신의 지나온 인생에 대한 이야기와 이를 헤쳐간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것이었다.
찬희는 자신이 그런 곳에 나갈 만큼의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싶어 고민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강연을 한다고?"
어찌 보면 별 것 없는, 또 어찌 보면 하찮기 그지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들으러 올 거라는 생각에 그녀는 떨리고 두려웠다. 하지만, 찬희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지, 뭐. 내가 얘기하는 게 어떤 사람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고, 관심 없는 사람은 그냥 흘러들어도 상관없으니까.'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그냥 좋은 경험 삼아, 재밌는 시간 보내고 오면 되겠다 생각한 찬희는, 강연에 응하겠다고 답했다.
강연 당일이 되자, 찬희는 강연장으로 향하며 손에 땀이 차올랐다. 땀을 살짝 닦으며 그녀는 생각했다.
'괜찮아. 평소에 사람들한테 얘기하듯 말하면 돼.'
이렇게 수도 없이 되뇌었지만, 심장은 북을 치듯 두근거려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강연장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수십 개의 눈들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자, 크게 숨을 들이 마신 그녀는 연단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담한 장소였지만 천장에서 빛나는 불빛들을 바라보자, 찬희의 긴장감은 고조되어 갔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은 찬희의 강연을 듣기 위해 조명만큼이나 반짝이는 눈을 하고 찬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기대에 찬 얼굴을 한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찬희는 자신도 모르게 파르르 몸이 떨려 왔다.
'떨지 말자. 윤찬희. 저분들은 매장에 들어오신 손님들이야'
면세점에서 근무할 당시 손님이 오시면 언제나 먼저 다가갔던 찬희였다. 그리고 매장에 들어오신 한 분 한 분의 고객에게 정성을 다해 서비스를 해 드리고자 했었다.
'여기에 오신 분들은 '나'라는 매장에 입점하신 고객님들이야. 그리고 지금 난 내 매장 최고의 히트 상품인 희망과 도전을, 최대한 알기 쉽고 친절하게 고객님께 소개해 드릴 거야. 내 안내를 받은 고객님들은 그들의 현명한 선택에 흡족해하면서, 마음을 담아 예쁘게 포장해 놓은 나의 상품들을 기분 좋게 받아 들고 집으로도 향하겠지.'
이렇게 생각하며 입장한 연단에서 찬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이제부터 빛나는 나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내 이야기를 듣기 위해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마음의 눈으로 느낄 수 있어. 이제 사람들에게 얘기하자. 칠흑 같이 어두워서 앞 뒤 구분조차 힘든 길일지라도 앞으로 계속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한 줄기 빛이 나타날 거라고. 그 빛을 향해 걷다 보면 알게 될 거라고.'
찬희는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제가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남편의 암 투병이 끝난 후였어요. 그 순간만큼은 저를 둘러싼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했습니다. 이후로도 실직,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저는 조금씩 무언가를 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것이 바로 하루에 몇 줄이라도 써 내려간 글쓰기였어요. 그렇게 쓰다 보니 어느새 책 한 권이 완성되어 있었고, 그 책으로 인해 여러분들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간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던 중년여성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이 강연도 제가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찬희는 얼마 전 책에서 읽은 글귀를 떠올리며 말했다.
"'가고 가고 또 가다 보면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하게 되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그저 한 걸음씩 앞으로 걸어가 보겠습니다. 언젠가 그 끝에는 찬란한 빛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객석의 박수를 받으며 연단을 내려오던 찬희는 결심했다.
'지긋지긋했던 운명의 굴레를 던져 버리고 그 누구의 눈치도, 그 누구의 간섭에도 굴하지 않고 오로지 앞으로만 나아갈 거야.'
무사히 자신의 이야기를 마친 찬희는 문득 깨달았다. 지금처럼 이렇게 묵묵히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앞길에도 찬란히 빛나는 날들만이 남게 되리라는 걸.
지쳐 쓰러지지 않는다면, 쓰러진다 해도 절대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나에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강연이 끝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출판사에서는 다음 책 기획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다는 뜻까지도 알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