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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44화] 혼자 서 있는 이곳, 일본

by U찬스


선희의 지점장이 책을 선물한 사람 중에는, 독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찬희의 책을 읽은 그는 자신의 채널에 찬희가 출연 가능한지를 SNS DM을 통해 물어왔다.​

지난번 강연을 계기로 좀 더 자신감을 얻은 찬희는 유튜브 출연에도 흔쾌히 승낙했다.

영상이 업데이트된 후, SNS와 출판사 이메일로 응원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어떤 이들은 책 덕분에 인생의 방향을 찾았고도 했고, 또 어떤 이들은 찬희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고도 했다.

이후로도 책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시작했다.

한국 내에서의 책에 대한 반향은 일본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고, 출판사에서는 일본 출판 이후 기념 사인회를 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외국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지만, 지금이야 그런 규제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인회 당일 찬희는 ​무사히 일본에 도착했다.
결혼 전 한 번씩 여행 왔던 일본은 오랜만에 와 보니 한국과는 사뭇 공기가 달랐다.

공항에 도착하자 비행기 한 대가 이륙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점점 높아지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찬희는 5년 전, 새해 첫날 진우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서후 때문에 멀리는 못 갈 테니, 가까운 일본에나 가자."

그때 진우는 웃으며 말했었다.
하지만 이제 혼자 이곳에 서 있는 자신이 왠지 모르게 허전하게만 느껴졌다.

'결혼 기념으로 오자던 이곳을 5년이 지난 이제야 오게 됐네. 오빠 지금 옆에 있는 거지?'

돌아올 수 없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 그였지만, 이후에도 영혼 만은 곁에 남아 자신의 인생을 밝게 비춰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찬희는 진우가 더없이 고마워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쳤던 위기들이 기회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놀라워하며 그녀는 사인회장으로 이동했다.

출판 기념 사인회장에는 자신의 책을 가지고 사인을 받으러 오는 독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한국에서 보던 독자들과는 조금 다른 외국 독자들의 모습은 낯설고도 신기했다.

하지만 그들이 책을 품에 안고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찬희는, 자신이 한국 사람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깜짝 놀랐다. 사람들의 인생살이란 것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찬희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들에게 간단한 일본어로 인사했다.

"하지메마시떼.(처음 뵙겠습니다.)"

그녀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면서 이 정도 일본어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자신은 이렇게 될 운명이란 것을 미리 직감해서 예전부터 일본어를 배우게 된 건가 싶기도 해서, 지나온 일련의 일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찬희는 독자들이 갖고 온 책에 일일이 자신의 이름을 사인해 주며 생각했다.

'그래 나는 윤찬희야. 엄마가 깜깜한 밤하늘에서 유난희 빛나는 별 꿈을 꾸고 지었다는 내 이름 유찬희. 지금까지는 내 인생에 잠시 먹구름이 끼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난 다시 찬란하고 빛나는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갈 거야. 꼭 그렇게 하고 말 거야.'

사인회를 마친 찬희는 잘 닦여진 일본의 도로를 택시를 타고 달렸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

이미 어스룩하게 해가 지고 있었고, 이윽고 어두운 밤하늘에서는 하나둘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유독 빛나는 별을 보며 찬희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는 글을 적어 나갔다.

"지금까지 나는 내게 주어진 운명에 질질 끌려만 다녔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하루를 살더라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생각한 것이다.

​힘들었던 날들의 연속이지만 어느 날 하나 내게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 속에서도 행운은 저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을 열고 행운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다가와 손을 내민다.

내가 마음의 눈을 뜨고 행운이 내미는 손을 기꺼이 붙잡는다면 그 순간 행운과 나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행운을 믿지 않거나 받아들일 준비조차 되어있지 않는 사람에게 행운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그런 세상은 여전히 살아갈 가치가 있는 곳이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풀 죽지 않는다.

앞으로도 나는 어떤 미래가 다가올지 기대감을 안고 하루하루 앞을 향해 걸어간다. 내 앞에 놓인 그 길은 결국 내게 준비된 길이다."

​노트북을 닫은 찬희는 일본의 상쾌한 밤공기를 만끽하고자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로비에 도착하자, 찬희의 앞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계 명품 브랜드로 치장한 사람이 지나갔다. 심지어 여행 캐리어까지도 럭셔리 브랜드였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면세점에서 명품을 판매하면서 고객들이 가진 재력을, 그들을 감고 있는 명품 하나하나를 모두 부러워하고 설레어했을 찬희였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여전히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그들이 그다지 부럽지 않았다. 또한 겉모습에 신경 쓰는 것이 자신에게는 이제 의미 없게 느껴졌다. 외형보다는 내면을 닦고 가꾸는 것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내 몸에 두른 명품이 아니라, 내 자신이 당당하게 빛날 수 있는 삶, 그거면 끝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잘 닦인 일본의 거리를 걸으며 찬희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나를 밝히는 것은 이제 내가 만들어 가는 거야. 내가 쓰는 글 한 줄, 그걸로도 충분해.'

그녀는 하늘의 별을 보며 미소 지었다. 마치 그 미소에 응답이라도 하듯, 별은 더욱 밝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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