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 그냥 흘려보낼 것인가 붙잡을 것인가

by U찬스


이 브런치북에 글을 쓰기 시작한 2024년 9월 중순, 여름의 열기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일기 예보에서는 낮 기온이 30도를 넘는 날이 계속될 예정이었다. 낮에 실외에서 일을 하다 보면 가을 햇살이 아니라 한여름이 뙤약볕이 그대로 느껴졌다. 마치 적도 부근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었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듯, 나는 망막색소상피증을 진단받았다. 현대의학으로는 완치가 불가능하지만,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자외선을 최대한 피하고 루테인 같은 눈 영양제를 챙겨야 한다고 대학병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영양제야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다지만, 문제는 자외선이었다. 병의 특성상 야맹증이 동반되기 때문에 선글라스를 끼면 명암 구분이 어려워 운전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결국 자외선이 차단되는 안경을 쓰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9월까지도 끝없이 이어지는 강렬한 햇볕을 막기에는 도저히 역부족이었다.


운전하거나 장시간 야외 활동을 하다 보면 눈의 피로가 심해졌다. 눈이 건강한 사람이라도 장시간 햇빛을 받으면 불편함을 느끼는데, 하물며 나는 누구보다도 눈을 아껴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야외 활동 후에는 눈에 뭔가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명암 구분이 더 힘들게 느껴졌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갈수록 여름이 더 길어질 텐데, 이렇게 가다간 앞을 못 보는 날이 더 빨리 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운 것은 책을 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볼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절박함이 나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나는 이제 책을 쓰기로 한 사람이 아닌가. 지혜가 부족한 나에게 책은 하루하루 배움을 이어가는 수단이었고,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것은 절망과 다름없었다.


물론 오디오북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을 볼 수 없다면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앱을 켜는 것부터 시작해서, 휴대폰이 켜져 있는지 꺼져 있는지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을 상상하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결국,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간을 알차게 사용할 수 있을까?

집안일을 하시는 분이라면 다 알 것이다. 집안일은 해도 해도 티가 나지 않고, 시간만 잡아먹는다는 것을. 피곤하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짧은 시간도 활용하려 했다. 주방에도 책을 두고 찌개를 끓이는 동안 집중해서 읽었다. 회사에서도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늘 손에 책을 들고 있었다.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시간 관리는 필수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어 써야 했다.


아침 8시~8시 30분: 아침 식사와 설거지

8시 30분~9시:집안 정리 및 세탁기 돌리기

9시~12시: 독서 및 글쓰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정해놓지 않으면, 쉬는 날에도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그냥 흘려버리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시간을 계획적으로 써야 했다.


어릴 때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흘러서 답답했다. 공부하기 싫어서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20대, 30대를 지나 50대가 된 지금, 시간은 시속 50km로 전속력 질주하는 느낌이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인생이라는 도로에서 마지막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항상 시간이 없다고 한다. 직장 일, 아이들 돌봄 등으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들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직장에서는 여유롭게 책을 볼 수 없고, 퇴근하면 집안일이 두 팔 벌려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잠깐의 여유라도 있다면 책을 손에 들어야 했다.


이제 아이들이 청소년이라서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 역시 해야 할 집안일이 끝이 없었다. 겨우 모든 일을 마치고 의자에 앉으면 빠르면 밤 10시, 늦으면 훨씬 그 이후가 되었다. 몸은 피곤했고,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지만, 그 시간이 아니면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켜고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이때는 집중력이 중요했다. 10~20분만 딴짓을 해도 금세 시간이 사라졌다. 너무 늦게까지 작업하면 다음날 근무에 지장이 생겼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근무하기 어려웠다. 체력이 방전되면 회사 일도, 글쓰기도 모두 지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늦게까지 작업하는 것을 피하려 노력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하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나는 오늘도 내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나의 꿈도 이루어질 거라 믿는다.

keyword
이전 06화아등바등? 나는 지금 즐기는 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