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대신한 나의 말
비가 내린다. 빗소리가 들린다. 한꺼번에 쏟아졌다가 잠시 멈췄다가 리듬에 맞춰 내린다. 고요한 밤이다. 누구에게도 연락오지 않는 그런 밤, 누구에게도 연락할 수 없는 그런 밤. 적막하고 막막한 밤. 그래서 늘 외롭고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 늘 그런 밤을 보내는 나. 주변에 사람이 많이 없어도 깊이 사귈 수 있다면 바랄 것도 없다.
봄밤의 이야기.
어린시절 만난 우리.
소문처럼 전해 듣는 너희들의 소식.
뒤엉킨 나에 대한 편견.
그러나 아직은 덜 여문 듯한 우리들의 동창회.
그날은 꼭 그랬다. 하나가 안 되면 모든 게 다 안 되는 그런 날. 사랑하는 사람과 다투고 헤어지자는 말까지 나온 날, 세 살짜리 조카가 나를 보며 뛰어오다가 넘어져 입술이 찢어진 날, 내려야 할 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몇 정거장이고 멍하니 타고 가던 날, 꼭 그런 날.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날. 몹쓸 친구가 소설을 시작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 정말 미치고 환장하고 싶은 날. 한국을 뜨고 싶은 날.
누가 누굴 탓할 이유도. 전에 사귄 여자에 대해, 남자에 대해 따질 이유도 없다. 우린 모두 다 똑같은 그렇고 그런 인간일 뿐이다. 자신만 상처받았다고,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투정부리는 다 그렇고 그런, 똑같은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