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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라해 Dec 29. 2024

슬픔의 들판에서 만개한 웃음

내 안의 슬픔과 화해하기


슬픔이라는 들판에서 웃음으로 만개했다.

슬픔의 들판에 서 있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알 수 없는 이 공간에서, 나는 발밑에 억지로 피어난 꽃들을 본다. 꽃들은 웃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기쁨의 웃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 웃음은 찢어지고, 갈라져 있었다. 마치 억지로 흘러나온 무언가를 눌러 담으려다 터져버린 형태 같았다. 꽃잎은 부서질 듯 얇고, 뿌리는 단단한 땅을 찢으며 뻗어 있었다. 그 모습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끔찍하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익숙했다. 이 들판은 오래전부터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은 늘 회색이었다. 들판 곳곳에 남은 상처는 오래된 전쟁의 흔적처럼 무성한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안에서 웃음이 피어났다. 웃음은 처음엔 희미한 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점들이 연결되고, 들판 전체를 뒤덮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희망"이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 수 있었다. 이 웃음은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숨죽이며 견뎌낸 슬픔이 스스로를 조롱하듯 피워낸 꽃이었다. 그 웃음은 슬픔이 깊을수록 더 환하게 만개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 같은 빛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찢긴 잎과 썩어가는 뿌리가 드러났다. 이 들판에서는 어떤 말도 의미가 없었다. 웃음은 더 이상 기쁨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이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하는 형상이었다. 꽃들은 아무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한두 개의 꽃잎이 흩어졌다. 그것은 비명을 삼킨 자국 같았다. 이곳에서 느끼는 공포는 단순한 황량함 때문이 아니다. 웃음이 가득한 이 들판에서 나는 더 깊은 슬픔을 본다. 꽃들은 피어나며 자신이 무엇을 이루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이 비극이다. 그 비극을 알면서도 나는 이곳에 서 있다. 들판을 벗어나지 못한 채, 꽃들과 함께 무언가를 기다린다. 무엇을 기다리는지조차 모른 채, 나도 그들처럼 웃음이라는 가면을 피워낼 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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