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하늘

by 시시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잠이 깼다. 새벽 1시 7분. 창밖은 어둠이 가득했다. 나는 화장실이라도 다녀오자는 생각에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굳게 잠가둔 방문 걸쇠를 풀었다.


'항상 그렇듯 지금쯤이면 어떻게든 잘 마무리되었겠지.'

속으로 중얼거리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거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빛에 적응하려 눈을 찌푸리자 거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온 광경은 내 예상과 달랐다. 아니, 최악을 상정했던 상상조차 비웃을 만큼 참혹했다.


거실 바닥에는 검붉은 빛의 액체가 흥건했고 어머니가 바닥에 나뒹굴고 계셨다. 그리고 그 옆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


몇년 전. 그때 나는 중학교 입학을 갓 마친 신입생이었다. 오늘도 다름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을 마치고 부엌으로 가면 어머니가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항상 맞이하는 아침의 상황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쭈뼜대며 식탁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는다. 밥을 먹기 시작하고 그릇을 반쯤 비웠을 때, 안방에서는 아버지가 나오셨다. 급하게 정장을 꿰입은 아버지는 식탁에 앉자마자 허겁지겁 숟가락을 드셨다.


아버지는 디자인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고 계시며, 어머니는 가정주부 이시다. 그 덕분에 나는 별 다른 걱정 없이 학생으로서의 본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학교 어느 교실에나 한 명쯤 있는, 부족함 없이 자란 중산층 아이가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그것이 나, 이하늘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순항 중이었고, 풍족한 삶덕에 가정에 불화는 없었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더할 나위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아버지는 쫓기듯 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셨다. 반은 씹지도 않고 삼키는 듯 보였다. 나는 꽤나 평안안 삶을 살고있다고 생각하나,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실까.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그의 생활이 여기저기서 들어났기에 조금의 죄책감과 감사함을 나는 항상 기억하려 애쓴다. 그렇게 금세 밥 그릇을 비운 아버지는 가방을 들고 현관으로 향하셨다. 서두르는 아버지의 등이 왠지 모르게 그늘져 보였다. 나는 내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반쯤 남은 밥 위에도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묵묵히 남은 밥을 마저 먹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가방을 챙겨 다녀오겠다며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집을 나섰다. 중학교에는 입학한지 아직 일주일이 되지 않았기에 등굣길 조차도 아직 낯설다. 길을 걸을때마다 느껴지는 어색한 교복의 감촉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는다. 내가 입학한 중학교는 버스로 30분이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에 나는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집근처에 있던 학교를 놔두고 굳이 먼 학교를 선택한 것인데, 초등학교를 나온 아이가 없었으면 하는 나의 바람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그 이유를 몰라 의아해하셨지만, 내가 처음으로 그들에게 부탁한 일이었기에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나의 들뜬 기분처럼 교실 분위기도 아직 어수선했다. 벌써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그저 자리에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교정이라도 한바퀴 걸으며 시간을 좀 더 때우다 들어올걸 그랬다. 눈을 질끔 거리며 1교시 교과서를 펼치던 사이, 앞자리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먼저 와 있었네."


하영우였다. 입학식 날, 나와 같이 교실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말을 걸어준 아이다. 일주일간 교실에서 가장 많이 대화를 나눈 상대이기도 했다. 영우는 가방을 걸고 의자를 뒤로 돌려 앉아서는 이야기를 마저 이어갔다. 어젯밤에 본 예능 이야기부터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아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나는 아무래도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편인 것 같다. 그동안의 삶이 그를 입증하는 증거이다. 부모님과의 사이조차도 나쁘지는 않지만, 어딘가 사뭇 어긋나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사실 영우의 태도는 반가우면서도 낫설어 꽤나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 항상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려 왔으나, 나의 바람을 완벽히 채워주는 이 사람은 대체 누구인걸까. 오히려 이루어짐을 바라지 않았던 소원이 이루어지니 믿기 어려울 따름이다. 그렇기에 나는 하영우를 이해할 수 없었다. 혼자 겉도는 내가 불쌍해서 아량을 베푸는 걸까. 아니면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즐기는 부류인걸까? 하지만 그런 의심 속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가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런 같잖은 계산을 하며 하영우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4교시가 끝나고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아이들은 모두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갔다. 지금 또래 아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노는것과 먹는 것 뿐이다. 그런 원초적인 본능이 강해질 시기라는 생각이 자아나자 사람도 결국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를 덮고 책상을 정한 후 주변을 둘러보자. 교실에 남아있는건 나 뿐이었다. 하영우도 이미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역시, 하영우가 친하게 지내는건 나뿐이 아니었다. 거짓말 같게도 약간의 질투심이 느껴졌다.


초등학교 때는 급식차가 있었기에 당번이 교실로 가져와 자기 자리에서 각자 밥을 먹었다. 그때는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모두에게 주어진 상황이 공평했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자 급식실이 있었다. 즉, 자리에서 공평하게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의미는 급식실에서 자신의 처지를 주변에 증명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혼자 앉아서 밥을 먹고 있으면 자신이 도태된 인간이라는 표찰을 이마에 붙이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표찰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텅 빈 교실에 홀로 남기로 선택했고, 배고픔을 잊으려 다시 책을 펼쳤다.


점심시간 종료 15분 전이되어 나는 그제야 급식실로 향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식사를 마치고 교실과 운동장으로 나간 시간이기에 급식실은 한산했다. 나는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배식을 받을 수 있었다. 금식실의 중앙이 비어있었지만, 나는 곧바로 중앙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안쪽 자리로 들어가 식판을 내려놓고 밥을 다소 급하게 먹기 시작했다. 마치 아침에 아버지가 밥을 드시던 것 처럼 나는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로 허겁지겁 삼켰다. 누가 그것을 보고있더라면, '소나기밥 왕자'라는 이명이 붙이지 않았을까. 교실로 돌아온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책을 들여다 보았다.


오후 종례 시간. 담임 선생님이 성적표를 들고 들어왔다.

"반장은 유인물 나눠주고... 아, 지난번 실력 진단고사 결과 나왔다. 한 명씩 나와서 확인해라."

아이들의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참고로 이번 1등은 이하늘이다. 너희도 좀 본받아서 책 좀 읽고 그래라."

순간 교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식은땀이 났다.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발끝만 쳐다보았다.


"와, 대박!" 하영우였다.

"꼴등은 하영우, 너다! 복도에서 뛰어다닐 때부터 알아봤다."

담임의 핀잔에 아이들이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관심은 영우에게로 옮겨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자, 영우가 의자에 팔을 걸친 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이하늘. 맨날 책만 읽더니 공부도 잘했네? 나중에 나 좀 알려줘!"


영우의 말에 나는 입꼬리에 힘을 주어 웃어 보였다.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슴 한구석이 간질거렸다. 하굣길 버스 안. 창밖 풍경을 보며 영우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도 기분은 들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다시 책을 읽는다. 책 읽는 것이 지겨워지면 다른 책을 읽었다. 독서는 병렬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키프 리스트의 말을 기억한다. 그렇게 3번째 책을 읽다 보니 아버지가 돌아오셨기에 현관으로 나가 마중 인사를 했다.

"다녀오셨어요."

"어 그래 하늘아."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나를 보며 살짝 밝아졌다. 분명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셨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의 노고에 감사하며, 자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을 다하려 노력했다. 어머니는 가정을 돌보고, 아버지는 생계를 책임지고, 자식은 공부하며 성장한다. 우리 가족은 톱니바퀴처럼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완벽하게 화목했다.


저녁 식탁.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하늘아, 학교생활은 어떠냐."

아버지가 침묵을 깼다. 평소라면 괜찮다며 넘겼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번 시험에서 1등 했어요. 그리고... 친구랑 같이 공부하기로 했어요."

자주 하지 않는 내 얘기에 부모님의 눈이 커졌다. 두 분은 흐뭇하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셨다. 그렇다. 우리는 첫 단추가 조금 어긋났을 뿐, 지금부터 다시 맞춰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하늘은, 정말이지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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