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장에서 꺼낸 얇은 책 한 권을 무릎 위에 펼쳤다. 큼지막한 활자와 아기자기한 삽화가 어우러진 동화책이었다. 겨울잠에서 깬 여우 가족이 봄나들이를 떠나는 이야기. 지면 위에는 파스텔 톤의 따스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아기 여우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걷고 있었다.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일까. 나는 활자 너머의 여우를 응시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삶의 태엽을 맨 처음으로 되감는다면, 과연 어떤 풍경에 멈춰 설까. 동화 속 여우처럼 가족과 함께한 나른한 오후일 수도, 처음 마주한 숲의 푸르름일 수도, 혹은 갈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며, 기억의 서랍에 소중히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보곤 한다. 비록 오래된 종이처럼 색이 바래고 가장자리가 닳아 없어질지라도, 그들에게는 옮겨 적을 수 있는 원본이 존재한다. 그래서 그들은 사진을 찍고, 물건을 남기고, 글을 쓴다. 망각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니까.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기억이 녹슬거나 부서진 것이 아니다. 애초에, 부재(不在)했다.
내가 닿을 수 있는 기억의 가장 밑바닥은 컴컴했다. 마치 처음부터 텅 비어 있는 서랍처럼, 나에게는 그리워할 단 한 조각의 파편도 없었던 것이다. 자아라는 것이 싹트고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여 인식했을 때, 이미 나는 이곳에 있었다. 누르스름한 냄새가 배어 있는 익숙한 시설, 조금은 해진 옷을 입은 아이들, 그리고 선생님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굴러떨어진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모두가 그저 나를 '장민영'이라 불렀기에, 그 소리를 입어 자신의 껍질로 삼았을 뿐이다. 덥수룩한 검은 머리, 또래보다 작은 키를 가지고 소파 구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소년. 그것이 바로 나, 장민영이라는 사람이었다.
이곳 한빛 보육원은 나의 집이자 장민영이라는 사람을 이루는 세상의 전부였다. 그렇기에 누구나 이렇게 사는 것이라 생각했다. 태어나면 시설로 보내지고, 이곳에서 단체 생활을 하며 자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가정의 형태를 보며, 그 울타리가 나의 세계에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임을 알게 되었으나, 그렇다고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슬프지도, 부당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 상실감도 없었던 것이다. 가정이란 그저 닿을 수 없는 추상적인 것, 혹은 동화책에서나 등장하는 마법 같은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자면 나는 욕심이 없었다. 정확히는 무엇을 바라야 하는지 몰랐다. 친구들과 보내는 나른하고 지루한 보육원의 하루. 아무런 사건 없이 흘러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들. 나는 그 권태로운 평화가 영원하기를 바랐다.
오후 6시. 한여름의 해가 천천히 붉은색으로 물들며 황혼이 지고 있었지만, 하늘은 아직 밝았다. 나는 무릎 위의 책을 덮고 창밖을 응시했다. 지구는 돌기에 해는 뜨고 지며, 달은 차고 기운다. 그 섭리를 알면서도, 나는 항상 저 태양이 조금만 더 하늘에 머물러 주기를 기도했다. 어둠이 찾아오면 어딘가 불안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작 일곱살 남짓이었지만, 습관적으로 죽음을 시뮬레이션하곤 했다. 기억의 시작점이 없으니 그 끝이라도 붙잡고 싶은 본능적인 발버둥이었을까. 상상 속에서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죽었다. 젊은 날 교통사고로 허공을 날기도 하고, 백발노인이 되어 병실에서 고요히 눈을 감기도 했으며, 길을 걷다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시나리오든 결말은 끔찍하고 차가웠다. 밤이 되면 그 금단의 사고실험이 부작용을 일으켜 식은땀을 흘리게 했다. 죽는 것이 너무나 무서웠다. 가능하면 늦게, 아프지 않게. 아니, 가능하다면 애초에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죽음도 없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아쉬움을 머금고 수평선 아래로 사라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작별을 고했다. 그러다 문득, 반대편 하늘에서 떠오르는 것이 있어 나는 걸음을 옮겼다. 태양이 사라지는 것과는 반대로, 그곳에는 점점 선명해져 가는 달이 떠 있었다. 나는 달이 좋았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홀로 빛을 내기 때문에. 제 모습이 계속 변하지만, 늘 같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나는 달을 올려다보며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달에는 월인(月人)이 살고 있단다."
그것은 표진영 선생님이 해주신 이야기 중 하나였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선생님은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같았다. 하늘이 파란 이유부터 아스팔트가 검은 이유까지. 세상을 알고 싶은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선생님은 막힘없이 대답을 들려주시고는 했다. 월인 이야기 역시 어느 아이의 엉뚱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선생님, 달은 왜 모양이 계속 바뀌나요?"
선생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달에는 월인이라는 사람들이 살고 있거든. 그들은 치즈로 만들어진 달을 깎아 먹으며 살아가.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달이 점점 얇아지는 거야."
"그럼 달이 다 없어져 버리면요?"
"그래서 하느님이 매달 달을 다시 채워주시는 거란다. 월인들이 굶어 죽지 않게."
물론 말도 안 되는 동화였다. 그때 영리한 아이 하나가 핵심을 찔렀다.
"그럼 왜 우리는 월인을 볼 수 없어요?"
그때 선생님은 잠시 침묵하더니, 평소와는 다른 낮고 비밀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선 다툼이 있었단다."
선생님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의 원주민을 학살했듯, 지구인과 월인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는 것. 결국 살아남은 월인들은 지구인들과 평화 협정을 맺었고, 지구인을 피해 달의 뒷면으로 숨어들어 다시는 지구 쪽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것은 비현실적이었지만, 동시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보육원 아이들은 그 잔혹한 동화를 숨죽여 믿었다. 물론 나도 그랬다. 아니, 나는 그 이야기를 믿고 싶었다. 지구에서 환영받지 못해 달의 뒷면으로 쫓겨나 빛이 닿지 않는 춥고 어두운 곳에서 숨죽여 살아가는 그들의 처지가, 마치 세상의 뒷면인 이곳 시설의 나와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달을 볼 때마다 상상한다. 저 차가운 달의 뒷면 어딘가에서, 우리와 같은 표정을 하고 숨죽여 지구를 바라보고 있을 나의 동족들을. 어쩌면 나도, 이곳이 아니라 저 달의 뒷면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공상을 마친 나는 거실로 향했다. 이 시간은 선생님이 책을 읽어주는 시간이다.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은 나의 뒤로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나는 달도 좋고 선생님도 좋았지만, 책이 가장 좋았다. 선생님이 종종 들려주셨던 말이 있다. '아는 것은 힘이다.' 그 말은 나에게 조금 다르게 들렸다. '모르는 것은 허약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무지(無知)를 이기기 위해, 나는 지식을 탐식했다.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이 좁은 보육원을 벗어나 아라비안나이트의 사막을 횡단하고, 양철북을 치며, 어린 왕자의 별을 여행할 수 있었다. 독서는 나에게 유일한 구원이자 도피처였다.
오늘도 나는 활자의 바다에 푹 빠져 여행을 떠났다. 눈앞에 펼쳐진 끝없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꿈같은 자유도 잠시. 나를 차가운 현실로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질문 하나가 거실의 공기를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