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토 나오토

by 시시현



툭.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 턱 끝에서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물론 실제로 들린 소리는 아니다. 그저 바닥에 떨어져 번지는 땀 자국을 보며 소리를 상상했을 뿐이다. 잠시라도 이렇게 멍하니 있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갈색빛이 도는 덥수룩한 머리칼, 귀를 덮어 답답해 보이는 인상. 왜소한 체구에 늘어진 회색 근무복을 걸치고 화장로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남자. 그게 바로 나, '사토 나오토'라는 인간이다. 바깥은 살을 에는 겨울바람이 불지만, 이곳의 공기는 기이할 정도로 따뜻하다. 24시간 돌아가는 화장로의 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지만, 동시에 가장 차가운 죽음이 머무는 곳. 나는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


내 업무는 단순하다. 병원과 장례식장에서 실려 온 관을 받아 화장로에 밀어 넣고, 점화(點火) 버튼을 누르는 다. 그리고 한 줌의 재가 되어 나오면 하얗고 부서지기 쉬운 칼슘덩어리를 항아리에 담는다. 그것이 전부다. 10년 전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내 미래가 고작 남을 태우는 일이 될 줄이야. 과거의 나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했다면 기겁하며 도망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매일 아침 제 발로 이곳의 문을 연다. 도망칠 곳도, 돌아갈 곳도 사라진 인간에게 이곳은 도피처이자, 스스로에게 내린 형벌의 장소였다.


첫 출근 날의 기억은 선명하다 못해 끔찍했다. 10월 중순이었지만 관을 옮기느라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묵직한 관을 화장로 안으로 밀어 넣고 점화 버튼을 눌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2시간의 침묵이 를렀다. 종료를 알리는 알림은과 함께 육중한 철문이 열리고, 뜨거운 열기를 품은 철판이 밖으로 나왔다. 그 위에는 사람의 형태는 사라지고, 검게 그을린 하얀 뼈 조각들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목장갑을 끼고 쇠막대를 들었다. 유골함의 입구는 좁았고, 다 타지 못한 두개골은 너무 컸다. 나는 쇠막대로 둥근 머리뼈를 툭 쳤다. 바스락 하는 마른 낙엽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뼈가 허물어졌다. 그 가벼움에 소름이 끼쳤다. 집게로 아직 온기가 남은 뼈 조각들을 집어 항아리에 담을 때마다, 달그락 하는 맑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묘하게 기분나빴다. 작업이 끝난 후 장갑을 벗자, 손가락 마디마디 주름 사이에 하얀 가루가 끼어 있었다. 코끝에는 치과에서 이를 갈 때 나는 듯한, 매캐하고 건조한 뼈 타는 냄새가 눌어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비누칠을 열 번이나 해가며 박박 문질렀다. 손톱 밑에 낀 보이지 않는 냄새를 지우고 싶었다. 아직 밥을 먹지도 않았지만 양치질까지 하고서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었다. 놀랍게도 음식은 목구멍으로 잘만 넘어갔다. 입안에서 걸쭉하게 으깨지는 음식물을 삼키며 물까지 한 잔 마시니, 비어 있던 위장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의외로 괜찮은데?"

내 비위가 강한 편인가 보다, 생각하며 식당을 나섰다. 휴게실로 가기 위해 화장로 앞을 지나던 순간이었다. 훅. 미약한 열기와 함께, 그곳의 냄새가 코를 스쳤다. 비릿하고 역겨운, 칼슘이 타는 냄새. 그 순간 오전 내내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방금 사람을 불태우고 나와서, 살겠다고 밥을 위장에 넣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곧바로 속이 뒤집혔다.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방금 먹은 것을 모조리 게워냈다. 소화되지 않은 밥알들이 둥둥 떠다녔다. 위액까지 토해내고 나서야 나는 변기 물을 내렸다. 그날 오후 내내 배는 눈치 없이 계속 꼬르륵거렸다. 그리고 나는 이후 식당에서 정상적인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 3개월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밥을 먹는 건 고역이다. 대신 나는 매점에서 파는 초콜릿 바나 단백질 셰이크로 끼니를 때운다. 피와 살을 떠올리지 않게 하는 것들 말이다. 그래야 죄책감 없이 위장을 채울 수 있었다.


"나오토 씨, 오늘도 초코바야?"

매점 앞에서 마주친 동료 마에다 씨가 물었다. 그는 이곳 화장터의 이질적인 존재였다. 늘 싱글벙글 웃는 얼굴, 누구에게나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넉살. 그는 내가 입사한 첫날부터 내게 말을 걸어왔고,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밥 좀 챙겨 먹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식당으로 가자고 권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매점 구석에 서서 초코바 포장을 깠다. 끈적한 초콜릿을 억지로 삼키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이곳 사람들은 화장로를 오븐이라고 부른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만 통하는 약칭이라고 한다.

"3번 오븐 비었어?", "5번 오븐은 예열 끝났어?"

처음엔 그 말이 소름 끼치도록 싫었다. 사람을 태우는 곳을 빵 굽는 기계처럼 부르다니. 다들 미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라, 망각의 동물이었다. 어느새 나도 무전기에 대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었다.

"2번 오븐, 작업 시작합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망각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일과가 시작되었다. 나는 영국의 근위병처럼 두 손을 모으고 화장로 앞에 섰다. 2시간 동안 오븐을 지키는 일. 기계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적막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상상하게 된다. 저 두꺼운 철문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이다. 나무 관이 불길에 휩싸여 무너져 내리고, 창백했던 피부가 검게 그을리다 터지고, 마침내 하얀 뼈만 남게 되는 과정을.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코끼리만 생각나는 것처럼, 보지 않으려 할수록 그 풍경은 머릿속에서 선명해졌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나는 죽음을 연습하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는 없고, 내 이름 앞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만 남았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리고 이곳에서 매일 죽음을 목격하고있다. 타인의 죽음을 매일 마주하다 보면, 내 죽음도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내 삶의 가치를 바닥까지 떨어뜨리고 나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버티는 유일한 이유였다.


오후 6시. 퇴근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여섯 구의 시신을 태웠다. 어릴 적 어른들은 말했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라고.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은 신성하다고. 나는 반대로 묻고 싶었다. 죽음을 기다리며 다른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도 신성한 것인지. 이것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인지 말이다. 하지만 대답해 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화장터를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20분을 달려 집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6층짜리 낡은 맨션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와 3층 단칸방의 문을 열자 냉기가 훅 끼쳐왔다. 바닥에 깔린 얇은 이불, 벽에 붙은 책상, 텅 빈 냉장고. 도망자의 은신처다운 초라한 풍경이었다. 나는 짐만 내려놓고 곧장 옥상으로 올라갔다. 신발을 벗어 가지런히 놓고 맨발로 차가운 시멘트 난간 위에 올라섰다. 발가락 끝이 허공으로 삐져나왔다. 6층 아래의 까마득한 바닥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 주차된 차들이 장난감처럼 보였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내디디면, 이 모든 것이 끝난다.


눈을 감고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상상을 했다. 심장이 두근대며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속에서는 죽고 싶다는 마음과 살고 싶다는 본능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했다. 눈을 뜨자 아찔한 높이에 다리가 떨렸고, 살고 싶다는 본능이 앞섰는지 꽤나 넓은 난간 위에서도 중심을 잡기 위해 양팔을 벌렸다. 오늘도 실패였다. 나는 두 다리를 벌벌떨며 난간에서 내려왔다.


다시 신발을 신으려는데, 밤하늘에 뜬 달이 눈에 들어왔다. 차갑고 창백한 달을 보자 문득 잊고 있던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장민영. 한빛 보육원 소파에서 항상 책을 읽던, 달의 뒷면에는 월인이 산다고 믿었던 아이말이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10여 년 전 이후로 본 적은 없었기에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미 달의 뒷면으로 떠나버린 게 아닐까. 나는 달을 올려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방으로 돌아와 깨진 액정의 휴대폰을 켰다. 연락처 목록은 텅 비어 있었다. 카메라 렌즈도 송곳으로 부숴버렸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려 덮고 몸을 웅크렸다. 오늘 죽지 못했으니 내일을 살아야 한다. 내일을 살려면 잠을 자야 한다. 지독한 모순 속에서 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아침 조회를 마치고 해산하는데, 마에다 씨가 슬그머니 내 옆으로 다가왔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주위를 살피더니 내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나오토 씨, 혹시... 용돈 좀 벌어볼 생각 없어?”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것은 탐욕이라기보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의 절박함처럼 보였다. 나는 그 눈을 보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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