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이음으로 다시 첫 출근을 하던 날이다. 괜한 불안과 걱정과 안절부절과 두려움 등을 껴안고 자는 날을 며칠을 보내서인지, 출근하기 전 부터 얼굴이 푸석하다. 아직 나이트를 시작도 안 했는데 말이다.
모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곱게 화장도 신경써서 했지만 어쩐지 싱숭생숭한 나의 마음은 이것저것 다 가려진다는 파우더 팩트로는 가려지지가 않는다. 화장품을 잘 못 산게 분명해.
너무 오랫만의 병원 출근. 면접 볼 때 수간호사 선생님이 분명히 데이 근무는 7시 40분까지 오면 된다고 했다. 신규가 출근 첫 날에 딱 맞추어서 출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30분 정도 일찍 출근을 하려 한다. 병동에 도착하여 간호사복으로 갈아입고, 긴 머리카락은 머리망에 곱게 넣어서 삐져나오지 않게 정갈하게 정돈을 하고, 간호사 명찰을 비뚤어지지 않게 고정을 한다. 그리고 요즘 시대에 중요한 마스크 착용을 잊지 않는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되겠지. 애써 긴장감을 감추고 병원에서의 일상을 그려본다.
여느 출근 시간보다 조금만 일찍 가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도착을 해버렸다. 주차장에 가지런히 주차를 했다. 괜히 꾸물거리기도 뭐해서 그냥 내가 일 할 병동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이렇게 일찍 오면 어떻해요, 지금 7시야."
안녕하세요의 인사를 할 겨를도 없이 쭈삣거리는 나에게 던져진 외마디의 비명소리 같은 한 마디.
아뿔싸. 너무 일찍오면 안돼는 거였어?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이트 근무 때는 아침 7시가 가장 바쁜 시간이다. 아침 항생제를 환자들에게 투여하고 아침 열을 재며, 환자의 컨디션을 다시 한번 체크하고, 챠지널스는 인계준비를 하느라 분주하다. 이렇게 정신없이 바쁜데 신규 간호사는 일찍부터 와서 짐짝처럼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뭔가를 해 주고 싶어도 지금은 너무 바쁘단 말이지.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환자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대체적으로 화를 잘 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당연히 그런 사람들만을 뽑는 곳은 아니다. 그들의 특성이라기보다는 너무 바쁘다는 것이 문제다. 할 일은 태산인데, 시간은 없다. 한정된 근무시간 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내고 퇴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병원사람들은 일을 깔끔하게 하고 싶은 욕구도 있다. 3교대 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 지금 나는 나이트 근무를 한다고 보면, 일을 하다가 주변이 좀 지저분해 질 수도 있다. 퇴근하기 전에 치워야지 하는데, 그 다음 근무자가 벌써 와 버렸다.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는 것일 지라도 다음 근무자는 이제 막 출근을 하는 것이므로 최소한 책상 위나 테이블 위는 정리가 되어지면 일을 시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깔끔하겠지만 아직 정리가 안돼었다면 민망함에 소리를 지르게 된다.
어쨌든 나의 첫 출근은 인사보다는 외 마디의 비명으로 시작되었고, 여기가 내가 근무해야 하는 곳이었다. 너무 일찍 출근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시간엄수. 7시40분까지 오면 된다고 했다. 기억하자.
예상대로 병원은 정신없이 돌아갔고 시장통을 방불케 했다. 특히 데이 근무라서 그런거겠지라 생각했다. 데이근무는 3교대 근무 중 가장 많은 일처리가 진행된다. 점심시간이 되기 전이 가장 바쁜다. 대부분의 퇴원이 이루어지고, 왠만한 입원도 점심시간 전에 많이 이루어진다. 퇴원환자가 빠지면, 새로 침상 준비를 하고 입원환자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운다. 40명의 환자가 있었다 치면, 입원12명에 퇴원 12명이다. 이 말은 12명의 환자가 퇴원을 해서 퇴원 약처방, 퇴원 교육, 침상 정리를 다 했다는 것이고, 12명의 입원환자가 왔다는 것은 또 신환 약처방, 신환 병실교육, 침상정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환자들의 모든 투약과 처치, 컴플레인 등을 다 처리한다는 것이다. 물론 기존의 입원환자에 대한 간호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첫 날부터 너무 정신이 없다. 나만 그런건지 궁금하여 동료 간호사들에게 물어보았다. 워낙에 이렇게 바쁜 건지, 내가 신규라서 바쁘게 느끼는 건지. 대부분의 인사 공고는 누군가의 퇴사로 이루어지기 나름인데, 이번 경우는 인원보충이란다. 아무도 그만두지 않았는데 환자가 너무 많고 중증 환아의 비중이 점점 늘어서란다. 그렇게 나는 이 병원의 하나의 멤버가 되었고, 작은 톱니바퀴가 된 기분이었다.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잘 굴러가지 않으면 다른 바퀴에도 영향을 준다. 정신차리고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잘 해봐야겠다.
폭풍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느낀 점 하나를 꼽자면, 일단 밥을 잘 먹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절실히 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나는 금새 허기가 지더라. 분명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는데, 내 밥 다 어디간 거니?
연애할 때가 생각난다. 남자친구 였던 지금의 남편은 사귄지 얼마 돼지 않은 시점에 나에게 충격적인 말을 했다.
"당신처럼 밥 많이 먹는 여자는 처음이야"
뭣이라? 이슬만 먹고 사는 여자들만 만나봤니?
병원 간호사들과 식사를 할 때면 다들 나에게 소식한다고 뭐라고 한다. 그거 먹고 일을 하겠냐면서 볼멘소리를 낸다. 병원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 소식을 하는 나인데 이게 무슨 소리냔 말이다.
"원래 천사들은 밥 많이 먹어"
그렇게 깔깔 대던 우리는 각자의 국밥에 밥 한 공기씩을 듬뿍 말아 먹고, 공기밥 하나를 추가해서 사이좋게 정확히 반반으로 나눠서 먹었다. 이게 연애 한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이뤄진 에피소드다. 그래도 난 당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