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내가 지금 병원에서 혼나고 있다. 당연하다. 재취업에 성공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즈음이니. 신규였다면, 좀 더 젊었더라면 아마도 머리가 팽팽 돌아서 같은 것을 또 묻는 반복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는 더 적었을 것이다. 이놈의 기억력은 자주 집을 나간다.
머리가 안 좋으면 몸이 고생을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내가 딱 이 상황이다.
몰려드는 환자들 속에 나에게 주어진 간호 시행의 리스트가 여럿 있다. 각자 다른 진단명을 가진 환자들에게 각기 다른 간호 처치가 들어가는데 환자가 여러 명이면 헷갈리기 나름이다. 그래서 확인, 또 확인을 한다. 아주 예전에는 환자의 침대나 병실 앞에 환자이름, 진단명, 주치의 등의 이름을 써 놓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아마도 실수가 적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개인정보의 중요성이 강화된 시대이다 보니 환자의 이름 중간에 별표 같은 것으로 가려서 전체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물론 진단명도 적지 않는다.
소아병원의 가장 큰 환자 분류를 하자면 호흡기 질환과 소화기 질환, 열질환으로 나눌 수가 있다. 호흡기 질환은 기관지염, 모세기관지염, 폐렴 등으로 나뉘고, 소화기 질환은 장염, 탈수 등으로 나뉜다. 열 질환을 말 그대로 고열의 증상을 보이는 질병으로 나뉜다. 이런 질환으로 입원하는 아이들이 다양한 증상으로 입원을 한다.
병실에 딸랑 별표가 섞인 환자의 이름표만 있는 상황에 간호처치는 이루어진다. 인계를 들을 때 메모 했던 인계장을 들고 하루 종일 일을 한다. 어제는 기침을 많이 한다고 했었는데, 오늘은 증상에 호전이 좀 보이는지. 어제는 설사를 3번 했었는데, 오늘의 컨디션은 어떤지 환자들의 상태를 살핀다. 모든 증상은 호전이 보이기도 하고, 상태가 더 심해져서 큰 병원으로 전원을 보내기도 한다.
거의 40명에 달하는 환자들의 컨디션을 다 외우기는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메모만이 살 길이다. 아무리 컴퓨터가 발달된 사회라 할지라도 아직도 종이와 펜이 없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그럴 만한 것이다.
간호사들이 잘 쓰는 볼펜이 있다. 노랑 고무줄로 검정과 빨강 볼펜을 묶어 놓은 것을 아마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어로 내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가장 저렴해서 많이 쓰이는 볼펜이다. 얼마나 경제적인지 더 저렴한 리필잉크도 따로 판다. 여러 가지 색색이 필요치는 않다. 검정과 빨강, 이 두 개면 어지간한 중요 표시는 거의 다 할 수 있으니.
오늘도 수 십 가지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스피드는 물론이고, 종이와 볼펜. 기본적인 간호처치는 이루어지되, 추가되거나 변경된 간호처치를 라벨로 뽑고, 메모를 한다. 내가 근무하는 소아병동은 5층과 6층을 함께 보는데 이 놈의 다리가 고생을 한다. 내가 일하는 소아병원의 병동은 메인병동은 5층이고, 6층은 VIP병동으로 1인실만 있다. 5층에서 인계를 받고, 6층에 가는데 깜빡하고 놓고 온 물건이 있으면 다시 5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6층으로 향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6층짜리 건물이라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다. 허나 외래 환자들이 많이 이용을 하고, 소아병원이라고 안전상의 이유로 아주 느려터지게 운행을 해서 속에서 열불이 나게 만드는 터라 성격 급한 나는 계단행을 택하게 된다.
에잇, 참! 처음부터 한 번에 다 챙겨갔으면 헛걸음하지 않아도 될 것을 몸이 두 배로 고생을 한다. 이런 일이 하루에 한 번뿐이라면 괜찮겠지만, 많게는 하루에 3~4번이나 이렇게 많이 걸어 다닌다. 퇴근할 때쯤이면 다리가 퉁퉁 붓는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