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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화양연화는 언제인가요?

by 병 밖을 나온 루기

매주 수요일 오전, 하루에 세 시간 동안 줌을 통해서 글쓰기 수업을 듣고 있다.

수업을 듣는 십여 명의 선생님들 중, 제법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분이 계셨다(수업을 듣는 분들의 호칭을 선생님으로 합니다). 손주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수업을 신청했다고 하셨다.


처음에 노트북 화면을 통해 바라본 그분에게, 그다지 특별하다 할만한 생각은 없었다. 그저 '와 이렇게 연세 있으신 분도 이런 수업을 들으시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께서 말을 하시는 순간, 노트북을 통해 들리는 그분의 목소리가 흘러와, 나의 심장 중앙을 쿵, 쿵 하고 두드리는 것 같았다.

뭘까...

이 감정은 뭘까...


그렇게 한 주가 더 지나고 숙제로 받은 '화양연화'에 대해 쓴 글을 스스로 낭독하는 시간이었다. 그분의 차례였다. 내 가슴을 두드리는 목소리가 시작되었다.


군데군데, 희끗해진 머리카락.

지나온 시간은 그분의 시력을 일부 앗아간 듯, 살짝 내려간 안경을 고쳐 쓰시는 모습.

젊은 사람보다 한 박자쯤 느리게 천천히 입술을 떠나는 한 마디, 한 마디의 말.

어른들 특유의 차분하고도 미세하게 떨리는 음성.


화양연화 영화를 끝까지 보지도 못하고 잠드셨다는 이야기로 말을 시작하셨다.

"딱히 생각나는 시절은 없지만 굳이 말한다면 초등학교 때인 것 같다"라고 글을 읽어 내려가셨다.

그때부터였다. 그분의 담담한 목소리 너머로 숨겨진 세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낡은 필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며 나를 덮쳤다. 가슴에서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눈이 자꾸만 벌게지는 걸 참아 보았다. 꾹꾹 눈물을 눌러 담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나는 정희 선생님의 다음 순서였다.


꺼 두었던 마이크를 켜고 내 글을 읽으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눈이 벌게진 이유를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선생님께 한마디를 전하고 싶었다.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는 거의 반쯤 소리 지르듯 울먹이고 있었다. 커지는 울음소리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눈물만 또르르 흘리면서 말하는 거 그건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이래서 배우는 못하겠다 싶다.


스스로도 황당한 나의 오열에, 함께 수업을 듣던 분들은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나는, 나의 이 울음에 대해 한번 파헤쳐 보기로 했다.


첫 번째 가능성 : 그리움

나의 할머니가 떠올라서다. 손녀를 지극히 사랑해 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나서 울음이 터졌다. 아니,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가 밥을 빨리빨리 먹고 일할 생각을 해야지, 이렇게 늦게 먹어서 어쩐다는겨."

밥을 천천히 먹는 내 옆에서 잔소리하시던 할머니, 그녀에 대한 내 기억은 그저 이런 것 들이다.

매번 꼬깃꼬깃 접힌 돈을 몰래 꺼내어 오빠에게만 주던 우리 할머니. 그저 딸은 공부할 필요도 없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억센 시골 할머니셨다. 나의 할머니가 떠오르긴 했지만, 고인이 되신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두 번째 가능성 : 자기 연민

그래서 나는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이들이 부러웠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엄마가 막내여서 연세가 많으셨고, 자주 뵙지도 못한 채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남으신 분은 할머니 한 분뿐인데, 그분에게서 사랑 받았던 기억은 없다. 그래서일까? 품이 넉넉한 할머니의 사랑이 늘 궁금했다.

정희 선생님은 바쁜 딸을 위해 손주를 돌봐주러 딸네 집에 와 계신다고 했다. 중학생이 된 손주에게 도움이 될까 하여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 할머니. 순도 100프로의 할머니 사랑을 보여주시는 그분을 보며, 내가 불쌍해져서였을까?


세 번째 가능성 : 자기 투영

남편과 손주를 키워 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아니 내 애도 이렇게 예쁜데, 내 애가 낳은 애는 얼마나 이쁘겠냐고. 나는 좀 끼고 살고 싶고, 애도 키워 주고 싶을 것 같은데?"


라는 나의 말에 남편은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는 못 키운다. 안 키워준다. 그때는 부모도 자기 인생 살아야지. 노년을 또 애 키우며 보내면 되겠나? 애는, 엄마 아빠가 키워야지."


"아니 그래도 우리 딸이 진짜 좋은 직업을 가졌으면, 그만두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럼 애는 누가 봐주노?"

"나는 그러면 차라리 사람 쓰는 돈을 보태주면 보태줬지, 애는 못 키워준다. 그만큼 열심히 키워서 성인 만들어 놨으면 그 뒤에 일은 지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남편 말도 맞다. 조부모의 육아가 여러 면에서 얼마나 힘든 지 들은 바 있기에, 나도 솔직히 자신 없기도 했다. 그런데 화면 속 그분의 얼굴에서 자꾸 내 모습이 겹쳐 보였던 것 같다. 나이와 상관없이 도전하고, 자식의 자식까지 사랑하여 손주에게 무엇이 더 도움이 될까, 우리 딸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 공부하고 있을 것 같은. 품이 넉넉하고 다정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오던 나였다.


네 번째 가능성 : 정희 선생님을 향한 연민

당신의 화양연화는 초등학교 때라고 하셨다.

현재의 그분은 충분히 안온해 보이셨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묻는 질문에 딱히 떠오르는 바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초등학교 때라고 대답하셨다.


그분의 정확한 연세는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 생을 지나오시면서 연애도 하셨을 거고, 결혼도 하셨다. 아기도 낳았고, 그 애가 백 점짜리 시험지도 한 번씩 들고 왔을 거다. 자가의 집도 마련하셨을 거고, 아이가 취직도 했겠지. 그 아이가 결혼을 하고 손주도 낳았다.

그 긴 세월 속의 화양연화가 초등학교 때라니.


어떤 세월을 살아오신 걸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선생님의 지난 세월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저 내가 넘겨짚었는지도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런 마음이 들었다.


지금의 내 화양연화는, 첫째를 임신하고 낳았을 때라고 답했다. 내가 정희 선생님의 연세가 되어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무어라 답하게 될까?


다섯 번째 가능성 : 갱년기

평상시 눈물이라고는 별로 없는 내가, 이렇게 자꾸 마음이 뭉클해지는 것을 보면 그냥 갱년기일지도 모르겠다. 그저 호르몬의 호작질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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