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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을 모두 좋아한다는 것은

by 병 밖을 나온 루기

분홍, 노랑으로 다양하고도 화사하게 피어나는 봄을 좋아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맛있어지는 여름도 좋아한다. 하지만 가을은 조금 쓸쓸하고, 겨울은 서글펐다. 이런 사계절에 대한 호불호는 아이를 낳고 나서 더 또렷하게 생겨났다.


에너지 넘치는 첫째를 담기에 집은 좁은 공간이었다. 마실 물과 약간의 간식거리를 챙겨 놀이터로 나서면 육아는 쉬워지곤 했다. 요구르트 아줌마로부터 10개짜리 요구르트를 한 줄 사서,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빨대를 꽂아 나누어준다. 이모, 이모 하며 따르는 아이들까지 내 아이처럼 곱고 예뻤다.


선선한 가을까지의 놀이터는 나의 든든한 육아 도우미였다. 하지만 겨울은 달랐다.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은 걸핏하면 감기에 걸리곤 했다. 안경의 김을 서리게 하는 차가운 바람이 아이의 콧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아이의 요구에 못 이겨 놀이터로 나갈 때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날을 골라야 했다.


특히나 겨울의 외출 준비는 풀코스 요리처럼 손이 많이 간다.

아이를 앉혀두고 내복이 딸려올라가지 않도록 그 끝을 양말 속에 넣는다. 그다음 두터운 바지를 입힌다. 잘 늘어나지 않는 겨울 상의는 마치 좁은 터널 같다. 정수리에 맞닿은 옷은, 한 치의 틈도 없이 머리와 얼굴 윤곽을 따라 내려온다. 살짝 찌부된 아이의 얼굴이 쏙 하고 나온다. 머리가 큰 아이에게 목둘레가 빳빳한 겨울 옷을 입히는 일은 이렇듯 번거로웠다. 그러고 나서 머리를 빗어 묶어 준다. 두꺼운 외투를 입힌 뒤 무릎을 꿇고 앉아 지퍼를 찍_ 목 밑까지 올려준다. 장갑을 끼고 모자를 씌우고 마스크까지 쓰고 나면 한 아이의 외출 준비가 완료된다. 둘째 아이까지 똑같은 과정을 거친 뒤에서야 내 옷을 챙겨 입고 놀이터로 나선다.


그에 비해 여름은 얼마나 간단한가.

집에서 뒹굴던 옷 그대로 당장 집밖으로 나가도 좋다.


아이를 씻길 때 주의할 점도 계절에 따라 달랐다. 여름은 꼭 온수가 아니어도 괜찮다. 물기를 꼼꼼히 닦지 않아도, 머리를 말리지 않고 욕실을 나와도 추위에 대한 걱정이 없다. 하지만 겨울은 다르다. 물기를 품은 몸은 추위를 더 느끼기에, 몸과 머리를 말려주는데 품이 많이 들었다. 자칫 잘못하면 콧물을 찔찔 흘리는 애를 데리고 병원행이다.


이렇다 보니 봄 여름이 좋았다. 바바리가 등장하며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벌써부터 다가올 겨울이 싫고 두려웠다. 그렇게 겨울은 오기 전부터, 내 마음 한편을 쓸쓸하게 했다.


계절의 호불호도 생의 주기에 따라 변하는 건 줄은 미처 몰랐다.


따뜻함으로 세상을 꽃밭으로 만드는 봄이 좋다.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활기 찬 여름이 좋다.

무더위를 지나 선선한 바람이 스치는 가을이 좋다.

얼음잔에 사이다를 따를 때처럼, 코 끝 찡하게 청량한 겨울이 좋다.


아이들은 자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더 이상 문턱이 닳도록 병원을 드나들지도 않는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 좋아졌다.

어쩌면 사계절이 모두 좋은 사람은, 다 가진 사람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본다.

매 해 반복되는 네 번의 계절이 싫지도 두렵지도 않다는 것은, 나에게 참 좋은 일이라고 새삼 느낀다.


어쩌면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다는 마음들이, 반대로 이건 좋고, 저것도 좋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좋고, 그런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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