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촉하게 비가 내리는 런던의 아침.
여전히 몸은 성하지 않았다. 그래도 숙소비에 포함된 공짜 조식은 먹어야지. 졸린 눈을 비비고 무거운 몸을 움직이여 식당으로 향했다. 쭈뼛거리며 들어선 내 눈에 긴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거기에 앉은 이들은 다들 아는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영어, 불어, 독어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말들이 나를 향해 밀려왔지만 나에게는 그저 알아들을 수 없는 잡음일 뿐이었다.
'아니 도대체 그 여행사 직원은 어쩌자고 이런 동양인조차 한 명 오지 않는 곳을 예약해 준 건지!'
마음속으로 원망해 본들 돌이킬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제대로 이방인이었다. 설렘보다 힘듦이 앞섰기에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빵과 버터, 잼 그리고 커피, 코코아, 시리얼, 우유 등이 놓여 있었다. 모두 나를 쳐다보는 것만 같은 느낌에 잔뜩 주눅이 들어 식욕조차 일지 않았다. '그대로 뒤돌아 다시 방으로 올라갈까?'
하지만 나는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아닌가. 무료 식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따뜻한 코코아라도 한 잔 마셔야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코코아를 한 잔 마시고 도망치 듯 자리를 떴다.
다행히 이튿날부터 나는 완벽하게 적응했다. 의자 위에 당당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히려 시선을 즐기며 조식을 챙겨 먹게 되었다.
'너희끼리 대화를 하든지 말든지 쳐다보든 말든. 동양인이 신기하니? 나도 너네가 신기하거든.'
물먹은 솜같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 어디든 가야 했다. 공원이나 시장에 가고 싶었다. 숙소 근처의 hyde park로 발걸음을 옮겼다.
런던의 아침을 바쁘게 가르는 사람들이 보행자 신호 빨간불에 길을 건넜다. 늘 그래왔다는 듯, 지나는 차들은 무단횡단자를 기다려주었다. 나도 슬쩍 현지인을 따라 빨간불에 길을 건너 보았다. 왠지 모를 해방감이 느끼며.
공원에 들어서자 청량한 공기가 정신을 깨울 만큼 맑고 차가웠다.
"어? 청솔모다."
고동색 꼬리를 뽐내며 나무 사이사이를 폴짝거리며 뛰어다니다 내 앞을 또르르 지나갔다. 사람을 보고도 도망가지 않는 작은 생명이 신기해, 한참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공원으로 향할 때만 해도 마음은 허전하고 의욕도 없었다. 경계 없이 다가오는 작은 생명들 덕분에 기분이 훨씬 나아지고 있었다. 왠지 모를 기운도 차 올랐다.
비상식량으로 들고 왔던 빵 조각을 조금 떼어 손에 쥐었다. 새들이 푸드덕 거리며 날아와 빵을 받아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소리 내어 크게 웃어버렸다. 이후의 내 발걸음은 꽤 경쾌해졌다.
조금 더 걷다 보니 넓은 호수가 보였다. 순백의 깃털, S자로 우아하게 굽은 목선을 가진 고니가 불과 몇 미터 앞에 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크게 경계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인간을 위협으로 보지 않는 세계.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고니들. 동물원의 철망너머가 아니라 자연 속의 이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비행기 값이 아깝지 않은 순간이었다.
날은 흐렸지만 기분만큼은 환하게 맑아졌다. 회색 배경이 무색하도록 빛나는 날개를 펼치는 고니들. 앞으로 이어질 여행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보다 아름답게 빛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이 여행기는 20여 년 전의 기억을 더듬어 쓰고 있다. 일기장에는 분명 적혀 있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에피소드가 있다. 반대로 일기에는 한 줄도 없지만 생생하게 떠오르는 순간들도 있다. 공원에서의 기억은 남았지만 유명 관광지를 둘러본 기억은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2002년의 일기를 펼치니 나는 빅벤, 런던아이, 국회의사당, 차이나타운, 트라팔가 광장, 피카딜리 서커스를 다 둘러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기억에 남은 건 그때 내가 품었던 생각들과 유의미하게 스쳐간 사람들이다.
한국인과 한국말로 대화를 나눈 지도 만 하루가 더 지났다. 길거리에 나서면 동양인들이 제법 있었지만 한국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만의 구별법을 개발했다. 당시 유행하던 가방들 -잔 스포츠 백, 이스트백- 그리고 지피지기를 찾아내는 것. 그 작은 로고는 한국인만의 것이었다. 백발백중이랄까.
로고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나는 망설임 없이 그 뒤통수를 향해 뛰었다.
"저기요! 한국인이시죠?"
외국에서 만나는 자국민이란, 이렇게 무지성으로 말을 걸만큼 내게는 반가운 존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국어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었다.
대화를 나누던 유학생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아 물론, 외국인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Korea에서 왔다고 말했을 때 어김없이 “North? South?”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하지만 한국인에게도 이런 질문을 받을 줄은 몰랐네. 그 시절에는 지금과는 다르게 TV 공중파에서조차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내 말을 알아듣기가 북한말만큼 어려웠나 보다.
또 어떤 사람은 대구에서 왔다는 나의 말에,
"와-, 멀리서 오셨네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서울에서 유럽이나, 대구에서 유럽이나 거기서 거기 아닐까요?'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로 배낭 여행자들은 나의 인사를 반겨주었다. 반면 유학생들은 조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아마도 유학생활 내내 이미 한국인과 많이 어울리고 있고 또 여행자와는 달리 이곳 런던이 익숙한 곳이기에 그럴거라고 이해했다.
유럽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긴 하지만 오래된 일기를 들춰보다가 밤 10시가 넘도록 거리를 돌아다녔다는 기록을 보니, 일기장에다 대고 40대 아줌마의 잔소리가 나오려 한다.
지하철에서 까르네 끊고서(비싸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역에 도착!! 난 국회의사당 건물이 웨스터민스터 사원인지 알았다. 둘러보고서 웨스터민스터 사원에도 들어가보궁 그것도 공짜로, 어쩌다 보니. 하핫. 그런데 좋은지는 도통 모르겠다.
참! 그전에 버킹검 궁전 가서 한국인 아저씨, 아줌마 무리도 만났었다. 핫도그 2000원 주고 사 먹궁. 걸어 걸어 트라팔가 광장도 가고, 소호에도 갔다. 도중에 한국인 무리를 또 만났는데 이스트팩, 잔 스포츠도 있지만 ZIPIZIGY!! 를 보고 미친 듯이 기뻐하며 아는 척했다.
내가 사투리가 좀 과한 건 알고 있지만 북한에서 왔냐고 묻네; 내셔널 갤러리도 보구 차이나 타운을 찾아 출발. 요리조리 한참을 돌아다니다 나왔다. 해는 어느새 저편으로 넘어갔구..
중국 뷔페에서 무려 5.7파운드 주고 먹었다. 근데 맛은 별로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맘마미아 극장을 발견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구서. 근데 여기가 어디인지는 전혀 모르겠고 헤매다 빅벤 야경 보려고 한 두 시간을 더 헤맨 것 같다. 다리가 한 개 보이는데 예쁜데... 이게 런던 브리지인가? 흠 다리가 접힌다는데 영 접힐 것 같지가 않는데 그려.
시간은 벌써 10시를 지나고 있고, 춥다. 너무 많이 걸은 것 같기도 하고. 여튼 얼른 지하철 타고 숙소로 도착하니 내 룸메들은 벌써 자고 있네. 나는 조심스럽게 짐을 챙겨 TV ROOM에서 일기를 끄적이다 자야겠다.
혼자 다니는 여행의 단점, 바로 내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은 전부 셀카거나 풍경사진이거나, 아니면 회화책에서 외운 문장으로 외국인에게 부탁해서 찍은 사진이다.
"Could you please take a picture for me?"
그렇게 찍힌 사진은 하나같이 어색한 표정으로 남았다.
런던에서는 뮤지컬을 봐야 한다기에 <맘마미아>와 <오페라의 유령>중에 고민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내용이 어렵다고 하여 맘마미아를 선택했다. 하지만 맘마미아의 내용도 이해하지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잤으니까.
무대가 회전할 때 잠깐 '오!' 했던 거 정도? 영어 대사를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 감상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댄싱퀸이라는 노래는 귀에 맴돌긴 했다. 지금은 뮤지컬을 정말 좋아하고 즐기지만, 스물두 살의 나는 이런 취미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이후 한국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감동적이었다. 어차피 못 알아듣는 건 같은데 런던에서도 오페라의 유령을 봤어도 좋았겠다 싶다. 화려한 무대장치만으로도 깨어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이곳의 노란 조명은 모든 것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물들였다.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흘러 넘쳤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선율을 따라 걸어가니 거리의 악사들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만족감이 차올랐다.
줄 서서 차례차례로 사진 찍기 바쁜 관광지보다 여행중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그저 이런 공간이었다. 여유로운 사람들 틈에서 음악과 함께 있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여행 내내 이런 거리의 악사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런 곳이 유명 관광지보다 더 좋기에 지금까지도 내가 패키지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