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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노스 Dec 26. 2024

초등 첫 담임선생님의 추억

1학년에게 자존감 심어주기


COVID-19로 세상은 고요했고 라노는 2020년 5월 27일이 되어서야 마스크를 낀 채 1학년 첫 등교를 했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되었던 가정 보육으로 지친 나는 아이를 등교시키고 맥모닝을 포장해 먹고 거실 소파에 누워 티브이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히죽거렸다. 이 얼마 만에 누려보는 혼자만의 시간인가. 지난 몇 개월간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외로움을 이제는 맘껏 누릴 수 있겠구나 싶었기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웃음이 새어 나왔었다.


첫 등교를 했던, 그날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었다.


오늘 라노랑 처음 만나보고 아이들과 라노 사이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생각해 봤어요. 어머님 의견도 궁금해서 연락드렸고요. 제 생각에는 너희들 키, 얼굴이 다 다르듯이 성장하는 속도가 다 다른데 라노는 말하는 게 좀 늦을 뿐이다. 너희들 모두 각자의 속도대로 크고 있는 것일 뿐 라노가 잘못된 건 아니니까 서로 배려하면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이 정도로 설명해 줘도 될까요?


예상치 못한 전화였고 질문이었기에 제대로 답변도 못했다. 잠시 생각해 본 후 교실에서의 상황을 제대로 모르니 현장에 계신 선생님 판단에 따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이런 생각이 머리를 때려왔다.


남들이 보기에도 확실히 라노 발음이 문제가 있구나


이 정신 못 차리는 애미는 아직도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받아들인 줄 알았으나 아니었고 인정한 줄 알았으나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혹시 모를 기대감을 갖고 있었던 걸까. 선생님이 보실 때 티가 안 날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 아이들은 라노의 발음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기대. 그 사이 라노의 발음은 몰라보게 좋아져서 아무도 모르게 티 안 나게 라노는 정상적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이 모든 기대가 선생님의 전화 한 통에 무너졌기에 그 순간에는 전화가 그렇게나 원망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세심했던 배려에 너무 감사하고 그때 오해했던 게 죄송하다. 학기 초에 라노에 대해 병원 검사자료와 치료기록지를 선생님께 드렸었다. 온라인 수업은 괜찮을 수 있어도 정상 등교 시에 문제가 될 수 있을 거라 말씀드렸었다. 혹시나 라노의 발음으로 아이들과 문제가 생기면 간단하게 문자라도 남겨주시면 라노가 상처받더라도 잘 다독여서 등교시키겠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도 라노의 발음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던 건 지금 생각해 보니 알게 된 내 본심이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라노의 온라인 수업을 옆에서 지켜보는데 선생님께 다시 한번 고마움을 느꼈었다. 알고 보니 그 멘트는 선생님의 단골멘트였던 것이었다.


우리들은 다 다르다. 틀리고 잘못된 게 아니라 그냥 서로 다른 거다. 그래서 싸우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상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수업시간에 자주 얘기하셨고 가끔은 시간을 따로 내어 인성교육을 해주셨다.


라노의 발음만 가지고 얘기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고 선생님의 일관성 있는 교육 방식에 더 신뢰가 갔다. 우리가 살아가는 건 다름을 인정하면서 서로에게 좋은 걸 배우기도 하고 자신의 나쁜 점을 고치기도 하면서 좋은 어른이 되어간다. 이 얘기를 수업시간에 자주 하시는 걸 보며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는 교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가끔 정상등교를 하게 되면 아이들은 라노의 발음에 놀라고 모둠활동 중에 글씨 쓰는 속도에 한 번 더 당황하고 그게 반복이 되면 라노를 탓하고 놀리는 게 일상이었다. 아이들을 이해시키고 라노를 위로하는 건 온전히 담임 선생님의 몫이란 생각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라노는 잘하고 있지만 친구들이 하는 말에 상처받지는 않았나 걱정돼서 전화드렸어요.
라노가 말 안 하던가요? 오늘 수업 시간에...
라노 칭찬 많이 해주세요. 라노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라노는 진단명 그대로 원인불명의 언어장애이다. 재활만이 라노가 정상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라노는 꾸준히 성실히 언어재활치료를 받아왔고 최선을 다하는 건 어쩌면 라노의 일상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도 라노는 그렇게 열심히 했다고 하셨다. 라노는 한다고 하는데 모둠활동을 하다 보면 라노 때문에 발표가 늦어지기도 하고 라노 때문에 의사전달이 안돼서 라노네 모둠이 놀림을 당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난 부탁드렸다. 그러한 상황이 생기면 매번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라노를 위로할 필요는 없으시다고. 다만 라노에게는 위로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간단히 문자로라도 통지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매번 전화 주셨고 라노를 걱정해 주셨고 같이 마음 아파해 주셨다. 그리고는 마지막에는 항상 같은 질문을 하셨다.


제 생각에는 그렇다고 라노를 모둠활동에서 따로 배려하거나 필기를 대신해줄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라노도 충분히 다른 친구들이랑 똑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지금처럼 다른 아이들이랑 동등하게 수업 진행해도 괜찮겠죠?


배려해 주시지 않음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그랬던 선생님의 선택과 결정으로 라노는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때 라노는 못할 거라고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말고 넌 이렇게 하라고 배려했다면 라노의 학교생활은 좀 더 편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친구들과 같은 속도로 성장하는 자체를 포기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라노는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까지 모든 선생님들이 라노를 포기한 분은 한 분도 안 계셨었다. 모두가 본인이 조금 더 힘들더라도 라노를 끝까지 품고 가셨고 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주셨고 결국 하게 하셨다. 그 과정에 함께했기에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드셨는지 너무나 잘 안다. 차라리 라노를 놓고 가시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으셨을 텐데 간절한 애미의 마음을 눈치채셨던 걸까.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라노를 보며 포기하시기엔 힘드셨을 거 같기도 하다.




COVID-19로 인한 온라인 수업은 생각보다 꼼꼼하게 진행되었다. 이 또한 라노의 복인게 사립초라 그런지 온라인 수업을 학교 수업만큼 제대로 진행해 주셨다. 아침 8시 40분에 교복 상의를 입고 줌으로 조회하고 1교시, 2교시는 EBS 수업을 함께 본 후 3~4교시는 정규 수업을 해주셨다. 음악, 체육, 미술 등 예체능 수업까지 라노는 온라인으로도 1학년 생활을 누리기에 충분했다. 쉬는 시간에는 아이들끼리 줌으로 종알종알 얘기도 하고 너무 시끄러우면 선생님은 아이들을 3~4명씩 회의실로 보내놓고 방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셨다.


라노는 온라인 수업을 좋아했다. 자신의 느린 성장이 티 나지 않았고 가끔은 선생님과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었으니까. 라노의 담임 선생님은 20대 후반의 젊은 남자 선생님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프로그램과 어플을 능숙하게 다루셨고 정상등교일에 할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도 온라인 수업으로 효과적으로 이끄셨다. 가끔은 아이들에게 과제를 내주시고 먼저 한 친구들은 카메라에 가까이 대어 검사를 받고 퇴장하는 날도 있었는데. 내 기억에 남은 바로 그날은 종이 접기의 날이었다.



소근육이 약했던 라노는 종이접기를 힘들어했었다. 시지각도 좋지 않았어서 네모난 색종이의 모서리를 맞추어 세모, 네모 접는 것도 라노에겐 큰 미션이었던 것. 아이들과 색종이로 꽃 접기를 하던 날이었는데 역시 라노는 다른 친구들보다 늦은 속도에 심지어 엉망진창으로 접고 있었다. 온라인 수업 할 때에는 거의 옆에 붙어있었기에 내가 좀 도와줘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내가 도와줄 수 없지 않은가. 앞으로 라노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 세상인데 내가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봐야 하는 순간임을 인지하고 지켜만 봤다. 한 명 두 명 온라인 수업에서 나가기 시작했고 반 이상 나간 후부터 라노는 눈물을 한 방울씩 흘렸다. 불안하고 속상하고 창피했겠지. 라노가 훌쩍일 때마다 내 손가락도 까딱까딱 움직였다. 내가 손 한 번만 스치면 라노도 금방 끝내고 이 수업에서 나갈 수 있을 텐데. 결국 라노는 마지막 1인이 되어 선생님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선생님은 한도 끝도 없이 자상하고 친절하게 천천히 라노에게 설명해 주셨다. 라노는 하고 싶지 않다고 못하겠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선생님은 그런 라노를 다독이면서 결국 완성해 내셨다. 울먹이던 라노 얼굴이 선생님 한마디 한마디에 조금씩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걱정스러운 내 마음도 눈 녹듯이 녹아내려 긴장해서 까딱거리던 내 손가락도 얌전해질 수 있었다.


그날도 선생님께 전화가 왔었다. 학교에 있었더라도 똑같았을 거라고. 끝까지 하게 할 거고 그렇게 하나둘 만든 성공 경험이 라노에겐 힘이 될 거라 믿는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감사했다. 붉은 노을이 서서히 하늘을 물들이는 것처럼 내 마음도 그렇게 발갛게 달아오르며 따뜻해졌다.


라노를 키우면서 우린 이런 시간들을 많이 겪었다. 남들보다 느렸고 못했고 안 되는 게 많았다. 그때마다 기다리고 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결국 하게 하는 과정은 많이 겪은 일이지만 그래도 매번 힘든 과정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 힘든걸 28명의 아이들과 함께하는 초등 담임 선생님이 해주시고 계심에 너무나 감사했다. 그게 자신의 일이라고 당연한 거라고 하셨지만 결코 당연하지 않음을 잘 안다. 내 새끼 하나 데리고도 힘든 일을 매일매일 묵묵히 아이들 하나하나 사랑으로 돌보며 신경 써 주심에 너무나 감사했다.


라노가 미국으로 온 후 선생님은 라노 친구들 학년인 4학년을 맡으셨고 라노는 한국에 있었으면 선생님 반이 또 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속상해했다. 라노의 마음을 아셨는지 5월 5일 어린이날에 맞춰 라노 친구들 인터뷰 동영상을 예쁘게 편집해 라노에게 카톡으로 보내주셨다. 미국 온 지 3개월째. 영어만 빼곡한 학교 생활에 지친 라노는 영상을 보며 또 엉엉 울었고 그런 라노를 안고 나 또한 펑펑 울었었다.


난 기억한다. 내 첫 담임 선생님이셨던 1학년 선생님의 성함, 얼굴, 목소리 다 또렷하게 기억한다. 학교라는 긴장된 첫 공간에서 함께했던 유일한 어른이기에 많이 의지했고 참 좋아했었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소풍, 운동회 등 많은 순간들이 기억나고 특히 후후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솜사탕 노래에 맞춰 율동했던 건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난다. 좋든 싫든 첫 경험은 기억에 남게 마련이다. 마흔이 넘은 내 기억에도 남아있는 나의 첫 담임 선생님. 라노에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소중하게 자리 잡을 첫 담임 선생님이 그분이었던 게 참 감사하다. 아이들과 마지막 수업에서 해주셨던 말이 있다.


너희들을 위해 기도하고 잘되길 바라는 사람이 한 사람 더 있다는 걸 기억하길.
이 세상에 내 편이 한 명 더 있음이 너희들에게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이 되길

1학년 마지막 수업일, 라노는 편지글도 태블릿 너머의 선생님과도 모두 다 사진 찍어달라고 하며 이렇게 소중히 추억을 간직했다.


이 말을 철부지 1학년 꼬맹이들이 몇 명이나 알아듣고 이해했을랴만은. 엄마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감동했다. 그리고 라노에게 이해시켰고 라노는 지금도 가끔 손가락을 꼽아가며 얘기하곤 한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그리고 선생님. 다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사람들이잖아.


라노에게 든든한 편이 되어주심에 감사하다. 그 응원으로 오늘도 내일도 수많은 할 수 없는 것들의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서 해낼 수 있는 라노가 될 것임을 알고 믿기에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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