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교한 아들의 준비물 요청에 스마트폰을 켜서 컬0 앱을 열었다. 그리고 필요한 물품을 검색했다. 생크림, 아이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스프레이로 선택. 식빵은 맛도 좋고 양도 많으며 가격도 평이한 걸로 선택. 초콜릿은 누텔라가 유명하니 선택, 하고서 구매하기를 누른다.
"사랑아, 주문했어. 오늘 밤에나 내일 새벽에 도착할 것 같아. 도착하면 보냉백에 챙겨서 학교에 가져가면 되겠다."
"감사합니다, 엄마."
굳이 집 앞의 마트를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의 앱 하나로 준비물 챙기기를 마쳤다. 동네 마트가 작아서 필요한 생크림, 식빵 그리고 초콜릿 잼이 없으면 곤란하다. 그래서 앱으로 정확히 필요한 제품을 선택, 구매하는 게 더 편리하다. 구매 제품 개수가 적어서 배송비가 붙냐고. 아니다. 배송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냐고. 등교 이전에 도착하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것도 아니다. 오늘 오후에 주문했으니 빠르면 오늘 밤 10시 전, 늦어도 오늘 자정 12시에는 도착할 것이다. 생크림이 녹지 않도록 아이스팩과 함께 집 앞으로.
누구든 손에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지 언제든지 쉽게 정보를 찾고 물건을 획득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온라인에 미숙한 편이었다. 특히 온라인 쇼핑은. 옷도 직접 보고 구입하며, 마트의 음식재료든 물건도 직접 보고 골라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나 종이에 물이 스며들듯 점차 온라인 업체에 익숙해진 것은 아이를 양육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기저귀, 물티슈, 분유 등의 절대적인 필수품들이 항상 집에 구비되어 있어야 했다. 금방 소비되는 물품이기에 매번 아기용품 점에 가서 구입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그때 제주에서 배송되는 업체는 쿠0. 그런데 잔뜩 구입해서 집에 재고를 쌓아놓기에는 어려운 필자에게, 필요한 물품을 하나씩 구입할 때마다 배송비를 내야 했다. 기저귀 한 줄을 사도 배송비 3천 원. 분유 한통을 구입해도 필수적으로 붙는 배송비. 꼭 얼마어치 이상 구입해야지만이 배송비가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조리원 동기 엄마들은 기저귀, 물티슈를 10박스씩 주문해서 집에 쌓아두고 사용한다고 했다. 아니, 아기 수면패턴, 먹는 패턴도 맞추기 어려운 시점에 짐을 한가득 쌓아놓고 그것을 눈앞에서 바라봐야 한다니. 집에 물건을 쌓아둔 적이 없는 자로서는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배송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대량구매는 마음뿐만이 아니라 카드값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는 참고로 10여 년 전의 이야기다. 더 그전에는 어땠냐고. 홈쇼핑은 물론, 인터넷에 파는 옷, 가방, 화장품은 배보다 배꼽이 큰 것처럼 배송비가 추가로 붙는다. 한 번만 붙으면 그나마 다행이랄까. 물품의 기본 배송비에 제주이기에 배송비가 더 붙는 것으로 결국에는 이중으로 배송비가 붙는 경우도 허다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 남대문에 가서 옷을 사는 게 저렴하다고 할 정도로 온라인 쇼핑은 제주 사람으로 하여금 거리감을 가지게 했다. 필자도 육지에 놀러 올 때, 면세점이나 쇼핑몰에서 화장품이나 옷을 구매했다. 제주에 옷 가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지하상가조차 운송료 즉 배송비가 붙기 때문에 물품 가격이 비싼 편이었기 때문이다.
▲ (좌) 겨울 옷 쇼핑 시 육지는 배송비 무료, 제주는 추가 3천 원 (우) 가구 구입 시 제주는 1개당 배송비 추가 15,000원 ⓒmoonlight_traveler
그놈의 배송비. 옷 한 벌을 사도 배송기간은 기본 3일이다. 위의 사진과 같이, 배송기간이 3일 이내, 4일 이상은 분명 제주도일 것이다. 가구를 구입하고 싶은가. 그럼 배송기간은 7일을 넘어간다. 급한 건 미리 구입하지 않으면 아예 포기하거나 발품을 팔아 원래 가격보다는 비싸게 구입해야 한다.
어디 이뿐이랴. 배송비는 기본 3천 원. 다행히 얼마어치 구입하게 되면 배송비 무료인 곳도 있지만 거의 드물다. 가구는 어떠랴. 보시다시피 가구 1개당 배송비는 무려 15,000원이다. 50만 원 이상 구입하면 배송비가 무료일 텐가. 아니다. 총구매액과 관계없이 배송비는 추가된다. 그래서 제주에 거주하는 외지인들이 육지 이케아 가서 가구 및 조명, 필요한 물품 등을대량으로 구매하고서 손에 들고 오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제주에서는 물품 선택의 폭이 적으며, 이미 물품 값에 운송비가 붙기 때문에 같은 물건이라도 육지와는 다르게 비쌀 수도 있다.
늘어놓기 시작하면 끝도 없다. 제주도민이 육지에서 집으로 갈 때(분명 여행이 아닌 집으로 가는 길) 비행깃값 할인도 없다. 물론, 제주가 집이면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또한 제주항공은 특별히 제주도민만 할인된다던데 그거 타고 다니면 되지 않겠냐 싶지만. 실상 저가 항공이 다양한 만큼, 제주항공의 제주도민 할인보다 다른 저가 항공의 비행깃값이 시간대별로 상이하기 때문에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다. 제주항공은 이것을 노렸는가. 알 수 없지만, 육지 사람들이 제주로 여행을 와서 버린 애완견과 고양이가 한라산과 해수욕장에서 떠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그다지 육지 사람들과 비행깃값을 굳이 똑같이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육지에 살면서 육지 사람이 아닌 것 마냥 제삼자처럼 얘기하냐고 하겠지만. 육지는 그래도 전국 곳곳 어디든지 다니는 버스와 KTX 등의 다양한 교통편이 있는 반면에, 제주는 어디를 가도 무조건 비행기를 타야 하는 필수선택이기에 육지와는 다른 조건이라고 우기고 싶다.
▲ 저녁 8시에 주문한 고구마와 화장품이 그 날 자정에 도착 ⓒmoonlight_traveler
그렇게 뭐 하나 살라치면 꼬리처럼 배송비가 붙고 당장 필요한 것도 배송기간이 3일 이상 되던 곳에서 살다가. 육지에 거주하다 보니 TV 광고에서나 보던 컬0가 탐났던 것은 당연지사. '새벽배송'을 선보이며 광고하지 않았던가. 앱을 먼저 깔고 주문해 본다. 당일배송이라는데 언제 오나, 한번 두고 보자, 싶다. 그런데 세상에. 오늘 오전 10시경 주문을 넣었는데 저녁 7시에 띵동, 물건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린다. 놀라운 세상. 오늘 주문한 것이 오늘 도착하다니. 게다가 배송비도 없다니. 물건을 받아 상자를 열어보니 냉장, 냉동, 상온별로 물건이 나뉘어 안전하게 배송되어 있다. 게다가 냉장, 냉동에는 제품이 상하지 않도록 아이스팩과 드라이아이스가 들어있다. 구매한 계란이 부서질까 걱정했다. 구매한 꽃이 시들고 구겨져서 올까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기우였다. 계란은 종이와 박스에 잘 담겨 왔으며 꽃 또한 금방 딴 듯한 싱싱함 그 자체였다. 오 놀라워라. 육지사람에게는 익숙한 배달문화인 당일배송, 배송비 무료란 두 조건이 지방에서 온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비하인드 이야기지만 육지로 떠나는 우리에게 외지인들은, '뭘 사도 저렴하고, 당일 배송되고, 배송비 안 들어서 좋겠다.'라고 말하기도.
이전에는 왜 배달의 민족인 건가 싶었다. 딱히 음식 말고는 주문할 게 없었기 때문에. 그 조차도 그저 집 앞에 나가서 포장해 오면 그만이었다. 어플조차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당일배송', '배송비 무료'라는 곳에 거주하다 보니 배달의 민족의 타당성이 확증되고, 그렇게도 많은 이들이 배달의 신속성을 왜 그토록 원하는지 알게 되었다. 물론 신속하고 정확한 배달을 위해서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음을 알고 있다. 배송업체는 불이 꺼지지 않은 채 24시간 돌아가며 배달원 또한 밤새 달리고 또 달린다. 이를 알 수 있는 이유는 필자가 주문한 상품이 자정 12시, 새벽 2시, 아침 6시에 도착했다고 알림이 울리기 때문이다. 정말 혀를 내두른다. 이 시간까지 배달을 하다니. 그들이 얼마나 충실하고 고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우리의 편리성을 위해 그들이 그렇게 애쓰고 있다. 꼭 당장 필요한 물품이 아니더라도 고객이 원하는 물건을 로켓배송, 새벽배송으로 당일 혹은 내일 새벽 일찍 배달해 주는 배달의 민족들. 그들의 노고에 고맙고도 감사하다.
그렇다 보니 미리 물건을 챙기는 법을 잊어버렸다. 미리 살림을 준비하며 애쓰는 수고를 잃어버렸다. 당장 필요한 학교 준비물, 문제집, 문구류, 책도. 더욱이 오늘 저녁 식사에 필요한 음식 재료도. 지금 주문하면 오늘 혹은 내일 새벽에 도착한다. 이 신속함과 편리함을 어찌 손에서 놓치리. 제주에 거주하는 동생이 말하길, 제주에도 컬0가 생겼다고 한다. 뭐 주문하면 좋냐고 묻길래, 밀키트를 추천했다. 고기 같은 건 사실 제주 하00마트가 더 맛있기에. 여하튼 밀키트를 주문해 본 동생은, 당일 배송은 안 되고 오늘 주문 시 내일 도착할 거라고 한다. 그래도 3일 중 이틀은 빨라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살림살이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할 때 제주라서 배송비를 5천 원, 만원을 내야 하는 상황을 한탄해하며. 배송비 무료인 육지생활에 감탄을 하는 중이다.
이렇게 치열한 배달의 민족들 틈에서 당일배송, 배송비 무료를 만끽하며. 혹은 어떤 수고스러움과 애씀을 잃어버리며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육지생활에 물들고 있는 중이다.
당연한 당일 배송, 배송비 무료 잃어버린 수고스러움과 애씀
덧. 여행 다닌다고 1년에 2번은 육지 오면서 비행깃값을 기뻐이 감당했지만. 육지로 이사 온 후 제주는 여행이 아닌 고향이기에 비행깃값을 내기 아까워 가 보지를 못하고 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