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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 여행자 Jan 02. 2025

띵동, 사랑이 배송 예정입니다

물 건너온 택배

띵동! 정성을 다하는 00 택배입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17~19시 사이에 배송 예정입니다.
보내는 분 : 시아버님  
받는 분 : 며느리
상품명 : 김치 반찬

 

 휴대폰이 징징징 울린다. 문자가 왔다. 확인해 보니 오후에 택배가 도착할 예정이라는 택배기사님의 안내 문자다. 저녁에 택배가 도착할 예정인가 보다. 안 그래도 어제 시어머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며늘아, 집에 김치이시냐?"

 (며늘아, 집에 김치 있니?)

 "네, 조금 있어요."

 "그건 김치찌개로 먹고, 오늘 김치 또 보냄시매 내일 확인허라이."

 (오늘 김치 또 보내니 내일 확인해라.)

 "네, 감사합니다."

 "이제는 당일택배가 안 된다고 하더라. 그나마 겨울이니 다행이다. 도착하면 바로 냉장고에 정리해라. 아이들 먹을 고기랑 야채 이것저것 넣어쪄."

 (고기랑 야채 이것저것 넣었어.)

 시어머님의 걱정 어린 당부 전화에 오늘 택배가 배달될 것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기상이변 없이 이틀 만에 도착할 예정이다. 시어머님 말씀대로 추운 겨울이니 택배 상자에 담긴 음식도 별 탈 없이 배송되겠지. 물론 스티로폼 박스에 혹여나 음식 샐까 테이프로 꽁꽁 싸고는 아이스팩과 함께.


 여름에는 음식이 상할까 봐 드문드문 오던 택배가 다시 한 달에 한 번씩 물 건너오기 시작했다. 시댁과 친정에서 택배를 번갈아 보내주셔서 택배 배송 문자도 익숙하다. 사실 매번 택배가 도착하면 스티로폼 안에 가득 찬 음식을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 어떤 음식이 필요하냐는 두 어머님의 질문에 '괜찮다'라고 무심하게 대답하곤 했다. 며느리, 딸의 무심한 대답에도 불구하고 양가 부모님은 매달 택배 상자 한가득 음식을 보내신다. 담긴 내용물의 종류도 다양하다. 돼지고기 목살,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용, 국거리용, 갈치, 삼치 그리고 곰탕 끓여 얼린 것. 이뿐이랴. 브로콜리, 파프리카, 당근, 양배추 그리고 단호박 야채와 계절마다 감, 귤, 키위의 과일도 보내주신다. 다 제주산으로. '힘들게 보내시지 마세요. 여기 마트에도 다 팔아요.'라고 냉정하게 말씀드려도 부모님의 말씀은 다르다.

 "그래도 제주산이 맛있지. 고기도 그렇고. 야채도 다 제주에서 키우는 거잖아. 육지는 비싸지. 질도 맛도 다르고. 마트 간 김에 사다 둔 거니 잘 챙겨 먹어라."

 막상 택배를 열어보면 종류별로 비닐에 꽁꽁 싸여있다. 고기를 싸 둔 팩에는 '국거리용', '스테이크용' 그리고 '사랑이' 이름이 적혀 있다. 필시 마트에서 구입하고 냉동실에 넣어둘 때 헷갈릴까 봐 종류별, 손자 이름을 적어두신 것이리라. 굳이 제주 마트가 아니더라도 이곳 집 앞 300m만 가도 마트가 있고 그곳에서 다 구입할 수 있는 음식재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서는 '제주산'을 고집하신다. 하긴 '제주산'이 뭐가 다른가 싶겠지만, 육지생활 1년 차에 조카 돌잔치가 있어 모처럼 제주에 내려갔을 때. 저녁을 고깃집에 가서 먹었는데, 역시 고기 맛이 다르다며 허겁지겁 고기를 흡입했던 일이 기억난다. 물론 고기는 백돼지. 굳이 흑돼지를 먹지 않아도 제주산 돼지고기는 맛있다. 육지에서 '제주산 돼지'라며 멜젓이랑 파는 가게를 여러 곳 다녀봤지만 그저 제주 돼지고깃집을 흉내 낸 것일 뿐. 직접 제주에 가서 먹으니 오호라, 이 맛이다. 아들 표현을 빌리자면, 꿀 맛. 그 제주산의 맛을 그리워할 우리에게 택배를 정성스레 보내시는 부모님.




 제주에 있을 때 일이다. 육지에 계시는 부모님께서 이것저것 반찬을 택배로 보낸다는 외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웃고는 했었다. 약간의 비웃음이라 해두자, 약간의.

 "언니, 우리 어머님은 돼지고기, 소고기뿐만이 아니라 닭고기도 보내셔. 제주산을 먹을 수 있겠냐면서."

 "저희 어머님은 돼지고기에 튀김가루 묻혀서 돈가스 만들어서 보내주세요. 아이들 먹이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어머나, 제주에도 마트에서 다 파는데 굳이?"

 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했었다. 섬이어서 코스트코 같은 대형마트는 없어도 이마트, 홈플러스, 하나로마트(제주 지역의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생선을 가장 싱싱하고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마트다)가 있다. 게다가 고기류 뿐만이 아니라 유명한 구좌 당근, 양파, 브로콜리, 키위 등 원산지의 싱싱한 야채들도 즐비하다. 그런데도 굳이 육지에서 사서 보내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그러게요. 제주가 섬이어서 그런가. 별로 못 미더우신가 봐요. 육지만 못하다면서 달마다 꼭 보내시더라고요."

 신기했다, 그 당시에는. 그렇게 제주에 사는 외지인들은, 육지에서 부모님께서 보내시는 택배를 매달 공급받고 있었다. 아, 육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런데 한 치 앞도 몰랐다. 그런 고개 갸우뚱한 일이 내게 일어날 줄은.

 "00 이시냐. 마트 가신디 00가 저렴해서 사쪄. 육지보다는 나을 거여. 00 해서 먹어라."

 (00 있니. 마트 갔는데 저렴해서 샀어. 육지보다는 상태가 나을 거야.)

 "00 이시냐. 세일해서 사다 뒀쪄. 내일 도착햄시난 잘 살펴봐라."

 (00 있니. 세일해서 사다 뒀어. 내일 도착하니 잘 살펴봐라.)

 이 우려스럽고 걱정스러운 부모님들 손에 곱게 싸인 음식들이, 그 육지 부모님들처럼 매달 우리 집으로 공급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육지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각자 고향의 재료와 음식이 최고라고.

 그 와중에 반가운 택배는 바로 '요리하지 못하는 음식'이다. 어디에서도 구입하기 어려운 것, 예를 들자면 몸국, 성게국 같은. 어디를 가도 파는 식당이 없으며, 스스로 요리해서 먹지도 못하는 제주 향토 음식이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께서 가끔 만들어서 얼려 보내주시면 신나게 냉동실에 보관해 두고는 먹고 싶을 때 꺼내 먹는다. 꽝꽝 얼린 몸국, 성게국을 팔팔 끓이고 나면 집안 가득 풍기는 제주 바다 냄새, 고향 냄새.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다. 특히 성게국을 좋아하는 큰 아들은 오래간만에 만나는 바다 향기와 함께 성게국을 2~3그릇씩 들이키기도 한다. 너무 맛있다며, 먹고 싶었다며.


▲ (좌) 택배상자에 담긴 음식으로 차린 저녁 밥상. 몸국, 삼치구이, 파프리카, 버섯구이 (우) 김치 ⓒmoonlight_traveler


 물 건너온 택배 도착으로 오늘 저녁 식사 준비 걱정은 덜었다. 부모님께서 정성스레 보내주신 택배 안에 국거리, 반찬거리가 가득했기 때문에. 매일 아침마다 오늘 저녁은 뭘 준비해야 하나 냉장고를 뒤적거리고, 마트를 가야 하나 머리를 굴리던 참이다. 현관밖에 놓인 스티로폼 박스를 냉장고로 옮기느라 허리가 끊어질 뻔했지만. 그게 뭐 큰일이냐. 부모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장보고, 요리하고, 정성스레 싸시고는 보내주셨는데. 덕분에 얼려진 몸국을 뜨끈하게 끓이고 삼치와 버섯을 노릇노릇하게 굽고 파프리카를 깔끔하게 자르고 식사 준비를 마쳤다.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아이들도

 "할머니께서 음식 보내주셨어요?"

 라고 묻는 걸 보니 제주에서 택배가 왔음을 눈치챘다.

 "응, 이번에 갈치랑 성게국도 보내주셨어. 내일 저녁에 맛있게 차려줄게."

 

 코앞이 마트인데 아니 마트를 안 가도 손가락 버튼 하나면 필요한 음식 재료가 집 앞으로 오는데, 왜 굳이 고생하시면서 택배를 보내시는지 싫은 소리를 하던 며느리이자 딸이었지만.

 "가족들 다 같이 모여서 갈비 먹는데 너네는 먹지도 못하고."

 부모님의 눈물 섞인 목소리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맛있게 식사를 하시던 부모님께서는 우리 가족이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함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시고 계심을. 결국 그 택배 상자 안에 꾹꾹 눌러 넣어 담긴 건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그 사랑이 저 멀리 섬에서 험난한 바다와 수많은 산을 건너서 우리 집에 도착했음을.

 그렇게 매달 '띵동, 사랑이 배송 예정입니다.' 문자가 온다.









그 안에 꾹꾹 눌러 넣어 담긴 건 부모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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