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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안녕

_여수 여행기 (3)

by 달빛의 여행자

[ 보통의 하루 : #여수의 아침 #순천만습지 ]


#여수의 아침

아침 해가 떠오른다. 창밖을 내다보니 여수 바다, 남해가 우리를 반겨준다. 바다를 더 느끼고 싶어 테라스로 나갔다. 해는 이미 바다 위로 떠올랐으며 수많은 섬 사이로 안개가 가득하다. 바다물결은 언제나 그렇듯 잔잔하다. 시간이 멈춘 듯 평화롭고 고요하다. 그저 바람 따라 잔물결이 일렁일 뿐이다. 이 고요함을 깨듯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린다. 밑을 빼꼼히 내다보니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일을 하시며 대화를 하고 계셨다. 무엇을 하시나 들여다보니 그녀들은 아침 일찍 바다에서 건져 올린 생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해녀복과 테왁, 바구니가 보인다. 해녀분들이구나. 아침 일찍 물질하러 나섰다가 육지로 돌아와 마무리 작업을 하시고 계셨다. 여수 바다에서 해녀를 보게 되다니. 제주에서 해녀분들을 많이 뵙었지만 여기는 남해가 아닌가. 무엇을 캐고 오셨을까. 제주처럼 문어, 전복 아님 소라일까. 겨울철이니 굴을 캐셨으려나. 흐린 눈을 가진 자로서는 더 이상 어떻게 자세히 볼 수가 없다. 그저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잔잔한 물결을 두고 작업하시는 풍경의 아름다움에 넋 놓고 바라볼 뿐. 한 폭의 그림 같다. 남해 바다의 고즈넉함이 마음을 평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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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앞 여수 바다. 마음을 평안케 해준다 ⓒmoonlight_traveler


저 섬의 이름은 무엇일까. 저 바다 위를 통통거리며 가는 작은 배는 어디를 가는 걸까. 저 바다 위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양식장인가. 남해는 굴과 미역이 유명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쩜 이토록 바다가 잔잔할 수 있지. 봐도 봐도 매력적인 남해. 제주의 파도가 나의 억울함과 분노를 집어삼키듯 혹은 즐거움을 하늘 높이 둥둥 띄운다면. 남해는 그 모든 감정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듯하다. 평온하게 그저 화평하게.

"우리 저번에 EBS 극한직업에서 굴 작업하는 거 봤었잖아. 여기가 남해라 굴 양식장일 수도 있어. 아님 미역인가. 미역 양식하는 것도 EBS에서 봤었지. 제주 바다랑 정말 다르지."

"여기에서도 수영할 수 있어요?"

"글쎄. 여기는 어업 하는 곳 같아. 그래서 수영은 안 될 것 같고."

"그럼 우리도 소라 캘 수 있어요? 우리 손으로 문어도 잡았었는데."

"아, 여기는 해녀들이 관리하는 곳이라 안 될걸. 아쉽지만."

어느 곳이든 바다만 보면 수영하고 무언가를 캐겠다고 하는 아이들. 이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여수를 떠나야 할 시간. 여수 바다 물결의 잔잔함을 눈과 마음에 한가득 담아본다. 이제 또 언제 볼 수 있으려나. 여수 바다 안녕.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너와 함께 오

<여수 밤바다> by song 버스커 버스커


KakaoTalk_20250114_130458786_08.jpg ▲ 고속도로에서. 여수, 다음에 만나자! ⓒmoonlight_traveler



#순천만습지

- 전남 순천시 순천만길 513-25

명절 연휴 마지막 날이라 고속도로 정체를 우려해 일찍 여수를 떠났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생각보다 고속도로가 뻥뻥 뚫리는 탓에, 지나가는 길에 순천만습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부부의 계획적인 'J' 성향과는 정반대인 여행일정이다.) '순천만습지'는 전라남도 순천시 지역에 있는 만(灣)으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생태계가 원형 그대로 보전된 연안습지(국내 유일)다. 국내 최대 흑두루미 월동지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2021년에는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2025~2026년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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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순천만에 있는 오두막 (중간) 순천만습지 입구 (우) 순천만습지 액자 조형물 ⓒmoonlight_traveler


여수가 바다 근처여서 그랬는지 늘 안개가 자욱했다면. 순천만습지는 햇빛이 쨍쨍 갈대가 하늘하늘거린다. 이렇게 햇빛이 따사로울 수가. 개인적으로는 20여 년 전에 순천만을 방문했었다. 그 이후 남편, 아이들과 재방문하게 되니 새롭다. 그때는 여름이라 관광객이 엄청 많았는데 겨울과 명절인 오늘은 그나마 한적하다. 들어서니 곳곳에 사진 스폿이 있다. 양평 소나기마을에서 봤던 오두막, 양평 두물머리에서 봤던 사진 액자 조형물이 여기에도 있다. 이런 사진 스폿을 놓칠 수가 없지. 두 아들을 앉혀놓고 '웃어봐'하며 연신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다. 남는 건 사진뿐. 열심히 우리 모델들을 찍어야지. 눈부시게 푸른 하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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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흑두루미떼가 논 위를 날고 있다 (우) 망원경으로 본 논에 앉아있는 흑두루미, 기러기 떼 ⓒmoonlight_traveler


순천만에 겨울철새들이 머물고 있다. 입구에 있는 '모니터링 결과 표지판'을 보니 흑두루미 5973마리(멸종위기종), 독수리 12마리, 노랑부리저어새 36마리, 기러기류 5750마리, 오리류 11000마리, 큰고니 5마리가 있다. 이렇게 많은 종류와 수의 철새들이 있기에 순천만습지 근처 도로에 들어설 때부터 '절대 경적을 울리지 마세요. 새들이 놀랍니다.'라고 적힌 안내문이 여기저기 붙여져 있었구나. 와, 이렇게 많은 철새들을 보는 건 처음. 처음에는 '철새들이 어디 있지' 두리번거리다가 눈앞에 펼쳐진 드넓은 논 위에서 시커멓게 있는 새 무리들을 보며 아. 감탄을 내질렀다. 저렇게나 많다고. 이 많은 철새들이 어디에서 왔고 다시 어디로 간단 말인가. 우리가 몰래 그들을 지켜보는 것도 모르는 듯. 그들은 무리 지어 산책하며 평화로운 오전 한 때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슨 소리가 들렸을까. 갑자기 새들이 떼를 지어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파르르 파르르. 그들이 논 위를 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 마치 전투기들의 '에어쇼' 같다. 분명 논을 박차고 무리를 지어 하늘에 올라갔는데 바로 V자 대형을 만들며 날아가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이 신기하고 경이롭다.

습지 입구 쪽에 전망대가 있다. 3층 전망대에 들어서면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볼 수 있게 준비되어 있다. 망원경으로 철새들을 보건대, 논 위에 새까맣게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저 한가롭게 모여 앉아 먹이를 먹는 모습이라니. 물론 서로 이야기도 하고 가끔씩 날기도 하겠지만.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인다. 이렇게나 많은 철새들이 있는 만큼 저 논에는 풍부한 먹을거리와 자원들이 있는 거겠지. 그만큼 이 순천만습지가 보호되어야 할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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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 순천만습지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 (우) 데크따라 걸어가면 갈대 사이로 습지를 걸어갈 수 있다 ⓒmoonlight_traveler


순천만습지에 들어서서 전망대, 공원, 여러 모양의 조형물 그리고 논의 철새들을 보고 나면 갯벌과 습지가 보인다. 갯벌과 습지가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냐고. 이곳이 바로 국내 유일 '연안습지'다. 이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지역에 형성된 습지로 갯벌과 습지가 결합된 형태이다. 그래서 순천만습지는 갯벌과 습지가 모두 존재하는 독특한 생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수 간만의 차이로 인해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면서 형성된 갯벌이 있지만, 그 지역은 또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자생하는 습지로서 기능을 한다. 그래서 이곳이 갈대밭이나 해양 식물들이 자라고 다양한 철새들이 지나가는 중요한 서식지인 것이다.

눈앞에 바다가 펼쳐졌다. 때마침 배가 통통 거리며 지나간다. 이 배는 '생태체험선'. 이 배를 타고 이곳에서 바다까지 한 바퀴 돌아보며 순천만습지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왼쪽을 보니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지고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데크를 만들어놨다. 데크를 걸으며 보니 갈대밭은 갯벌이다. 혹여나 갯벌에 사는 농게, 붕어가 보일까 싶어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지만 숨구멍처럼 뻥뻥 뚫린 구멍만 보일뿐. 아이들과 술래잡기하듯 세밀하게 찾아보지만 보이지는 않고. 청둥오리들이 보일뿐. 아이들은 오리마저 신기한지 한참을 들여다본다. 귀염둥이 청둥오리들.

갈대밭 사이를 걷자니 대학생 때 '갈대'를 두고 친구랑 맞다 틀리다 운운했던 게 기억난다. 제주에 살던 필자는 이 식물을 '억새'로 알고 있었다. 내륙 구미에 살던 친구는 이 식물을 '갈대'라고 했다. 억새야, 아니야 갈대야.라고 서로 의견이 분분하던 차에 그 당시 기숙사 컴퓨터실에 가서 인터넷에 검색해 봤던 때가 떠오른다. 그래서 어떤 차이가 있냐고. 억새는 산지나 벌판, 논밭에서 자라며 갈대는 습지나 늪지대, 강가와 같은 물이 있는 지역에서 자생한다. 결국 제주 밭에서 억새를 보고 자란 필자와 내륙 구미에서 갈대를 보고 자란 친구의 차이였던 것이다. 잊지 못할 웃픈 이야기. 그래서 그 이후로 억새와 갈대의 차이를 정확히 알게 되었고. 한강변을 따라 걷고 있노라면 강가에서 하늘하늘 거리며 반겨주는 자는 '갈대'임을 정확히 알고 있다.


겨울이지만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다. 햇살도 따스하게 비친다. 언제나 우리를 환영해 주는 은빛 물결의 반짝임 윤슬까지도. 그리고 데크 따라 걸어가는 길 양옆으로는 갈색의 갈대들이 바람 따라 꽃잎이 하늘하늘 흩날리듯 춤을 춘다. 모든 것이 평화롭다. 저 멀리 겹겹이 쌓여 보이는 산들의 모습조차 호기롭다. 천천히 걸어가며 겨울의 따스함을 느껴본다. 복잡한 도로와 붐비는 차 그리고 사람들 속에서 어찌나 바쁘게 살아왔는지.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그 와중에 저 데크 위에서 '나 잡아봐라'하며 뛰어다니는 남자아이 두 명만 뺀다면.



#3일 차 여행을 마치며

아이들아 이번 여행 어땠어. 오랜만에 캐리어에 짐 싸고 너희들이 좋아하는 호텔에서 잠도 잤네. 무엇보다도 2박 3일간 '전라남도 여수'라는 곳을 여행했고. 우리 가족 모두 여수는 처음이잖아. 특히 남해바다가 색달랐던 것 같아. 오래도록 봐오던 바다와는 다르게. 저번에 새해맞이 갔었던 '서해'와는 또 다르지. 그러고 보니 이제 '동해'만 가보면 되겠다. 남해 바다는 작은 섬들도 많고. 양식장들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물결이 잔잔해서 매력 있어. 아빠는 여수에서 '간장게장'이 제일 마음에 들었대. 처음 맛봤는데 양념이 짜지 않고 게살이 고소해서 좋았나 봐. 너희들은 어때. 이순신 장군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구나. 그래, 여기는 책에서만 보던 이순신 장군님께서 임진왜란 때 직접 전투를 벌이신 역사적인 곳이야. 뜻하지 않게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던 뜻깊은 여행이었어. 돌발적인 여행지였지만 오는 길에 '순천만습지'에서 흑두루미 떼도 만났지 않니. 갈대숲도 고요하니 정말 좋더라. 날씨도 좋고 말이야. 갑작스러운 2박 3일 여행이었지만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어. 이제 다시 고속도로를 타 볼까. 서울까지 몇 시간 걸릴까. 이번에도 ok google에게 아재개그 물어보면서 가보자고. 이제,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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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지리산' 국립공원 (우) 춘향휴게소에 있던 '그네'. 춘향이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를만큼 그네를 타본다 ⓒmoonlight_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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