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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위에서

_태릉국제스케이트장

by 달빛의 여행자

[ 보통의 하루 :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매점 ]


겨울 하면 스키, 스케이트. 사실 따뜻한 남쪽 제주에서는 스키를 타본 사람은 드물다. 고등학교 시절, 스키장으로 수학여행 가던 남학교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제주에서는 타볼 수 없기 때문에 흔한 스포츠는 아니다. 그래서 스키장은 가본 적이 없으며 스케이트는 국제학교에 있는 스케이트장에 두 번 정도 갔었다. 이는 아이들 경험차. 사실 필자도 청년 때에 울산에 있는 스케이트장을 가본 적이 있는데 그때 아슬아슬 타다가 얼음 위로 엉덩방아만 찧었던 기억만 있는지라. 손발이 얼어붙은 춥디 추운 스케이트장이 그리 반가운 장소는 아니다. 생각만큼 훨훨 타지 못해 더 추운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을 맞아 우리 가족은 스케이트장으로 떠났다.


#태릉국제스케이트장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1

육지 어느 스케이트장을 가볼까 검색하던 차에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이 나왔다. 이곳은 국내 유일 국내 최대, 국제 규격의 400m 실내링크로서 국가대표선수들의 훈련장소이다. 일반인들에게도 공개하여 생활체육보급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기에 타 빙상장 보다 저렴한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용시간 : 일반공개 10:00~18:00
휴일 : 연중무휴
이용요금 : 입장료 어린이 3,000원 / 청소년 3,500원 / 성인 4,000원
스케이트 대여료 : 4,000원
헬멧 대여료 : 800원

두말없이 이곳으로 향했다. 눈이 펑펑 내린 주말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은 이미 만차였으며 들어가는 입구부터 차들로 북적거렸다. 이렇게 차들이 많으면 실내 링크장도 복잡하지 않을까. 초보자인 우리가 제대로 탈수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그러나 기우였다. 겨우 주차하고서 들어선 스케이트장 입구부터 와우. 큰 규모의 빙상장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이렇게 큰 아이스 링크장이라니. 국내 최대 규모답구나. 제주에서 봤던 링크장은 비교가 될 수 없다. 우리 모두 놀라워하며 링크장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이기도 했지만 실내의 빙상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낮은 온도가 유지 중이다. 몸이 서늘해진다. 추워.


링크장에는 자유롭게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 몇 명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걸로 보아서 스케이트 수업받는 학생들. 또 가운데 동그란 링크장에서는 피겨를 하는 듯한, 김연아선수와 같은 모습을 한 학생들도 보였다. 피겨스케이트를 강습받는 듯했다. 이렇게 다양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들을 직접 보게 되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놀라움의 연속 가운데 우리는 대여소에서 스케이트와 헬맷을 대여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스케이트로 갈아 신었다. 인라인과 같이 신발이 꽤나 무게가 나가고 발등이 높은 우리 아이들은 스케이트 신기에 꽤나 낑낑거렸다. 엄마의 도움이 절실하다. 아들 앞에 앉아 발을 스케이트 안에 넣기에 힘을 써본다. 오래간만에 쪼그려 앉아 스케이트 신기기에 힘을 쏟다 보니 얼굴에 피가 다 몰리는 듯하다. 어휴, 어렵다. 스스로 좀 신어보지. 마음속에서 불만이 토해져 나온다. 벌써 열이 올라오는 듯 더워지기 시작한다. 아까는 추웠는데 조금 움직이니 또 더워지네.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듯하다. 어찌어찌하여 스케이트를 신고 방수장갑까지 끼고 헬맷을 썼다. 장비는 다 갖춘 듯한데. 바지가 아쉽다. 둘러보건대 다른 아이들은 스키복 즉 방수방한바지를 입고 온 듯했다. 얼음 위에서 넘어지거나 앉아도 젖지 않고 포근하고 따뜻하게 몸의 온도를 유지해 줄 방수방한바지.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겨울맞이 새로 장만한 기모바지를 입었을 뿐. 아, 아쉽네. 미리 방수방한바지를 준비하지 못해서. 지금 와서 어쩌랴. 기모바지로 만족하며 그냥 타 보자. 바지 안에 기모가 그나마 몸의 체온을 유지해 주겠지.


이제 링크장으로. 바로 문을 열면 링크장으로 진입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선생님이 계신다. 하지만 운동실력이 조금은 부족한 남편과 사랑이는 안전하게 계단을 이용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다 같이 스케이트 날을 세우며 성큼성큼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서 지하통로를 지나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링크장으로 올라서니. 와우. 가까이서 보니 더 놀랍다. 큰 원형의 링크장 하나. 그 안에 작은 링크장이 2곳. 그곳에서 각각 다양한 모습으로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KakaoTalk_20250206_133750027.jpg ▲ 얼음 위에서, 기쁨이 ⓒmoonlight_traveler


담대하고 운동신경이 좋은 기쁨이는 바로 아이스링크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는 한 발 한 발 번갈아 스케이트를 얼음 위로 내딛는다. 곧잘 중심을 잡는다. 역시.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군. 기쁨이는 두 발 자전거도 하루 만에 스스로 탄 아들이다. 그만큼 운동신경이 좋은 편.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스케이트를 오랜만에 신고서 얼음 위를 걸으며 큰 링크장을 돌기 시작했다. 혼자서.

반면 겁이 많고 운동신경이 조금 부족한 남편과 사랑이는 '작은 링크장이 안전해.' 이러면서 둘이 손을 꼭 붙잡는다. 그리고 한발 한발 얼음 위를 내딛기 시작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깨질 것 같은 얼음 위를 걷듯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늘 안에 탈 수 있을까. 뒤로 꽈당 넘어질까 양팔을 좌우로 쫙 벌리고는 한발 한발 내딛는 모습이 아슬아슬 줄타기 같다. 툭 치면 넘어질 것 같아. 오뚝이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웃음만 나온다.


즐거움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이었을까. 옷 사이로 등이 흥건히 적기 시작했으며 헬멧 사이로 땀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 감기 걸릴라. 정빙 기계가 빙질을 고르는 사이에 모든 이들은 링크장에서 나와 휴식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링크장 안에 있는 간이의자에 앉아 땀을 닦았다.

"이 땀 봐라. 감기 걸리겠다. 땀 잘 닦자. 물도 마셔."

"어휴, 아빠는 너무 긴장했는지 다리가 아프다. 너희들은 괜찮아?"

"네, 재밌어요. 이번에는 더 빨리 달려볼게요."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 특히 다른 사람들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고."

"아, 저는 조금 더 쉴래요. 허리도 아프고. 너무 힘들어요."

"그럼 사랑이는 아빠랑 조금 더 앉아서 쉬자."

넘어질까 긴장을 하며 조심조심 거북이처럼 걷던 남편과 사랑이. 얼음 위에서 진땀을 뺐는지 헉헉거리며 쉬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반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얼음 위에서 자유롭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게 좋은 기쁨이는. 휴식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스링크장으로 성큼성큼 발을 뻗었다. 그리고는 발을 조금씩 앞으로 내밀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다.

"오, 기쁨이 대단하네. 조심해. 엄마가 동영상 찍어줄게."

스스로 타는 법을 터득하고 담대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아들의 모습에 엄마는 핸드폰을 내밀어 동영상과 사진을 동시에 촬영하기 바쁘다. 그러든 말든 스케이트 훈련받는 선수(학생)들은 옆으로 쌩쌩 지나갈 뿐. 직접 보니 대단한 실력이다. 올림픽 때 TV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 다들 쇼트트랙 스케이트 선수들 같다. 어찌 저리 몸놀림이 빠르단 말인가. 바람을 가르며 슝슝. 그 누구보다 더 빠르게 지나간다.

그들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기쁨이가 갑자기 왼발을 들어 뒤로 뻗어서는 스케이트 날을 얼음 위로 꽂는다. 마치 스케이트 선수가 출발선에 선 것처럼. 그리고는 허리를 굽힌 상태에서 한 손을 뒷짐 지고는 발을 번갈아가며 앞으로 뻗는다. 얼음 위에서 부드럽게.

"엄마, 저 스케이트 선수 같죠."

"진짜 스케이트 선수 같다. 대단한데."

스스로 해낸 자신이 자랑스러운 기쁨이는 스케이트 선수 같은 포즈로 큰 링크장을 돌기 시작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큰 빙상장을 신나게 돌아다니는 기쁨이 모습에 남편과 사랑이도 자극을 받았을까. 둘이 엉거주춤 자세로 일어서더니 다시 얼음 위에 섰다.

"사랑아, 빨리 가려고 하지 말고 조심 천천히 타봐. 처음부터 잘 타기 어려워. 배우지도 않았는데 뭘."

사랑이는 허리를 조금 구부리고. 무릎을 굽힌 채. 조금씩 조금씩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다.

"와우, 사랑이도 잘 타네. 대단한걸. 이 작은 링크장 한 바퀴만 돌아보자. 엄마가 쫓아갈 테니깐 넘어질 것 같으면 손 뻗어. 잡아줄게."

응원에 힘입은 사랑이도 링크장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작은 링크장에서는 피겨 스케이트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수업을 받는 중이다. 김연아 선수처럼 다양한 포즈들을 취하며 점프도 하고 공중회전도 서슴없이 한다. 대단하군, 다들.


여러 가지 모양으로 훈련받는 학생들과. 우리 가족같이 천천히 스케이트 걸음을 떼는 사람들과. 친구들과 놀러 왔는지 무리 지어 얼음 위를 쌩쌩 달리는 청소년들과. 서로 각자 어울리며 이 추위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스케이트를 탔다.



#매점

-태릉국제스케이트장 내(內)

땀을 뻘뻘 흘리고 나니 배고픔이 몰려왔을까. 스케이트 장내에 있는 매점을 이용하기로 했다. 라면, 가락국수, 김밥, 어묵, 떡꼬치, 떡볶이 등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매점의 크기는 작고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 사람들이 서서 먹거나 간이 의자에 앉아서 먹는 상황도 펼쳐지고 있었다. 기다림 끝에 겨우 자리를 잡고서 아이들은 뜨끈하게 라면과 떡볶이를 선택했다. 한번 먹어볼까. 오, 맛있다. 이런 매점들은 경험상 오래전에 만들어놓기에 기름지거나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여기는 금방 조리한 듯 뜨끈하고 맛있었다. 군침이 돈다. 아이들을 땀을 흘린 만큼 허겁지겁 맛있게 라면과 떡볶이를 먹었다. 역시 뜨끈한 음식이 최고군.

배불리 먹고 나니. 다시 아이스링크장으로 가볼까. 벗어뒀던 스케이트와 헬멧, 장갑으로 다시 무장하고 링크장으로 걸어가 본다.



#여행을 마치며

아이들아 오늘 어때? 겨울 하면 스케이트, 하면서 스케이트장을 왔는데 예전에 제주에서 보던 스케이트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하는 곳 이래. 사실 여기는 태릉선수촌이라고 올림픽 대회 나가는 선수들이 합숙훈련하는 곳이거든. 와. 그곳이 어딘가 했는데 바로 여기였네. 신기하다. 스케이트장이 크니깐 사람들이 많아도 복잡하지 않고 좋은 것 같아. 게다가 매점 음식도 맛있고.

세 번째로 스케이트를 타봤는데 어때. 세 번째여서 그런지 조금씩 잘 타더라. 사랑이는 허리가 아팠어. 허리를 굽혀서 타는데 넘어질까 봐 긴장돼서 몸에 힘이 들어갔나 보다. 집에 가서 욕조에 뜨끈한 물 받아놓고 반신욕 하자. 그럼 좀 나아질 거야. 기쁨이는 재밌었어. 기쁨이는 스케이트 선수 같더라. 다음에 또 오고 싶구나. 다음에 오면 오늘보다 더 잘 탈 수 있을거야. 그런데 어쩌나. 아빠가 잘 탈 줄 알았는데 은근히 못 타서 낑낑대는 모습이 너무 웃겼어. 의외다. 기쁨이가 아빠 좀 가르쳐줘. 아빠가 잘 타야 엄마도 배우지. 하하.

또 배고프지. 가는 길에 햄버거 사 먹을까. 다음에 또 스케이트 타러 오자. 다음에는 엄마도 도전. 이제, 집에 가자.









엄마,
저 스케이트 선수 같죠











덧. 최근 한라산에서 스키를 타는 사람들이 있다는 뉴스를 봤다. 이 어찌 허무맹랑한 뉴스란 말인가. 엄연히 국립공원이며 눈 덮인 아래에는 조릿대 등 귀한 식물들이 자라고 있을 텐데 말이다. 스키탈 때 필요한 부츠, 플레이트, 폴까지 육지에서 제주까지 가지고 가서 탔단 말인가. 정말 몰상식한 사람들이다. 인터뷰를 통해 '아무도 해보지 않았기에 해보고 싶었다. 하지 말라, 하면 더 해보고 싶지 않냐.'라는 낯 뜨거운 말을 하는 그들에게 엄중 처벌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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