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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생활이 힘듭니다

소심한 중간관리자 이야기

by 세인트




난데없이 사회생활이 힘들어졌다.

이제 어디 가서 나이로도 꿀리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도 중간관리자에 와 있다.

평안과 회복이 찾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더 불안한 이 상태는 무엇인가.

내가 느낀 중간관리자는

빵과 빵사이에서 다양한 맛을 내는 패티가 되어야 했다.



중간관리자는

결정을 빨리 해줘야 한다.

결재가 올라오면, 직원이 보지 못하는 위험요소를 발견하되,

겸손하고 인자하게 지적해줘야 한다.

자간이 어떠고 글자색이 어떠고... 하지 말고 숲을 봐야 한다.

일이 잘못되면, 내 책임이라고 멋짐도 보여줘야 한다.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

상사에게 터지고 와서 직원들에게 되갚아주면 안 된다.

따뜻하되, 직원의 사생활을 캐물으면 안 된다.

업무를 두루 알고 타 부서 협조를 얻어내줘야 한다.

일은 스마트하게 밥은 알아서...

혼자좋아서, 업무시간 외에 이벤트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블라블라



몇 년 안 되는 중간관리자 경험상 실감한 것들을 적어보았다.

나는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가

놉!


'제가요? 지금요? 왜요?'

직장인 MZ세대 '3요'라고 한다.

상사로부터 급하게 들어온 지시사항을 직원에게 전달할 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직원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눈썹을 추켜올리며,


'네?'


'지금요?' (지금 나 다른거 하고 있는거 안보이냐)


'제가요?' (내 업무도 아닌거 같고만)


'왜요?' (나 바쁘고, 내 업무도 아니고, 당신이 하면 되잖아)


이런 싸늘하고 당돌한 반응을 3연타로 경험한 적은 없다.

하지만, 1연타씩 맞아본 적은 있다.

그럴때면, 솔직히 정이 뚝 떨어진다고 해야 맞겠다.

나는 참 좋은 상사였다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잘 해줬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상처받고, 정 주지 말아야지, 웃음기 빼고 일해야지 등등

퍽도 소심한 생각들이 머리를 채운다.

8시간 넘게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다양한 형태의 대화들이 오고 간다.

지시, 명령, 협조, 협의, 타협, 논쟁, 허락......

데리야끼소스를 뿌릴지, 갈릭소스로 할지, 타르타르소스로 버무릴지

줄줄이 시어머니 상사들과 속을 알 수 없는 직원 사이에서

상황에 맞춰 얼굴을 갈아끼며 대처해야 한다.


내내 직원으로 경주마처럼 일하다가, 갑자기 넓고 깨끗한 책상이 주어지니

어색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내적갈등으로 힘이 들다.

승진만 해봐라 내 모든 것을 품으리라, 했던게 거짓말처럼 예민해졌다.


상사 눈치에 직원들 눈치까지 힘들다며 이꼴저꼴 보기싫다는 생각까지 한다.

지금 그만두면 퇴직연금이 어떻게 되나 검색해본다.

관둘 수 없는 금액이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 모든 고뇌와 괴로움은 급여에 포함된 것이라고.

관두면 자리 하나만 만들어주는거고, 기뻐할 사람이 더 많을거라고.

관두면 할 줄 아는게 없으니, 몸뚱이 하나 남을거라고.


상사 보기를 어버이처럼 여기고,

직원 보기를 그 어버이의 어버이처럼 여기자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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