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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싫은 표현을 못합니다

바보는 아닙니다

by 세인트


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 '나'를 알아내면

앞으로의 삶이 단단해질 것 같다.

지금은 누르는 모양대로 눌러지는 반죽 같아서 말이다.

이리 치대고 저리 치대다가 어느 정도 점성이 생겼다면 발효를 시켜야 한다.

발효가 잘 된 반죽은 맛있는 빵을 만들어 낸다.

공자가 말하길 나이 40은 불혹이라 했다.

'세상 일에 현혹되어 판단이 흐려지지 않을 나이'라고 했다.

나이 40은 한참 전에 지났다.

사실 35살부터 나이 세는 일을 잊어버렸다.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철근도 씹어먹는 청년이라느니, 결혼, 출산 적령기라느니 모두 지났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나이에 돌입한 것 같다.

40세 생일이 딱 지나는 때부터, 불혹이라고 명찰을 달아주는 것은 아니다.

살다 보니,

살다 뒤돌아 보니,

내 나이 40을 넘겼고, 공자님 말씀이 불현듯 스칠 때가 오더라는 것이다.




엊그제 일이다.

앞뒤로 다른 부서 직원들이 줄 서있고, 그 가운데쯤, 나와 한참 어린 직원이 줄을 서있었다.

그 직원은 나보다 열 살 이상 차이가 나고, 말라깽이 직원이다.

친근한 표현으로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화들짝 놀라며, 어이없게도 큰소리로

"와, 와, 어깨... 뭐예요?"

앞뒤로 넘쳐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약간 민망함을 느낀 나는

"왜, 어깨 좋지?"

"네!! 어깨 진짜 좋아요, 운동하셨어요? 와... 와..." (연신 어깨를 매만지며)


더 민망해진 나는 눈빛이 흔들렸고, 어깨를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싶었다.

어깨가 좋다는 의미는 어깨가 튼튼하고 짱짱하게 잘 구축돼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의 어깨는 마치 옷걸이를 집어삼킨 듯 딱 떨어지게 기역자를 그리고 있다.

나름 쇄골뼈와 일자로 연결돼있어, 제니의 일자어깨를 닮진 않았나 으쓱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좋다는 말을 듣고도 좋지 않은 내 기분은 뭘까.

일단, 여성의 골격을 두고 운동한 것처럼 좋다는 것은 상처가 될 수 있다.

더구나 나는 어깨 운동을 한 적이 없고, 순전히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당황하지 않은 척, '왜, 어깨 좋지?'라며 답까지 던져준 나 자신이 창피했다.


나에게는 이런 일이 왕왕 일어난다.

퇴근 후 가족들에게 상담을 했다.

가족들은 그런 일을 알기 때문에 이번에도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일단은,

상대의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으므로,

아무리 좋은 뜻으로 했다 해도, 그 직원이 무례했다는 사실 하나.

그러나,

지속적으로 그런 상황 때마다 상대에게 기분 나쁨을 확실하게 표현하지 않고

웃어넘기는 애매한 나의 태도 문제 하나.

그랬다. 나는 줄곧 그래왔다.

상대의 말에 화가 나고, 상처가 되어도 나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해 왔다.

남편은

'당신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려 하지 마라'

라며, 아주 객관적이지만 기분 나쁜 조언을 해주었다.

그 충고같은 조언은,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라 더 기분이 나빴다.




내 나이 불혹을 지난 지금은 외모 평가 자체가 예전만큼 상처가 되진 않는다.

상처가 되는 것은, 상대의 그런 태도를 유발하는 '나 자신'이다.


나는......

_먼저 약속 잡는 일은 없지만, 밥 먹자거나 만나자는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_거절해야 하면 더 미안해한다.

_예쁘다거나 잘한다는 칭찬에 극구 아니라며 부인한다.

_상대가 잘되야 내 마음이 편안하다.

_내가 잘돼서 칭찬받으면 상대 눈치가 보인다.

_잘해내려 노력하지만,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견딜 수 없다.

_오늘 눈 화장이 어떻다, 옷이 어떻다 등등 외모 평가가 불편하다.

_관심받기 싫어, 무채색으로 늘 비슷한 옷만 입는다.

_관심받기는 싫지만 촌스럽기는 더 싫다.




그동안 남의 시선에 신경쓰느라 피로했던 자신을 발견한다.

내면의 목소리는 지극히 개인주의적이면서, 남들의 시선과 평가가 두려워 동화되는 척,

재밌는 척 하며 살아왔다.

'척 놀이'를 하다 집에 오면 녹초가 되곤했고, 즐거웠다기보다 피곤했다는 마무리를 짓는다.

그럴 필요가 있나?

그러지말자.


법정 스님의 말씀을 떠올린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순간, 자신을 잃기 시작한다.
너를 지켜라.



그리고,

아주 중요하고 소름돋는 사실 하나가 있다.






생각보다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남들의 말에 기분 나빴다면, 우아하게 응대하자.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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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나는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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