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나는 사십대 중반이지만,
아직 이십대 못지않은 꿈과 희망이 있다.
왜 굳이 이런 소리를 하냐면. 중학생 딸내미가 물어온다.
엄마도 사춘기, 말괄량이 시절이 있었냐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썸타고 막 그러구 그랬냐고.
응. 그랬다고...
그랬다고 대답만해봐 완전 소름끼칠거야라는 듯이
딸은 딴청을 피운다.
그럴리 없단다. 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닐거 같단다.
딸이 말하는 뉘앙스는 알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엄마.
간질간질한 감성은 애초에 배운적이 없고,
있다해도 생전에 써먹을 일 없고 사치일 것 같은 엄마.
그렇게 살기 싫었는데 느그아빠땜에 이렇게 됐다고 말해야 속이 시원한 엄마.
세상이 좋아져서 가만히 있어도 나라가 먹여살린다고,
이제 편하게 살으라고 해도 놀지 못하는 엄마.
......그런 엄마도 꿈과 희망이 있었을 터다.
엄마 자신의 꿈과 희망을 피워보기도 전에,
살림과 자식뒷바라지를 위해 빈틈없는 삶을 살아오셨다.
엄마의 손은 마디마디 굽어있다.
손이 말해주듯,
엄마의 세월은 반듯했던 적이 없었다.
우리에게 반듯하고 깨끗한 길을 주고싶어서
당신의 삶은 모질게도 척박하였다.
그런 엄마는 요즘, 그 척박했던 삶을 쏟아내는게
마지막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꺼내놓으신다.
어렴풋이 알고 넘어가고싶었던
아빠와의 결혼설, 내 집 장만설, 아빠와의 우당탕탕설,
죽다살아난 사고 극복설, 등등
우리가정의 평화와 안정은 엄마가 다 이룩하셨다는
미담을 얘기하신다.
스물도 되기전에 일곱살이나 많은, 아저씨같은 남자에게 순결을 뺏기고,
선택은 시집밖에 없었다는...낭만을 일부러 빼버린 듯한 결혼이야기.
우리 남매 탄생이 이렇게나 억지스러웠나 싶은게 아니 듣는게 나았다.
게다가, 기댈거 하나 없는 가난한 친정과 시댁의 향연.
그 모든 쪼들리는 살림살이에도
젊었던 엄마의 활발함과 생기가 기억난다.
그러니까......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도 꿈과 희망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사십대 중반의 나이를 먹고보니 그렇다.
엄마도
이 녀석들이 다 크고나면
못다한 배움을 해볼까,
남들 다가는 해외여행도 다녀볼까,
못입던 옷들 맘껏 입으면서 돌아다녀볼까,
...
...
하지만 굽은 손은 여전히 하던 일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손빨래를 하면서 햇볕에 바짝 말린 빨래를 고집하고,
합성세제는 미끈덩거려서 안쓴다며, 비릿한 수제 빨래비누 냄새를 사랑하며,
직접 기른 채소로 자식들 먹이는 친환경 야채 공급자로 허리와 다리가 성하질 않고,
그 와중에 인류애를 실천하고자,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계신 엄마.
지금이라도
엄마의 꿈과 희망이 뭐였는지 정말 알고싶다.
'느그아빠'가 준 삶의체험현장 말고,
'진짜 엄마' 자신이 꿈꾸었던 소박한 꿈 하나.
그것이 알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