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하찮지 않은
가는 데 순서 없다고, 언제 떠날지 모르는 거다.
마흔여섯의 지금, 인생의 어느 지점까지 와있는지 확정할 수 없다.
다만, 100세 인생이라 친다면 반절 정도를 산 셈이다.
그동안 느낀 삶의 잡동사니들을 적어본다.
1. 직장 생활
21년 동안 한 직장만 다녔다. '철밥통'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공무원이다. 어떤 충격에도 깨지지 않는 철로 된 밥통을 뜻하고, 그만큼 안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 밥통아, 그것도 몰라' 하는 것처럼 아둔한 의미로 들린다. 자격지심 같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고 첫 출근을 했던 때가 기억난다. 최대한 똘망하고 부지런한 이미지를 주고 싶어 온몸에 힘이 들어갔었다. 그때, 2004년에는 사무실에 담배 재떨이가 있었다. 아마 끝물이었던 것 같다. 부서의 가장 높은 분 과장님 자리에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보다 1년 먼저 임용된 또래의 여직원이 있었다. 잔뜩 긴장한 나에 비해, 사무실을 활보하는 인어 같은 그녀는 끼로서 텃세를 부렸다. 나의 뚱함은 그녀와 비교당하기 일쑤였다. 그녀는 아침에 출근하며 인사, 점심에 밥 먹기 전 인사, 밥 먹고 나서 인사, 잠깐 출장 갈 때 인사, 출장 다녀와서 인사, 야근하기 전 야근한다고 인사, 퇴근하면서 내일 보자고 인사....... 하루 종일 하이톤으로 인사를 해댔다.
나는 그에 비해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시점에 어떤 톤으로 해얄 지 고민하다 타이밍을 놓치곤 했다.
그녀의 텃세는 인사였다. 아니 텃세라고 치부하고 싶었던 것은 나의 자격지심이었던 것 같다.
'밥통아 그것도 몰랐어?'
그렇다, 그때는 몰랐다.
직장 내에서 인사 잘하는 직원에게는 눈길이 한번 더 가고, 뭐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다.
물론 인사만 잘하고 일이 나태하거나 생활이 어수선하면 다르겠지만, 대게 그렇게 인사 잘하는 사람이 불성실한 경우는 드물다. 몸에 밴 인사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21년이나 직장 생활을 하고 난 지금이라고 해서, 내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인사하는 게 쑥스럽고, 망설이다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 하지만, 인사 잘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응원해 주는 도량이 생겼다.
나는 묵묵히 성실함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게 나니까.
그러다 보면 간혹 묵묵히 성실한 사람을 좋아하는 귀인을 만나 영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묵묵하기만 하면 안 되는 게 함정이다.
묵묵히 니 일, 내 일 없이 해야 하고, 묵묵히 일찌감치 나와서 사무실 이곳저곳 쓰레기통도 비우고, 묵묵히 휴가 간 직원의 업무대행도 하고, 묵묵히 나의 휴가는 가장 마지막으로 미루고, 묵묵히 또 쿨하게 지갑도 열 줄 알아야 '묵묵한 성실함'으로 인정받고, 살아남을 수 있다.
너무 찌질한 느낌이지만, 지난날 그렇게 철밥통의 세월을 보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_부부
그와 나는 사내 커플이었다.
패기 있게 일하는 상남자 스타일의 그가 나의 이상형에 가깝다고....... 그때는 믿었다.
살아보니, 상남자 스타일은 결혼 전에 신랑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상남자인 채로 결혼을 하면 여자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상남자들은, 밖에서는 맥가이버 뺨치다가도 집에만 오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가 된다.
여기서 상남자란, 결혼 전 좋아했던 내가 규정한 남편의 모습이다. 큰 덩치에 얼굴은 술색이며, 의상, 헤어 센스는 관심 없지만, 지적생활에 큰 뜻이 있는 듯, 여성을 비하하진 않지만 여자는 좋아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그런 것들......
그런 그의 한 여자만 보겠다는 우직함이 나로 하여금 대단히 우쭐대게도 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여자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 동전의 반대편에 있었다. 남자가 단순하다고들 하지만, 여자도 단순하다. 부려먹으려면 어르고 구슬리고, 때에 맞춰 당근을 던져줘야 한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나를 믿고 집안일을 맡겨둔 채,
바깥일에만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는 남편과 18년을 살아왔다. 내 손에 물 마를 날이 없지만, 이제는 그의 한결같음을 인정하는 등극에 올랐고, 바깥바람에 거칠어진 그의 얼굴이 안쓰럽게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살다 보니,
일이든 부부관계든 힘을 빼는 일이 중요하다. 악착같이 달려들어 힘을 쓰다 보면, 몸과 정신이 피폐해진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_자식
내 원가족은, 부모님과 세 살 터울의 오빠 하나다. 엄마는 아빠보다 오빠 사랑이 지극하였고, 나는 은근히 그 사랑이 고파서 오빠를 미워했다. 나를 외롭게 하는 엄마와 오빠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 복수는 너무나 건전하였다.
"내 의지대로 공부해서 오빠 너보다 엄청 잘 될 거다!!"
복수는 흐지부지 됐지만, 마음의 앙금은 남아있다. 오빠는 항상 기둥이고, 나를 못 미더워했던 엄마에게 아직도 반항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정받고 싶은 사람도 엄마인 것 같아 화가 난다.
잘한다, 잘했다, 축하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남들보다 가족에게 듣고 싶었던 그 흔한 말들. 그런 말이 고팠던 내 안의 어린 자아가 아직도 징징대고 있다.
나 이제 애가 아니라고, 엄마보다 오빠보다 더 잘한다고 외치고 싶다.
한편으론, 자식 된 도리도 멋지게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엄마를 만족시킬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답답하다. 이러다 엄마가 떠나시면 어떡하나. 눈물이 난다.
자식.
엄마에게 나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일 것이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기대하는 모양이 다를 뿐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자식은 없다.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그렇다.
엄마보다 책도 많이 봤고, 대학도 나왔고, 유튜브도 많이 본 내가 잘해야 한다.
자식들은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
_부모
나에게는 아들, 딸 하나씩 있다.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의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자식이 울면 마음이 아파 어찌할 바를 모르겠고, 어서 눈물을 거두게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자식을 보러 가는 길은 가슴이 울렁이게 좋다.
이 마음이 과해져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2차 성징으로 사춘기를 겪는 아들과 딸의 태도변화에 감정주체가 안돼서 내가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다.
아이들은 당황한다. 잘못한 게 없는데 엄마는 늘 화가 나 있다.
사랑해서 그런다니까? 너희를 위해서 그런다니까?
잘못된 생각이었다.
자식은 놔두면 놔둘수록 스스로 잘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옭아매고 통제하면 할수록 멀어지기만 한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워 미칠 것 같던 때를 잊고, 감히 아이들을 소유물처럼 다루려 했던
나는 서툰 엄마였다.
화분에 물을 주듯,
따뜻한 사랑의 말과 눈맞춤만 뿌려줘도 아이들은 잘 자랄거라 믿는다.
나를 채워주는 사랑하는 가족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