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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씨 여자입니다

by 세인트



나는 '강'씨 성을 가졌다.

아빠가 '강'씨니까.

즉, 내가 '강'씨이고 싶어서 '강'씨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강씨 고집'이라는 말을 많이도 듣고 자랐다.

그것은 마치 주홍글씨처럼 박혀있는 낙인 같았다.

좋은 이미지로 말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으니까.

이름을 밝히는 자리에서는 이런 일이 많았다.


"강아무개라고 합니다"


"어? 강씨네? 강씨 고집, 강씨 고집 하던데....

여자 강씨는 더 그렇다는데?

고집 쎄요?"

"하하 호호"


강씨가 고집 세다, 여자 강씨는 더 그렇다...도대체 이런 통계는 어디서 나오는겁니까?

순전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을 듣고 내뱉는거 아닙니까?

(갑자기 또 울컥하네?)

물론 강씨만 이런 피해를 받고 있는건 아니다.

심지어 그런 성을 갖지 않은 무리들끼리 신랄하게 논쟁을 벌일 때도 있다.


"안, 강, 최 순으로 세다는데?"

"어? 황씨가 제일 세다는데?"

"그래 그러고보니까 전에 황씨랑 일해봤는데, 좀 그렇드라"


물론 한때는 성씨 하나만으로도 관심을 받는다는 것을 은근 즐기기도 했다.

고집이 센게 뭔지는 몰라도 고집없는 사람이 어딨나요 라며 잔잔하게 반박도 해보고,

굳이 고집이라면, 제가 그러그러한거보니 고집이 세긴 하네요 라며 사례를 친절하게 들어주기도 했다.

마치, 점쟁이가 누구한테나 들어맞는 얘기를 그럴싸하게 갖다 붙이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가해자는 엄마였던 것 같다.


"느그아빠 고집 암도 못말린다잉"

"내가 좀 서운하게 말해도 걍 그런갑다하지. 삐져갖고 말을 안해버려. 나는 금방 잊어버리는디"

"나는 뒤끝 없당게? 강씨들 못써야, 요만한 말을 못혀"


퍽도 많이 듣고 자란 돌림노래같은 엄마의 푸념이었다.

뒤끝없다고 자평하는 사람들은 날선 말들을 뱉고, 나는 금방 잊으니 처리는 네가 알아서 하되

되도록 빨리 처리하라고 책임을 넘겨 버린다.

우리는 그냥 상처 되는 말들을 처리하는데 좀 늦은

사람들일 뿐이고,

우연히 강씨 성을 내림받은 것 뿐이다.

수많은 강씨들이 다 같은 성격일리 없잖은가.

요즘 MBTI와 같다.

아니, 더 근거도 없고 재미도 없는 몰아가기 유전학이다.


나는 강씨지만, O형이다.

O형은 우유부단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편이다.

또, MBTI는 INFJ이다.

혼자 놀기 좋아하고, 감상적이며, 계획세울줄은 몰라도 계획대로 일처리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어디에도 고집이 셀 것 같은 유형으로 분석되진 않는다.


여기서 더 깊이 고집이 센건 뭐냐까지 가야는데,

내가 여태 들어온 그 고집 세다의 의미는

그냥 '똥고집' 을 말하는 거였다.

그래서 싫은거다.




내가 강씨 성을 가진 여자인 것은 다행이다.

여자니까 엄마가 된다.

우리 아이들은 아빠 성을 가졌다.

그렇다면, 강씨 성을 가진 엄마의 성격을 닮은

우리아들은 어떻게 설명할건가.

아들은 '정'씨다.

그럼 이렇게 해야하는건가?


"강씨 엄마가 낳은 정씨도 고집이 세다"


성씨 하나로 고집이 세다는 얘기는

개똥같은 편견이다.


근데요,

강씨 여자는 생활력이 강하다는 말도 있다네요?


좋은 편견은 또 좋네.

(생활력이 강하다는건 건 억척스럽다는거 아닌가?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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