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작아도 좋은 곳
이것은 타임라인에 맞춰 가장 마지막에 쓰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하지만 브런치가 10주년을 맞아
‘작가님의 꿈들이 제각각 고요한 빛으로 서로를 비추며 함께 현실로 이루어온 시간들을 기념하기 위해 팝업 전시를 준비했다’는 문구를 보고,
나는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브런치는 나에게
‘그동안 브런치와 함께 이루어온 꿈, 혹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도리어
나의 꿈이 아닌 다른 이들의 꿈을 보았고,
‘제각각 고요한 빛으로 서로를 비추는’ 별들 속에서
내가 한없이 작아도 좋았노라고 답하고 싶다.
고독은 두려움을 닮아간다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때는 수술 직후라 다른 활동을 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나는 그 시간을 글쓰기에 몰두하며 견디기로 했다.
그 시간은 행복했다. 닿아보고 싶었던 인생들의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며 치열하게 황홀했다.
글을 쓰며 나는 루게릭 환자들을 뜨겁게 사랑했다.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의 사랑은, 모든 첫사랑이 그러하듯 아주 서툴렀다.
나는 이기적인 인간이다. 소설을 완성한 뒤에는 빈 껍데기만 남은 듯한 몇 달의 시간을 보냈고, 끝내 비대해진 나의 자아가 마음속 비어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자아가 비대해지면 두려움도 커진다.
내가 사랑했던 만큼 다른 이들도 이 이야기를 사랑해 주었으면 하는 기대와,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사이에서 내 정신은 끝없이 널을 뛰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랑은 온데간데없었다.
거기에 더해 출판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처럼 느껴졌다. 전공자나 관련 업종 종사자도 아닌데 겁 없이 글쓰기에 뛰어든 일이 후회스러워 그만 묻어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 작가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그들이라고 부끄럽지 않았겠는가. 나는 위축된 마음을 떨쳐내고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해 마지막 희망을 붙잡았는데,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내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꿈이었다.
수많은 별들
브런치에서 많은 이야기를 만났다. 각자의 삶이 품은 서사의 깊이를 느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는 그 많은 이야기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글을 쓰며 느꼈던 황홀한 첫사랑이, 잔잔한 노부부의 사랑으로 성장해 다시 내게 찾아왔다.
이곳에선 내가 커지지 않아도, 아니 정말 작아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글은 시간을 건너오는 편지라고 믿어왔다. 과거의 누군가가 나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내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건네는 편지.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브런치에서는 그 외로움의 시간마저 함께 건너는 사람들이 있다.
관심과 애정이 오가며 살아 있는 온기가 곧장 전해진다. 서로가 서로의 빛을 알아보며, 그렇게 작고 안전하게 각자의 삶을 빛내고 있다.
브런치는 ‘좋은 글이 가진 힘을 믿고 이 여정을 함께해 주신 작가님과 독자님들께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나 역시 이 기회를 통해 브런치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따뜻한 애정 속에서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하다고.
글의 힘을 믿는 이들이 안전하게 빛날 곳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