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길은 있으니까
읽는 힘
네 번째 손목 수술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루 종일 오디오북을 들었다.
몰려오는 통증 대신
몰아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사람은 다 살 길이 있기 마련이구나 하고.
책을 듣다
바야흐로 중학교 시절이었다.
무식하게 오래 앉아 공부하다가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퇴원 후에도 오랫동안 요통이 심해서
수학 문제도 누워서 풀어야 할 지경이었다.
책을 읽고 싶었지만,
전 과목 교과서를 들고 공부하는 상황에서
책까지 누워서 읽기가 쉽지 않았다.
(오랫동안 누워 있어 보신 분들은 이해하실 거다. 하루 종일 책 들고 있는 거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 딸을 위해
사랑이 많은 아버지께서 구해다 주신 것이 있었으니,
바로 해리포터 오디오북이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오디오북 어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한글 오디오북도 많아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사치는 없었다.
아빠가 어렵게 구해다 주신 것은 영어 오디오북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이어폰을 꽂았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영국식 발음으로 녹음된 오디오북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책을 읽을 방법이 생겨 신이 났던 마음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포기하기엔 책을 읽고 싶어 답답했던 시간이 충분히 길었고,
오디오북이라는 들어본 적도 없는 요물을 구해다 준 아빠의 정성이 너무 고마웠다.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오디오북이었지만, 그때도 나는 온종일 그걸 듣고 있었다.
아직 어리고 뇌가 말랑말랑하던 때라서 그랬던 것 같다.
꾸역꾸역 한 권, 두 권씩 듣다 보니 세 권째쯤부터는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때 영어가 참 많이 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내게 심어준 가장 소중한 것은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였다.
아파도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
몸이 약해도,
가끔은 일상을 포기하고 병원 신세를 져야 한대도
그 시간도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것.
그 앳된 욕망과
순수한 희망과
잔잔한 감사가
내가 얻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책을 읽다
무언가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 씹고 뜯고 맛보고 싶어지는 것이 나의 본능이었던 것 같다.
오디오북이 고마운 나머지 나는 결국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영어 덕분에 이 신나는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거니까.
(그전까지는 영어 학원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다.)
오디오북을 듣고 있으면
허리가 언제쯤 나으려나, 고등학교 들어가서는 어떻게 견뎌야 하나 하는 걱정들이
다 머릿속에서 밀려났다.
그저 오디오북이 재미있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마음이 흠뻑 젖어있었다.
그쯤 되니 듣는 것만큼 눈으로도 더 많이, 영어를 사랑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집에 있던 이북리더기를 애용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아빠가 초등학교 때 사주신 선물이었다.
오디오북과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한글 이북리더기가 흔하지만, 그 당시에는 없었다.
아빠가 사주신 건 아마존에서 나온 Kindle이라는 이북 리더기였는데, 영어책만 읽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라 전자기기라면 뭐든 신기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애지중지 끼고 다니긴 했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말 그대로 끼고 다니기만 했다.
그렇게 고이 모셔두던 이북리더기를
미친 듯이 활용하기 시작한 건
허리를 다친 때부터였다.
누워서 책을 들고 읽기는 불편했지만
이북리더기는 훨씬 쉬웠다.
책보다 가볍고
거치대에 걸어놓고 읽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반 강제로 많은 영어 소설을 탐닉했다.
빈약한 허리 덕분에 누렸던 행복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게 허락된
단어와
문장이,
언어와
이야기가
가슴 깊이 좋아지기 시작했던 건.
(터치 기능조차 없어 화살표 키로 타자를 쳐야 하는 나의 구닥다리 Kindle을 소개한다. 여태 망가지지 않고 잘 살아 있지만, 서비스 지원이 종료되어 이제는 사용할 수 없다. 물론 나는 그 뒤로 터치가 되는 멋진 이북리더기를 새로 샀다.)
다시, 읽는 힘
긴 세월을 지나
나는 다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거대한 깁스를 하고 있었고
왼손에는 링거가 꽂혀 있었다.
뼈를 자르고 철심을 박은 뒤라
마취가 풀리면서부터 묵직한 통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그 시간이 괴롭지는 않았다.
나에겐 여전히 책을 읽을 힘이 있었다.
양손을 쓸 수 없었어도
내겐 오디오북을 들을 귀가 있었다.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파친코』와 정유정 작가의 신작들을 들었다.
이젠 한글로도 오디오북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한국 작가들도 오디오북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벅차고 기뻤다.
수술 후 한두 달이 지나고부터는
종이책을 들고 읽기는 어려웠지만
이북리더기 정도는 들 수 있었다.
그때는 한강 작가와 박완서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다.
어릴 때 영어를 눈과 귀로 사랑했던 만큼
이제는 한글도 누릴 수 있게 되어 행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온 세월이,
그 과정에서 다치기도 많이 다치고
후회스러운 일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온 모든 시간이
내게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안했다.
아무리 음성인식으로 글을 쓴다 해도
손을 아예 안 쓸 수는 없다.
최소 깁스를 풀 때까지는 차분히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이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가 짧게 느껴질 만큼 읽고 싶은 책이 많았다.
시간을 쪼개가며 오디오북을 듣고 전자책을 읽었다.
글을 쓰려면 내 안에 글을 많이 채워 넣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작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채로 소설을 쓰려면
소설을 많이 읽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손을 못 쓰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는 무력감을
나는 벗어던졌다.
내겐 하고 싶은 일이,
읽고 싶은 책과,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도록 많았다.
아프지만 무력하지 않았고,
무겁지만 버겁지는 않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