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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만든 우주 #1

창작의 힘에 대하여

by 바달


왜 소설을 썼는지

어째서 그것이 소설이어야만 했는지

보여드리고자 한다.



우린 왜 창작을 하는가.


에드워드 로렌즈는 ‘카오스’(Chaos)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현재가 미래를 결정하지만, 대략적인 현재가 대략적인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는 것”



나비효과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한 예로,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인 것이

뉴욕의 허리케인을 불러올 수 있다는 뜻이다.


초기 조건의 아주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크게 보면 무질서함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우주가 완전한 무질서함 속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듯, 카오스는 완전한 무작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카오스 이론은 ‘결정론적 무질서’(deterministic disorder),

장기 예측의 불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무질서 속에 숨겨진 구조와 패턴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완벽히 결정론적이면서도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그 아이러니가

바로 카오스 이론의 매력이다.



혼돈과 안정의 경계


외부의 통제나 설계 없이도

자연은 스스로 질서 있는 구조와 패턴을 형성한다.


이를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라고 부른다.


혼돈이 만든 가능성의 장에서

질서를 선택하는 자연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출처: https://pin.it/kPgBl3BYE


우주는 혼돈과 질서가 겨루는 팽팽한 줄다리기의 장이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은 균형과 변화 사이에 존재한다.


완전한 질서와 완전한 무질서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 상태를 ‘혼돈의 경계’(Edge of Chaos)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너무 질서 정연하여 변화가 불가능한 상태도 아니고,

너무 무질서해서 어떤 안정적인 구조도 형성되지 않는 상태도 아닌,

그 두 가지 상태의 경계를 의미한다.


안정성과 유연성이 공존하는 이 혼돈의 경계에서

우주는 최대의 창발(emergence)을 보인다.


우리가 겪는 일들의 무작위성과

우리가 지닌 ‘의미를 엮어내는 본능’(tendency toward associative thought)의 경계에서


인간은 가장 위대한 창작을 해낸다.



이해하려는 인간


심리학자 리앤 가보라(Liane Gabora)의 연마 이론(Honing Theory)을 소개하고자 한다.



‘엔트로피’(Entropy)는 불확실성과 무질서도를 나타내는 물리량이다.


리앤 가보라는 창의성이 ‘높은 심리적 엔트로피 상태’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인간은 자연을 닮아 있다.

그래서 질서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반대로, ‘높은 엔트로피 상태’는 우리의 마음에 강한 불안을 일으킨다.


‘자기 조직화’를 해내는 다른 시스템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신은

무작위 하게 발생한 사건들을 재구성함으로써

엔트로피를 최소화하고자 한다.



세계관으로 맞서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피부에 큰 찰과상을 입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 순간 우리의 피부 조직은 거대한 엔트로피 상태를 맞닥뜨리게 된다.


상처 입은 조직은 급히 치유를 시작한다.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살다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무질서함 위에 놓이게 된다.

맞닥뜨리는 일들은 때로 불공정해 보이고, 대부분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의 기대나 신념은 계속해서 위협받는다.


이런 ‘간극’이나 ‘미완성의 감각’을 인식한 순간 우리는

찢어진 피부가 스스로 조직을 엮어 회복하듯,

사건의 재구성을 시작한다.


주어진 무분별한 사건들을

계속해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려 노력한다.

지나온 시간이 충분히 이해되어 더 이상 괴롭지 않을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한다.


본능적으로 논리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지식을 보강하거나 신념을 수정하면서까지

질서를 회복하고자 한다.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통해

‘자기 봉합’(self-mending)을 이루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흩어진 사건들을 꿰어

하나의 이해 가능한 논리를 만들 때,


무질서한 삶을 질서 정연하게 재배치하여 해석해 낼 때,


그것은 하나의 세계관이 된다.



창작은 인류의 것


창작이란 무엇인가?


창작은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상처 입은 정신이

흩어진 사건의 구슬을 새롭게 꿰어낸 결과물,

그것이 바로 세계관이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


무질서한 삶 속에서

인간이 빚어낸 프랙털.


그렇게 창작된 세계관은

더 이상 혼자만의 것으로 남아 있지 않는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우리의 감각 기관은 작품을 바라보지만

우리의 정신은 그 너머에 담긴 작가의 세계관,

즉 한 사람이 이해한 세상을 읽는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계신 모든 작가님들이 알고 계셨으면 좋겠다.


당신이 하는 일은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자기 조직화이고, 자기 봉합이라는 것을.



그렇게 써 내려간 당신의 글은


하나의 세계관이자


하나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Reference

Gabora, L. (2017). Honing theory: A complex systems framework for creativity.

Gabora, L., & Unrau, M. (2019). The role of engagement, honing, and mindfulness in creativ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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