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을 믿으며
시작이 반이라더니
핸드폰과 노트북, 태블릿을 모조리 책상 위에 펼쳐두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녹음하고 수정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나를 위한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자리에 앉아
백지처럼 새하얀 화면과 깜빡이는 커서를 가만히 바라보며 깨달았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럼 시작해 보자
목표를 설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판만 두드린다고 누가 알아서 책으로 출판해 주는 건 아닐 테니까.
책을 출판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았다.
출판과 유통의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독립 출판부터
반기획 출판, 자비 출판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알아보았다.
상당수의 책이 투고보다는 미리 기획되어 출판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춤했다.
하지만 시작도 안 해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수술 덕분에(?) 얻은 혼자만의 시간을 밀도 있게 사용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기한이 필요했다.
공모전을 찾아보았다.
시나 단편소설 공모전은 다양하지만, 장편소설 공모전은 몇 개 없었다.
그 몇 개의 공모전들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일단은 글을 쓰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기 위한 도구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몇 개의 공모전 일정을 메모해 두고, 요건도 정리했다.
최소 십만 자는 되어야 책 한 권 분량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에 1000자씩 쓰기로 결심했다.
그러면 세 달 남짓 만에 십만 자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다소 무식한 계산이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허탈함
그동안 녹음해 둔 글감의 글자 수를 세어보았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몇천 자도 안 되는 분량이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마음이 무거웠는데,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그 무게를 얼마나 버거워했는데,
얼마나 오래 힘들었는데,
고작 몇천 자였다니.
이제는 그걸 십만 자로 불릴 고민하고 있는 내 처지가 아주 코미디 같았다.
이번엔 길을 잃지 않을 거야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헤매고 싶지 않았다.
소설이야말로 인생과 달리 내 손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머리를 싸매며,
그동안 눌러왔던 나의 통제욕이 다시 발동했다.
스토리보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 떠올린 에피소드들을 그럴싸하게 배열하고, 시간의 흐름에 맞춰 배치할 생각에 엑셀 창을 열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마치 신이 된 듯한 희열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미치지 않았다.
그 희열은 엑셀의 첫 칸을 채우려는 순간부터 바스러졌기 때문이다.
루게릭병의 증상이 어떻게 발현되고 진단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 시간 간격은 얼마나 두어야 하는지, 그 사이 설이는 어떤 상실과 실패를 겪어야 하는지 — 처음부터 막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나는 음대생의 삶에 대해서도, 루게릭병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음악을 전공한 엄마에게서 파편적으로 들은 이야기는 있었지만, 설이의 대학 생활을 만들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루게릭병을 앓으셨던 할머니의 굳어가던 손과 어눌해지던 말투는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조 증상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진단을 받았는지,
치료를 위해 무엇을 시도했는지, 그 모든 일들이 얼마의 시간 간격으로 벌어졌는지,
그 당시 어렸던 나는
소설에 필요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당장 오늘부터 하루 1000자씩 쓰면 세 달 만에 초안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무식한 계획은
시작부터 엉망이 되어버렸다.
글쓰기의 8할은 자료 조사라는 사실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게 아주 느린 속도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하루 건너 하루씩이라도 꾸준히 백지장과 싸웠다.
잠시나마 누렸던 얄팍한 통제욕은
모두 겸허히 내려놓았다.
그대는 길을 잃어야 할지니
손목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타이핑으로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눈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채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들은 늘 나무 말고 숲을 보라고 하지만,
나무를 다 심기 전까지는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다.
땅을 파고,
돌멩이를 치우고,
글쓰기는 진흙탕 싸움이었다.
정말 그랬다.
내가 주인공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저 멀리 앞서가는 주인공을
헉헉대며 쫓아가는 기분이었다.
온갖 뒤치다꺼리가 내 몫이었다.
성실히 엉덩이 싸움을 하면,
자연스럽게 완성도도 따라올 줄 알았다.
하지만 아뿔싸,
내가 백지 위에 힘껏 펼쳐 둔 글자들이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멀리서 이 숲을 바라보면
이 나무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을지
조금도 감이 오지 않았다.
이럴 수가, 글쓰기야말로 인생살이와 판박이었다.
이 하루가 어떻게 기억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의 크고 작은 선택들,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사고들이
위로의 변곡점이 될지, 아래로의 변곡점이 될지는.
다시 말해,
저 높은 곳에서 숲을 내려다보는 듯한 탁 트인 전망은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인생은 진흙탕 싸움이다.
땅을 파고, 툭툭 걸리는 돌멩이를 치우며,
이 나무 저 나무 손에 잡히는 대로 무작정 심어 나아가는 것 —
그게 우리의 하루다.
삶이 너무 무거워 잠시 소설로 도피하고 싶었던 내 속내를 다 들킨 기분이었다.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삶과 마주하고 있었다.
큰 그림을 보라 한다. 숲을 보라 한다.
아니, 나는 오늘의 나무를 심기로 했다.
원대한 꿈을 현실로 만드는 건
하루치의 진흙탕 싸움,
매일 반복되는 삽질이다.
이 삽질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면,
그렇다면 뭘까.
삶은 대체 뭘까.
사는 게 뭐더라
자꾸 아프고 무력해지며,
포기와 내려놓음만 배우던 사이 잊고 있었던
삶의 의미를 다시 반추했다.
몇 시간씩 씨름한 끝에
뭐가 될지 알 수 없는 워드 파일을 저장하고 닫는 그 순간마다
잊고 있던 감각이 되살아났다.
하루의 무게, 그리고 가벼운 저녁 공기.
그게 삶의 의미였다.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은 괴롭다고,
한순간의 바람에 날아가는 게 인생이라면
그건 아무 가치도 없다고,
그렇게 허무주의를 향해 걸어가던 나였다.
뭐라도 해보겠다며 몸부림을 치고 나니,
아니, 어쩌면 막다른 골목에 몰리고 나니
그제야 한 단계 성장했구나 싶었다.
하루치의 삽질을 자처하며 내가 회복한 것은,
살아보고 싶은 용기였다.
오늘도 나무를 심어보겠다며
진흙탕 속을 뒹군 끝에 남은 건
엉망이 된 몰골,
그리고 감출 수 없는 뿌듯함.
그것이 하루를 살아낸 나에게 주어지는
유일하지만, 소중한 보상이었다.
그래, 그걸로 살아야겠다.
십만 자를 완성할 때까지,
아니, 나의 생이 다할 때까지.
하루치의 무게와
가벼운 저녁 공기를 누리며
살아있어야겠다.
내가 배운 허무주의도
여전히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목표와 계획이 흔들리는 경험도
나에게는 분명한 성장의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길을 잃으면 어때.
오늘 내가 한 일이 삽질이었으면 또 어때.
나는 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걸.
손엔 굳은살이 박이고,
얼굴은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미소를 숨길 수 없었는걸.
흙을 털고 일어서던 그때,
가벼운 저녁 공기를 들이마시던 그때,
나는 행복했는걸.
행복했는걸.
살아있다는 사실이,
감출 수 없이 행복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