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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대하여

카데바 실습이 남긴 것

by 바달


불편한 존재


소설 『물의 유희』의 초안을 쓰는 동안 임시로 붙였던 제목은 ⟪몸⟫이었다.


‘육신의 감옥’이라 불리는 루게릭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왜 인간은 육체적인 존재로서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된 이야기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라오는 동안 나는 내 몸을 좋아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마주한 인간의 육체적 본질은, 대부분 무력감과 좌절감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자아를 의식하게 되었던 때부터 그랬다.

사춘기를 맞이한 여학생들이 대체로 그렇듯,

타고난 얼굴과 몸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키가 조금 더 컸으면, 피부가 조금 더 좋았으면—

몸은 언제나 또래들과 비교해야만 하는 불편한 대상이었다.


인생의 달음질을 시작해야 했던 때부터는 더욱 그랬다.

오래 앉아 공부하면 허리가 아팠고,

서서 공부하자니 발목이 시큰거렸다.

시험기간마다 열이 나는 건 다반사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무리하게 밀어붙인 탓에

체력이 서서히 고갈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

열정 가득한 마음과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게 늘 불편했다.


나에게 몸은 딱 그 정도였다.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


(물론 다소 편향된 생각임이 분명하다.

태생적 몸치라서 그랬던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몸을 좋아하기에는 그에 집중해 본 경험이 전무했으니.

아이돌이나 무용수들을 보면 종종 궁금해진다.

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정신만큼 사랑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딱 그 정도,

불편하고 걸리적거리는 존재 정도로 남겨 두려고

나름 애를 썼던 것도 같다.


루게릭병으로 굳어가던 할머니의 손,

펴지지 않던 손가락을 바라보며

억눌렀던 감정은

몸에 대한 증오에 가까웠으니.



카데바 실습


몸에 대한 나의 감정을 도화지에 비유하자면

그 위엔 얼룩덜룩한 흔적이 가득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난잡하게 뿌리내린 짙은 증오에서부터

온갖 잔병치레의 기억까지 뒤섞여,

새로운 생각을 더할 여백이 없었다.


그렇게 얼룩진 도화지를

한 장 넘기고

새하얀 백지를 마주한 듯한 감정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

본과 1학년 때였다.


의과대학에서 본과 1학년이 되면 반드시 거치는 중요한 과정이 있다.

바로 ‘카데바 실습’이라 불리는 해부학 실습이다.


생전 자신의 몸을 의학 교육을 위해 기증한 분들의 육신을 직접 해부하며

인체의 구조를 배우는 과정이다.



처음엔 그저 현실감이 없었다는 말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


시신을 처음 마주한 당혹감,

기증하신 분에 대한 마음의 무게,

그리고 수십 개의 혈관과 신경을 모조리 찾아내야 하는

현실적인 과제가 뒤섞인 와중에

정신이 택한 방어 기제였을지 모르겠다.


포르말린 용액으로 보존 처리된 시신의 모습은

실제로도 현실감이 없을 만큼 뭔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었다.



막상 실습이 시작되면 감성에 젖어 있을 여유 따윈 없다.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보다는

해부학 자체에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된다.


피부와 근육, 지방을 한 층씩 걷어내며

교수님이 지시하신 구조물을 하나씩 찾아낸다.


그 과정에서 고개를 숙인 채로 너무 오래 힘을 쓰다 보니

목 디스크가 터진 동기들도 있었다.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집에 돌아와

포르말린 냄새가 짙게 밴 손으로 급히 허기를 채우고

밀린 공부는 또다시 내일로 미루며

그대로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내가 해부하고 있는 이 시신이

‘카데바’가 아닌 정말 살아 있던 한 사람의 몸이라는 사실을

문득 자각하며 흠칫 놀랄 때가 있었다.


그건 두 손, 두 발,

눈과 귀처럼,

방어기제조차 막아내지 못할 만큼

너무나 ‘사람’ 같은 부위를 보고 있을 때였다.



60~70대쯤 된 사람의 뒤꿈치가

그렇게 질긴 줄은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발뼈를 관찰하기 위해

뒤꿈치의 피부와 근육을 모두 벗겨내야 하는데,

실습용 메스로 좀처럼 뚫을 수가 없었다.


여럿이 발치에 달라붙어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

속으로는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오셨을까.


아장아장 걸음마로부터 시작해

모든 고된 걸음의 수를 다 합치면 얼마나 될까.


얼마나 많은 무게를 견뎌왔으면

피부와 근육이 서로 분리되지 않을 만큼

뒤꿈치가 이렇게 질겨졌을까.



대부분의 부위는 눌리고 굳어서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데가 있었지만,

두 귀만큼은 살아계셨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얼마나 많은 소리를 들으셨을까.


좋아하던 노래가, 좋아하던 사람의 목소리가 있었을까.


또 어떤 날엔 험하고 거친 말들,

듣기 괴로운 소음을 견디어야 했을까.



팔에서 분리해 낸 두 손은 차마 오래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 시기엔 길가에 떨어진 아빠의 손을 줍는 꿈을 꿨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무섭다고 기겁하지만,

그건 무서운 꿈이라기보다 슬픈 꿈이었다.


그 손이 아빠의 손이었던 건,

아마 우리 조에 배정된 시신이 남성 분이었기 때문에,

내 무의식이, 내가 사랑하는 중년 남성 한 명을 임의로 불러낸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그 손을 조용히 집어 들던 순간,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던 기억이 난다.



카데바 실습을 마친 뒤에는

해부했던 시신을 최대한 정돈해

장례 절차를 위해 관에 모신다.


그때 친구가 두 눈을 양손에 귀하게 들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시신의 눈이 있던 자리에 놓아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 두 눈은,

이분이 살아계신 동안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을까.



불편하다, 걸리적거린다, 심지어는 증오한다까지.

내가 몸에 대해 품어온 모든 감정,

조잡하게 쌓아 올린 몸에 대한 인식이

그때 다 허물어졌다.



단순히 ‘몸을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는 아니었다.


우리의 인체는

내장 지방을 비축하고,

하나의 장기가 무너지면 다른 장기가 발악하며

나름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지만,


결국 우리는

나의 꿈에 나타났던, 땅에 떨어진 손처럼

언젠간 이 몸을 두고 떠나야만 하지 않나.



하지만 어떻게 이 몸을 미워할 수가 있을까.

몸이 걸리적거린다고 생각했던 건

얼마나 하찮은 생각이었나.


한 사람이 살아온 모든 생을 담고 있는 이 숭고한 것을

내가 어떻게 감히 증오한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나에게 던져진 생각들이 너무 거대해서,

마음은 그것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한 채

그저 백지상태로 머물러 있으려 했던 것 같다.



나의 몸으로

그 하얀 도화지 위에

정말 조심스럽게 붓질을 더해가기 시작한 때가

여러 차례의 손목 수술을 거치던 시기였다.


카데바 실습을 하며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들을

그땐 나의 맨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육신은 실로 나의 감옥이자 한계였다.


하지만 잃어버린 두 손은,

나의 몸은,


잃었다고 생각하니 그제야 비로소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건 그 어떤 말로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내가 아끼고 사랑해 온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런 모순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몸은 나를 한정하지만, 그 한정 속에서만 나의 존재가 존재한다.


몸은 나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나를 세상에 노출시킨다.


몸은 우리가 가진 타자와의 가장 확실한 경계이자,

그 경계를 허무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정신적인 사람이라 생각해 왔으나,

그 누구보다도 육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을 즈음,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포옹을 더 좋아하고


매 순간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즈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이라는 안전망 속에서 마음껏 질문하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왜 몸으로서 존재해야 하는지,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

몸과 함께 잠들어야 하는지.


부정할 수 없었던 육신에 대한 사랑과

사라지지 않을 만큼 깊이 뿌리내린 증오까지,


그 모든 것을 질문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몸⟫이라는 가제를 넘어,

소설 『물의 유희』가 만들어졌다.



그것은 루게릭병과 한 소녀의 이야기이자,


나의 가장 솔직한

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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