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끝이날 터널을 통과하는 중입니다.
수능이 32일 남았습니다.
32라는 숫자는 한 달씩이나 일까요, 겨우 한 달일까요.
수험생 엄마의 마음은 하루에도 열두 번 오락가락합니다. 겨우였다가 씩이나였다가.
오늘 아이의 마음속은 어떤 색깔일까요. 또 온도와 향기는 어떨까 궁금해집니다.
그럼에도 꼰대 같은 말을 굳이 남기자면, 이 시점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남은 기간을 보내야 할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그런 말을 직접 하진 않으려 합니다. 아이는 이미 행동으로 모든 것을 말하고 있으니까요. 학부모로서 이 시점에 떠오르는 말이 많지만, 결국 그 어떤 말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건 말이 아니라, 그저 조용히 믿어주고, 안아주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는 일. 속마음을 굳이 다 꺼내놓지 않는 것.
이쯤 되면, 학부모 전용 걱정인형 하나쯤 만들어 베개 밑에 넣고 자는 게 오히려 마음 건강에 더 좋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N수라 해도,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라 말할 수 있어도, N 수 역시 엄마도 처음이라 그 시간을 함께 배우고 깨닫는 존재임을 하루하루 그저 실감할 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문득, 우리 아이의 ‘국어 공부 여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초등 시절, 아이는 핸드폰이 없었습니다. 초등땐 게임으로 다툰 기억도 거의 없었지요. 아이가 게임에 큰 흥미가 없었던 건지, 아직 눈뜨기 전이었던 건지, 아니면 엄마가 무서워서였는지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건, 아이는 심심할 때 주로 책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방학 때면 아침부터 심심해 방바닥을 쓸고 다니다 굴러다니는 책을 읽었고, 심심해서 자고 있는 동생을 깨우다 엄마에게 혼이나 책을 읽었습니다. 삼국지를 시작으로 나니아연대기 등 시리즈물을 쌓아두고 읽었었습니다. 심심해서 말이지요. 그래서 저는 매주 주말 도서관에 가족수대로 책을 빌려와 거실에 쌓아두곤 했었습니다. 동생을 돌보랴, 집안일하랴 바빠 놀아줄 순 없으니 책이라도 많이 빌려다 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덕분에 도서관에서 '올해의 책 읽는 가족'으로 선정되어 기념패도 받아 뿌듯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시절 아이가 그렇게 책에 몰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저학년 때 피아노, 태권도, 방과 후 바둑 정도 외에 아이는 별다른 학원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학원스케줄로 바쁜 친구들과 놀 수 없던 심심한 시간을 책이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핸드폰이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여러 트러블이 생기긴 했습니다. 게임에 눈도 뜨고,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으며, 핸드폰도 생겼으니까요. 단지 그 시기를 늦출 수 있는 만큼 늦춘 것이 잘한 일이라면 잘한 것이고, 아이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책이라는 친구와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그때부터는 국어 내신 시험에 도움이 되고자 인강이나 독해 문제집을 좀 풀어보았습니다. 중학교 내신 국어에 ‘구멍이 크게 보이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국어 공부의 비중은 크지 않았습니다. 더 군다니 시험이 대부분 지필평가 중심이었고, 수행평가도 지금처럼 많지 않았으니까요. 특히 방학 때 어휘책과 EBS 윤혜정 선생님의 <나비효과> 입문 편 강의를 완강한 것은 지나고 나서 보니 잘한 선택중 하나였다고 생각이 됩니다. 나비효과는 내신 국어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기보다 수능식으로 국어를 접근하는 방식, 즉 세부적으로 문학, 비문학등 분야별 글을 접근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기본 개념서라고 생각합니다. 중2 겨울방학, 아이는 “선생님 강의가 재밌다”며 노래도 부르고 집중력을 잡기 위한 선생님의 노력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럼에도 고등 국어, 특히 수능 국어는 정말 복잡하더군요. 내용의 복잡함뿐만 아니라 공부 교재도, 방법도, 강의도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니 선택을 하기도 정말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더욱 난감한 것은 지금까지 '기본'은 했던 고등 내신이나 수능 국어의 구멍이 이 시기에 많이들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방식은 많고 다양한데 이 구멍이 도대체 언제부터 생긴 것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찾아 해결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러서 고등에 들어와 발견된 국어의 구멍은 채우기 어려우니 초등, 중등 때 미리미리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국어는 아주 서서히 오는 과목이기 때문입니다. 티도 안 나고, 성적을 올리는 특별한 방법이나 정답도 없습니다. 이 방법이 맞는가 싶다가도 내신에는 적용하기 어렵고, 강사마다 접근법이 다르니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무엇 하나 확신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능 국어는 집을 팔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 듯합니다.
이 글을 수능도 끝나기도 전에 쓰는 이유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국어를 시험으로만 접근하기엔 너무 늦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학, 탐구, 영어 등 공부해야 할 과목이 산더미인데 국어도 갈피를 못 잡으면 아이는 정말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미리 우리 수험생의 동생들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국어는 장기전이다.”
우리 동생들. 초등학생이라면, 책을 많이 읽으세요. 물론 내신 성적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지금 당장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글을 이해하는 능력은 모든 과목의 바탕입니다.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꼭 필요한 능력입니다. 게다가 바뀐 고교학점제에서도 이 능력은 핵심이 될 겁니다. 그리고 글쓰기. 고등 가서는 절대 새로 시작할 수 없습니다. 글쓰기는 입시뿐 아니라 평생의 자산이 됩니다. 또한 학원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나 자신을 혹은 자녀를 최대한 심심한 상태로 만들어 두시길 추천드립니다. 심심해야만 머리가 생각이란 것을 하고 생각에 도움이 되는 직, 간접 경험을 하려고 들기 때문입니다. 즉, 아이의 스케줄 가지치기를 해야 합니다. 최대한 심플하게, 최대한 심심하게.
이제 중학생이라면, EBS 국어 강의로 시험에 대비하기 위한 ‘접근법’을 배워보세요. 국어를 ‘대충 봐도 되는 과목’이라 여긴다면, 또는 국어 공부의 비법만 좇다가는 시간만 잃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단 몇 달 만에 1등급이 되는 비법 같은 것은 없습니다. 살을 빼려면 식단과 운동이 기본이듯, 부자가 되려면 절약을 하고 소득을 늘려야 하듯 국어 공부도 글을 읽고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것에 맞추어 시험 문제에 접하는 꾸준한 연습만이 핵심인 것입니다.
고등에 들어와 국어 공부는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을 못 잡겠다는 글을 많이 봅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 시작하면 좋은 것들에 대한 글을 짧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더불은 이제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수험생 여러분껜, 그저 후회가 남지 않을 마지막 최선을 다하길, 수험생 학부모 중 한 명으로 그저 조용히 기도합니다. 한 달 남짓 남은 이 시점에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 중 하나는 새로운 문제집을 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푸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해 온 나만의 방식에서 약간의 변형정도만 해야 합니다. 다 바꾸는 것 옳은 선택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왜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날짜는 다가오지 공부 성적은 오르지 않지. 가장 불안한 때일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정성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짝 잠시한 노력은 환하게 빛나는 듯 보이지만 곧 사라지고 맙니다. 지난 일 년 동안 꾸준히 한 노력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은은한 빛으로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 은은한 빛을 바라보며 곧게 뻗어 나아갑시다. 그리고 곧 우리 눈앞에 나타날 터널의 끝을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마주합시다. 끝나지 않을 듯 여겨졌던 긴 터널이 이제 곧 끝이 납니다. 우리 32일만 더 힘을 내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