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엄마의 역할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카페에서 눈물 콧물 쏙 빼다 서로 민망해 웃었던 사연이 있어요.
저희 아이는 현재 재수 중이고, 그 집 아닌 대학교 1학년이거든요. 아이들 초등학교 때부터 만나던 사이이니 이제 웬만한 사정은 서로 알게 모르게 존중하며 알면서도 모르는 척, 모르면서도 아는 척. 그렇게 아들 친구엄마에서 몇 발자국 가까운 사이이지만 또 예의를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이입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 집 아이는 현재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집에 자주 올 수 없는 거리이기도 하고 아이가 차가 있을 리도 없으니 엄마가 가끔 주말에 가거나 아들이 미리 언제쯤 가겠다 하면 엄마가 데리러 가거나, 버스를 타고 오는 식으로 3,4월을 보냈다 봐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전화를 해서는 "엄마, 나 내일 집에 가도 돼?"라고 묻더랍니다. 그런데 그분도 직장인이고 하다 보니 주말 스케줄이 있었나 봐요. 아들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의도하지 않게 "그럼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라는 반응이 나와버렸던 것이지요. 그 말을 하고 풀 죽어 "알았어"라고 대답하는 아이의 반응에 바로 후회를 했고, 엄마가 일정이 있어 데리러 가지 못하는데 오고 싶다 하니 순간 당황을 해서 그런 반응이 나왔다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언니가 잘못했네~ 아들한테 사과해야겠네"라고 말하고 둘이는 한참을 울었답니다. 크지 않은 카페 안이라 옆테이블에서 두 중년 아줌마의 웃으며 우는 모습이 다 보였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지요.
저희 집 아이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했어요. 한 달에 한번 외출을 하는데 그 날짜가 정해져 있으니 엄마는 아이가 나오지 않는 주말엔 엄마만의 일정으로 하루를 꽉 채우곤 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가 집에 오고 싶다거나 하면 미리 세워 두었던 계획했던 일정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아이의 그 허락을 구하는 말이요. 그게 너무 미안한 거예요. 자기 집인데. 엄마한테 집에 가도 되냐고 묻게 만든 엄마라는 사실이 말이에요.
그래서 그 집 엄마랑 둘이 계속 울었어요. 언니도 나도 나쁜 엄마라고요. 왜 아이들이 자기 집에 오는데 눈치를 보게 만드냐면서 말이지요.
집은 오고 싶은 장소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이 오고 싶은 장소여서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제 막 더 큰 사회에 나가 갑자기 집이 그리운데, 또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은데, 엄마가 그렇게 말을 하면 아이는 어디에서 쉬어야 할까요. 어디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런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물론 그 지인은 바로 언제든 오고 싶으면 오라고 바꿔 말을 했다고 해요. 집은 엄마 허락받지 않고 언제든 올 수 있는 장소라고 말이지요.
이렇게 집의 의미를 되새길 때면, 문득 저의 마음을 처음으로 흔들었던 과거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희 아이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를 본 날 오후였습니다. 아이가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덩치는 산만한 남자아이였지만 울먹이는 아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에 큰 돌덩이가 떨어진 듯 주저앉았다가 시험을 너무 못 봐서 죄송하다며 애기처럼 꺽꺽 우는데 어찌나 귀엽고 예쁘던지요. 시험을 못 봤다고 우는 아이가 나에게 전화를 해줘서 너무너무 감사했거든요. 또 전화기도 없고 한 달에 한번 집에 와 겨우 두 밤 자고 가는 아이가 긴 공중전화 줄을 기다려 전화를 건 사람이 바로 저여서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그때까지도 저는 아이의 꼼꼼하지 못한 계산실수에도 버럭버럭 화를 내는 한참 모지란 엄마였는데 말이지요. 그런데도 생각나는 사람이 엄마라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그날도 한참을 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 공중전화를 받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적어도 가장 힘들 때 전화하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로운 아이로 키우지는 말자고 말입니다. 제가 잘나서 그런 생각이 든 것이 아니라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을 보며 인간적 연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너도 참 힘들겠다고 말이지요.
그날부로 제가 살짝 철이 들었습니다. 시험을 못 봐도, 수행을 망쳐도, 아이가 너무 예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시험이 무슨 대수겠냐 싶었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힘든 사회생활에서 아무 조건 없이 드러눕고 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유일한 둥지가 없는 아이는 그 드넓은 창공에서 계속 날갯짓을 해야만 하는 거잖아요. 아이는 잠시 날갯짓을 쉬고 넓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편하게 눈 붙일 장소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야 다시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이가 힘들 때, 쉬고 싶을 때, 마음이 불안할 때 생각나는 사람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러나 저는 또 알아요. 이제는 엄마를 찾는 횟수가 훨씬 더 많이 줄었음을요. 아이도 조금씩 마음 근육에 굳은살이 생기는 중인가 봐요. 그래서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이런 말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찾아줘서 감사하고, 덜 찾아주어 감사하고, 그런 마음이 엄마마음인가 보아요.
수능이 이제 25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정말 수능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작년 그 낯선 고등학교 교문에 매달려 내 아이 얼굴이 보이길 간절히 바라던 어두 컴컴했던 그날이 떠오릅니다. 집에 돌아와 정답을 맞히고 펑펑 울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지금도 가슴이 저려요. 지금은 그저 두 손을 간절히 모아 기도를 올려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여야지
신께서 주신 '엄마'라는 그 역할에만 충실해야지
그저 아이가 쉴 수 있고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의 노릇에만 전념해야지
다가오는 날짜에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오늘은 집이란 무엇인지, 엄마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수험생과 학부모님 모두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