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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유목민, 낯선 땅에서 시작되다

나의 운동 역사 3 - 필라테스에서 줌바까지, 새로운 시도들

by 민송


낯선 땅에서, 운동 유목민의 탄생

6월 말. 남반구의 시드니. 낯선 환경에 몸도 마음도 너무나 추웠던 나의 2014년의 겨울. 결혼 6개월 만에 화려했던 두바이 생활을 끝내고, 남편이 있던 호주로 떠났다. 남편 외엔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새로운 나라. 나는 그곳에서 내 인생의 다음 챕터를 쓰기로 했다. 그때의 나는 무모하기도 용감하기도 했고, 때로는 소심해지기도 했다. 8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때려치웠으니 일단은 좀 쉬어보자. 오랜 비행 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먼저 돌보는 일, 그게 나의 급선무였다.


적어도 반년은 백수의 여유를 즐기리라 다짐했건만, 그것도 하루이틀이었다. 점점 무료해졌고, 자연스럽게 운동으로 눈길이 갔다. 당시 남편이 석사과정을 하고 있던 학교에 제법 큰 체육관이 있었다. 수영장도 있었고 필라테스, 요가, 줌바 등 운동 클래스들이 무척 다양했다. 두바이에선 매달 바뀌는 스케줄 때문에 배우고 싶었던 걸 제대로 해볼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이 때다.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보는 거야.' 매일 아침 남편을 따라 학교로 가서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책도 읽고 공부를 하다가, 시간이 되면 운동을 하러 갔다.




아무것도 모르고, 필라테스를

기구를 이용한 필라테스가 있다는 것도 몰랐을 시절. 매트에서 하는 운동이라 막연히 요가와 비슷할 거 같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유연성이 없는 편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호기롭게 도전했건만, 힘이 든 건 둘째 치고, 아예 자세 자체가 불가능한 것도 많았다. 근육이 없었던 건지, 근육을 사용하는 방법을 몰랐던 건지, 아마도 둘 다였겠지. 용을 써도 움직여지지 않은 내 몸에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한 번의 클래스로 확실히 깨달았다. '나는 근력이 부족하구나'. 지금 생각하면, 숙련자들 틈에 들어간 게 잘못이었다. 나만 빼고 모두 플랭크도, 푸시업도, 크런치도 거뜬히 해내었으니까. 하지만 그룹 수업은 원래가 개인의 수준과 컨디션에 맞추어 갈 수 없는 법. 그렇게 나의 첫 필라테스는 안 좋은 기억으로 끝이 났다.


요가는 맞을지도 몰라

필라테스로 겁을 잔뜩 먹은 나는, 이번엔 경험이 있는 요가 수업을 신청했다. 항공사 시험 준비를 하며 새벽요가를 다닌 적이 있었고, 두바이에서도 간간히 요가를 하러 가기도 했으니, 크게 어렵지는 않을 거야, 내심 기대를 했다. 수업 스타일이 달라서 초반엔 다소 낯설었지만, 플로우는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었다. 완벽한 동작은 아니었지만, 애를 쓰니 비스무리하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고개와 상체를 숙이는 동작을 많이 하고 나면, 어지럽기도 하고 속이 매쓱거렸다. 동작을 하며 호흡에 집중하기보다, 얼마나 남았나 시계를 힐끗 쳐다보기를 여러 번. 요가도 나에겐 딱 맞는 운동은 아닌 것 같다.


몸치 박치, 줌바에 도전하다

익숙했던 정적인 운동부터 시도해 보았지만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아예 다른 스타일로 고개를 돌려보자. 라틴 댄스와 근력운동의 콜라보라니. '줌바'에 혹 했다. 사실 나는 몸치다. 리듬이나 박자 감각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흥도 도통 찾아보기 힘들지만, 춤이 아닌 운동으로 접근해보자 싶었다. 혹시라도 내 안에 꼭꼭 숨겨져 있던 끼가 나올지도 또 모를 일이고. 쭈뼛쭈뼛 줌바 교실에 들어선 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지나, 맨 뒤로 가서 섰다. 앞에서 최대한 안 보이도록 말이다.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니, 사람들의 옷차림과 텐션이 심상치 않다. 그때 에너지 레벨이 남다른 금발의 여자가 들어온다. 딱 봐도 줌바 선생님이었다.


수업은 템포가 살짝 느린 음악에 맞추어 스트레칭으로 시작했다. 이 부분이 참 색다르게 느껴졌다. 음악에 맞춘 스트레칭이라니. 몸도 마음도 개운해진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다시 깨달았다. 역시나 나는 박자치, 몸치, 그리고 기억력치였다. 몇 번을 따라 해도 다음 동작이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러니 자꾸 박자를 놓치는지도 모르겠다. 이국적인 라틴 음악 속에서 내 몸은 길을 잃고 헤매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나게 몸을 움직이고 나니 기분이 좋았고, 신나는 음악은 나의 하루를 끌어올려주었다. 중독적인 구절은 온종일 내 입에 붙어있기도 했다.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생겼다. 텐션이 남다른 선생님은 수업 끝 부분이 되면, 수강생들을 한 명씩 무대로 불러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생님 옆에서 같이 한 곡을 추게 했다. 나는 이게 너무 싫었다. 나도 올라오라고 할까 봐 떨렸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겠지만, 나는 거부감이 심해졌고, 결국 스트레스에 두 손을 들고 나와버렸다. 안타까웠지만, 그렇게 줌바와도 작별을 고했다.


다시 필라테스 그리고 SNPE

다시 필라테스다. 첫 경험을 그렇게 끝내고, 어떻게 엄두가 낫냐고? 남편의 지인을 통해서 한국인이 하는 소그룹 필라테스 수업을 소개받았다. 3~4명이라 지난번처럼 대규모 그룹 수업이랑 많이 다를 거 같았다. 그리고 초보라고 했으니 어느 정도는 맞춰주실 거라 예상했다. 이때 처음으로 SNPE라는 운동을 알게 되었다. 필라테스도 올바른 몸의 정렬에 초점을 맞추고 근력을 강화하는 운동인데, SNPE 역시 체형교정운동이라고 한다. 벨트 같은 도구를 착용하고 동작을 하면서 좌우 밸런스를 맞추고, 몸 본연의 자세를 이끌어 낸단다. 단순해 보이긴 하나, 일단 해보면 몸이 마음만큼 절대 움직여지지 않는다. 필라테스와 SNPE를 접목한 운동을 주 2회 꾸준히 다녔다. 틀어진 몸이 많이 교정되었는지 오랜 고질병이었던 허리 통증이 줄었고, 전체적인 컨디션도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선생님의 개인사정으로 더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드디어 운동의 끝판왕 PT

또다시 운동을 기웃거리다가, 이번엔 큰 마음을 먹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던 PT에 도전해 보기로. 제대로 한 번 배워놓으면 평생의 자산이라고 스스로 정당화를 하며, 상담을 받고 등록했다. 처음으로 제대로 된 근력 운동을 배워보는 시간. 떨렸다. 기구를 사용하기도 하고 맨몸 운동도 했다. 당연히 힘들었다. 헬스장에서 단순히 유산소만 할 때랑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고 땀이 났다. 매번 정말 힘들었지만, 매번 또 뿌듯했다. 피티 후 따라오는 근육통은 '내가 제대로 몸을 잘 썼구나' 하는 보람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이렇게 근력 운동에 재미를 부치나 했는데, 이 또한 등록한 횟수를 다 채우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내 뱃속에 작은 천사가 찾아왔으므로.





나는 이제 생활운동자

글로 쓰다 보니 호주에서 정말 다양한 운동을 시도해 보았다. 그야말로 운동 유목민이었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 인생 운동을 찾긴 했냐고? 그렇다. 나는 여러 가지 운동을 거치며 내 인생 운동을 찾았다. 하지만 인생 운동은 단 하나일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직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운동들이 있고, 또 새로운 운동들이 계속 생기기도 한다. 지금의 나에게 잘 맞는 운동과 맞지 않은 운동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이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필라테스가 그랬고, 달리기가 그랬다. 요가나 줌바도 어느 날 인생 운동이 되어 다시 나를 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운동 유목민으로 시작한 나는 이제 생활 운동자가 되었다. 새로운 운동이나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에도 여전히 호기심이 생긴다. 나는 잘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늘을 잘 살고 싶어서 움직인다. 움직일 수 있어 감사하다. 그렇게 나의 인생은 여전히, 달리고 있다. 반려 운동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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