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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은 완벽함이 아니라 용기

나의 운동 역사 2 - 다시 시작하는 법

by 민송


두바이, 나만의 루틴을 만들다

다시 살찌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일 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는 운동을 해야 했다. 밤낮이 바뀌는 비행과 매달 달라지는 스케줄 속에서 지속할 수 있는 운동이란 참 제한적이었다. 6개월마다 돌아오는 리저브의 한 달 동안은 더더욱, 아무 계획도 세울 수 없었다. 집이든 회사든 스탠바이를 하다가 콜이 오면 한 시간 안에 바로 출동해야 했다.


그땐 정말 가방 하나로 살았다. 어느 계절, 어떤 나라로 불려 갈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캐리어 안에는 내 일상의 리듬이 모두 들어 있었다. 사계절 옷, 기본 세면도구, 그리고 운동화와 운동복이 늘 한편을 지켰다.


두바이에서 요가 클래스도 들어보고 친구와 근처 수영장도 가보았지만, 불규칙한 스케줄에도 그나마 지속할 수 있었던 건 '혼자만의 운동'이었다. 숙소든 호텔이든, 눈을 뜨자마자 헬스장으로 향했다. 어디에 있든 나의 하루는 공복 유산소 한 시간으로 시작했다. 주로 트레드밀에서 빠르게 걷거나, 스탭퍼나 크로스 워킹으로.


나도 탄탄한 몸매의 다른 언니들처럼 멋지게 근력 운동을 해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 당시 소심했던 성격으로는 도움을 청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저 '뭐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유산소 운동에 집중했다. 그것만으로도 개운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고, 나는 무척이나 만족했다.



우울과 함께 무너진 일상

비행 시작 후 찾아온 첫 번째 이별은 나에게 큰 타격이었다. 두바이에 온 뒤로 줄곧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향수병은 나약함의 인정 같아서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잘 다독이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믿고 있었다.


그러던 내게, 타지에서의 헤어짐은 모든 무너짐의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건강하게 유지하던 식단이 무너졌고, 뭔가 모를 허기짐에 아이스크림과 쿠키를 한통씩 먹어치웠다. 자연스레 컨디션은 급격히 떨어졌다.


몸이 무거워졌고, 마음은 더 무거워졌다. 비행이 아닌 외출은 점점 줄어들었고, 가끔 있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피하게 되었다. 운동 루틴도 사라졌다. 방 안에 틀어박혀, 무기력하게 변해가는 자신을 조용히 미워했다.


그렇게 유니폼 사이즈도 달라졌다. 사이즈 6과 14의 간극은 제법 깊었다. 유니폼을 다시 맞출 때, "출산 휴가를 다녀왔냐"는 오해를 들을 만큼. 변한 내 모습이 정말 싫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다시 시작하기, 그 보다 더 어려운 용기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땐 기대와 설렘이 가득하다. 그때의 고민은 단 하나, "이걸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로 갈수록 걱정과 두려움이 두터워진다. "다시 실패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끝까지 해 낼 수 있을까?"


이럴 때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보다 용기였다. 나를 믿고 다시 나아가보려는 마음은 그 용기에서 비롯된다.


침전의 시간 동안 나는 마음과 심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의 실마리를 책에서 얻었다.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나를 이해했고, 그런 나를 토닥이자,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어렴풋이 보였다.


옷장을 뒤적거리며 울퉁불퉁해진 몸을 최대한 커버할 수 있는 운동복을 찾아냈다. 그리고 새벽 6시, 헬스장으로 향했다. 공복 유산소를 다시 시작했고, 아이스크림과 쿠키 대신 건강한 음식들로 냉장고를 채웠다.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두 번째 시작은.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일기를 통해 나와 진심으로 대화했다. 스스로 부끄러워 숨고 싶을 때마다, 그래도 나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간신히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예전보다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보였다.



꾸준함의 진짜 의미를 배우다

꾸준함은 완벽한 이어짐이 아니다. 살면서 루틴이 무너지는 이유는 수천수만 가지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걸 누가 피해 갈 수 있을까.


루틴에 집착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어느새 강박으로 변한다. 소심한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일기가 좀 밀리면 금방 새 일기장으로 바꾸고 싶었고, 운동을 몇 번 빠지면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중간에 멈춰 서버린 내가 또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나를 몰아세웠다. "왜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추궁하고 비난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친구들의 힘듦엔 그렇게 공감하고 다독이던 내가, 정작 내게는 한없이 냉정했다는 걸. 아픈 모순이었다.


그때부터 의식적으로, 타인을 대하듯 나를 대했다. 나에게도 예의를 갖추기로 했다. 내 마음에 더 귀 기울였고, 그게 뭐든 폄하하지 않았다. 토닥이며 위로했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소중한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긴 터널을 빠져나오며 알게 되었다. 별거 아닌 일이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도해 보는 건, 생각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걸. 그리고 자신의 민낯을 마주 보고 다시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세상에 못할 일은 없다는 걸.



그럼에도, 나는 다시 시작한다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따고도 강사일을 제대로 시작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스피닝을 하다가 가슴 통증으로, 팔목 부상으로 몇 주간 쉬어야 했을 적도 있었다.

식단이 무너져 7킬로가 쪄버린 지금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 말할 수 없다. 여전히 흔들린다.

그럼에도 이제 확실한 건, 누가 뭐래도 나는 내 편이라는 걸.

여전히 나는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며 틈틈이 나를 돌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늘 다시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달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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