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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첫걸음, 운동하는 사람이 되다

나의 운동역사 1 - 절실함에서 꾸준함으로

by 민송


생애 첫 운동 : 트레드밀에서의 어색한 첫걸음

한 손에는 노트, 다른 한 손에는 MP3. 어리버리한 얼굴로 쭈뼛쭈뼛 학교 체육관에 들어선다. 넓은 체육관에서 순간 얼어붙었다가, 비어있는 트레드밀 위로 얼른 올라간다. 작동법을 몰랐다. 일단 손에 있던 걸 내려놓고 발목을 돌리기 시작한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눈앞의 버튼들을 스캔하다가 'start' 버튼을 발견했다. 벨트 옆으로 발을 올리고 버튼을 눌렀다. 벨트가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엉거주춤 발을 올려 걷기 시작한다. 발걸음이 서서히 리듬을 타자 속도를 살짝 올려본다.


아무도 안 보는데, 괜히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것만 같던, 운동 왕초보 시절. 20년도 훨씬 전, 캐나다 교환학생 시절의 내 모습이다.


다이어트의 시작

사춘기가 시작되자 호르몬이 바뀌었는지, 살이 급격히 쪘다. 살이 찌니 잠이 많아졌는지, 잠이 많아 살이 찌게 되었는지. 어쨌든 잠도 살도 많았다. 고무줄놀이를 좋아하던, 100미터 달리기를 잘하던 날쌘 나는 사라졌다. 무거워진 몸은 움직이기 싫었고, 체육 시간이 있는 날이면 비가 오기를 바랐다. 살을 빼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어른들은 말했다. "살은 대학 가면 다 빠져." 정말 그런 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서도 그대로였다.


2학년 때 캐나다 현장학습을 다녀온 뒤, 꿈이 생겼다. “외국에서 일하며 살고 싶다.” 내 현실에서 그나마 가능할 법한 일이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영어, 외모, 그리고 체력. 나는 교환학생 준비에 매진했고, 합격했다. 앞으로의 목표가 분명했다. 영어 실력을 끌어올리기. 그리고 다이어트.



꾸준함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하다

교환학생 생활은 생각보다 버거웠다. 교수님 말은 다 알아들을 수 없었고, 칠판의 필기체는 암호 같았다. 교재를 읽어내기에도 내 영어 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점심도 도서관에서 해결하기 위해 매일 잡곡빵에 딸기잼을 발라 들고 다녔다.


수업을 녹음해 들으며 노트를 정리하고, 그 노트를 들고 학교 체육관으로 갔다. 운동이란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나는 그냥 걸었다. 트레이드밀 위에서, 스텝퍼에서. 발로는 걷고 머리로는 외웠다. 집에 돌아오면 잠자기 전, 홈트를 했다. 스마트폰도 없었던 시절, 잡지에서 찢은 페이지를 보며 따라 했다. 크런치와 레그레이즈 같은 맨몸 운동. 자세가 맞는지 틀린 지도 몰랐다. 그냥 매일 했다.


너무나 간절했던 나는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미친 듯한 영어공부와 어설펐지만 꾸준한 운동뿐이었다. 그렇게 10개월 뒤, 나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승무원 준비는 곧 체력단련

교환학생이 끝나고 한국 학기가 시작할 때까지 두어 달이 남았다. 마음 같아선 캐나다에서 휴식을 즐기고 여행도 하고 싶었지만 나에겐 사치였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있으니, 본격적으로 승무원 준비를 해야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부산에 있는 학원에 등록했다. 매일 왕복 세 시간이 넘는 통학. 힘들 줄 알았는데, 전혀. 그동안 운동으로 쌓인 체력 덕에 버틸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집 근처 호수 공원을 걸었다. 발목에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었다. 입으로는 영어 인터뷰를 중얼거리면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번엔 수영이다

복병은 수영이었다. 승무원의 필수 조건. 비상사태에 대비하려면 꼭 필요한 능력이지만, 나는 물 공포증이 있었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강습을 등록했다. 무서웠다. 재미도 없었다. 그저 깡으로 버텼다. 허우적거리며 물을 많이도 먹었다. 배가 부를 지경이었으니.


수경을 끼고도 눈도 못 뜨고, 코로는 물이 들어와 매캐했고, 귀는 늘 멍멍했다. 고개를 물속에 넣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고요.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지만 자유형만이라도 꼭 마스터해야 했다. 결국 자유형을 해냈다. 배영도 해냈다. 평영을 배우다가 그만두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수영은 하지 않았다.



절실함으로 꾸준함을 배우다

그때부터였다. 목표가 생기면 뒤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나. 간절함으로 시작한 운동은 나에게 꾸준함을 가르쳐주었다. 살을 빼고 승무원이 되어야지 하는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했다. 트레이드밀, 스탭퍼, 홈트, 걷기. 어설펐지만 매일 반복했던 그 운동들이 지금 내 몸과 마음 근력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수영장에서 허우적대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나를 계속 도전하게 만든다.


운동은 단순한 몸매 관리가 아니었다. 목표를 향한 과정, 포기하지 않는 힘이었다. 덕분에 나는 달리기 시작했고, 오늘도 운동하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오래오래 달리고 싶다. 달리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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