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시작하는 법
'달려볼까?' 생각한 순간, 귀신같이 알고리즘이 알아챘다. 초보 러닝 가이드, 초보를 위한 러닝화, 런린이 필수 아이템, 주의사항까지. 각종 러닝 컨텐츠의 향연이 펼쳐졌다. 영상들을 보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마음만은 완벽한 러너가 되어 있었다. 단지 달리기만 안 했을 뿐. 정보만 쌓여갔고 정작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진다. 기본 장비는 갖춰야 할 것 같고, 시작도 하기 전에 부상이 걱정된다. 무엇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냥 하던 운동이나 계속할까.
우리가 달리기를 시작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힘들까 봐? 해낼 자신이 없어서? 장비가 없어서?
결심한 순간, 나도 온갖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려 했다.
'많이 힘들 텐데.'
운동이 원래 그런 거지. 어디 안 힘든 운동이 있나?
'과연 내가 뛸 수 있을까?'
처음엔 조금밖에 못 뛰겠지. 그럼 딱 그만큼만 뛰자.
'러닝화부터 사야 되는 거 아냐?'
계속할지도 모르잖아. 어차피 걷다 뛰다 할 건데, 일단 집에 있는 아무 운동화 신고 뛰어봐.
달리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러닝화를 사는 것도 러닝 영상을 보는 것도 아니다. 바로 '러닝 어플 깔기'. 어플 속, 초보자용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든든한 조력자가 생긴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달려주는 최고의 러닝 코치를 얻는 셈이다. 이제 막막하지 않다. 머리를 굴려 프로그램을 짜거나 검색할 필요도 없다. 이어폰을 끼고 "걷기 시작합니다." 하면 걷고, "뛰세요." 하면 뛴다. 이보다 간단할 순 없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러닝 어플만큼 잘 맞는 코치도 없을 것이다. 내 실력이 어떻든 부끄럽지 않고, 늘 한결같다. 나의 러닝 코치는 단순히 지시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달릴 땐 포기하지 않게 응원해 주고, 걸을 땐 유익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바른 자세, 호흡법, 부상 예방법, 러닝화를 고르는 법, 계절별 유의 사항까지. 팟캐스트처럼 들으며 달리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잘하면 잘한다고 칭찬해 주고, 힘들 땐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준다. 혼자 달리고 있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와치가 없어도 휴대폰에 어플 하나만 있으면 된다. 심박수만 빼고 모든 기록이 남는다. 처음엔 시간과 거리 외엔 관심이 없었지만, 달리다 보니 페이스와 케이던스에도 눈이 간다. 달리는 건 여전히 힘들다. 하지만 거북이처럼 느리던 속도도 조금씩 빨라지고, 그 작은 변화가 또 달릴 힘이 된다. 더디지만 꾸준히 나는 나를 단련하고 있고, 나의 러닝 역사는 어플 속에 쌓이고 있다.
운동은 힘들다. 힘든 게 맞다. 우리 몸은 편안함을 원하고, 더 큰 편안함을 갈망한다. 운동은 그 편안함에서 불편함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숨이 넘어갈 듯 차오르고, 금세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평소와는 다른 움직임으로 안 쓰던 뼈마디는 삐걱대고, 온몸이 땡기고 아프다. '힘들어, 그만해.' 이렇게 달리기가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마이클 이스터의 문장이 떠올랐다.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우리의 자연스러운 동작들과 신체 능력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다. 의식적으로 불편함을 감수하고 목적 있는 운동을 하지 않는다면, 즉 편안함이 점점 우리의 삶에 침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밀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갈수록 더 약하고 병든 존재가 될 것이다.
마이클 이스터, [편안함의 습격] p.395
처음엔 주 3회만 달리자 했다. 그런데 재미가 붙어 주 4회가 되었다. 달릴 땐 숨이 차고 힘들지만, 시원한 바람이 피부에 닿거나 밤하늘 달이 너무 이쁜 순간이면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뿌듯함이 남았다. 이래서 다들 달리기에 빠지는구나 싶었다. 운동 횟수를 더 늘리고도 싶었지만, 부상 걱정에 스스로를 '워워' 했다. 나는 오래 계속 달리고 싶으니까.
그러다 하루는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쉬지 않고 쭉 달릴 수 있는 시간은 몇 분이나 될까?" 그래서 어플 코치의 "천천히 걷기"를 살짝 무시하고 계속 달렸다.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어라 계속 달려진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 결국 25분 완성. 세상에, 내가 25분을 달리다니. 이대로면 5킬로도 가능하겠다.
나도 이제, 달리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달린다. 완벽하진 않아도,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나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