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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깥을 달리겠어요

달리기엔 이런 밤이 제격이다

by 민송


얼마 전까지만 해도 눅눅했던 밤공기가,

이제는 쌀쌀하다 싶을 정도다.

탁 트인 밤하늘.

그 속에 달 하나, 그리고 반짝이는 별들.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과

오고 가는 사람들의 바이브.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는 시간,

달리기엔 이런 밤이 제격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오늘도 바깥으로 이끈다.



‘러닝’ 하면 흔히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모습이나, 길 위를 달리는 사람을 떠올린다. 이처럼 장소에 따라, 달리기는 실내와 실외로 나뉘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 종류가 있다. 공원이나 산책길을 달리는 로드 러닝, 운동장이나 트랙에서 달리는 트랙 러닝, 산과 숲길을 달리는 트레일 러닝까지. 나도 달리고 나서야 이런 세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달리기는 트랙 러닝과 트레일 러닝이다. 트랙 러닝은 일정한 코스와 충격을 덜 주는 바닥 덕분에 야외라도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달릴 수 있다. 반면, 트레일 러닝은 불규칙하고 예상치 못한 자연에서 달리기 때문에 높은 난이도를 자랑한다. 근력과 균형감각을 키우기 좋고, 다이내믹한 재미에 마니아층이 많다고 한다.


사는 곳 근처엔 트랙도 없고, 아직 산에서 뛰어다니는 건 엄두가 안 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이런 러닝들도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는 달리기는 분명 트레드밀 러닝과 로드 러닝일 것이다. 트레드밀을 가끔 달리던 나는 러닝 혐오자였고, 지금 길 위를 달리는 나는 러닝 애호가가 되었다. 달리는 장소가 달라지면 러닝의 결도 달라진다. 어떤 이유로 나는 지금 바깥을 달리고 있을까.


실내 러닝의 장점은 분명하다.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든 내가 원하면 달릴 수 있다. 운동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다. 고정된 표면이 주는 안정감이 있고, 페이스 조절이 편리하다. 경사 또한 원하는 대로, 컨디션이나 운동 목적에 따라 세팅할 수 있다. 그래서 올바른 자세를 익히고 부상을 예방하기 위해서 초보자들에겐 트레드밀 러닝이 권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건 바로 지루함.


아무리 좋아하는 드라마나 예능을 틀어놓고 달려도,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강사 프로필 촬영을 위해서 헬스장에서 공복 유산소를 했던 적이 있었다. 4분 걷고 6분 뛰고 인터벌 달리기를 했는데, 뛰는 6분이 마치 60분 같았다. 숨이 차는 것도, 지루함을 참는 것도 힘들어서 결국 뛰는 건 포기했다. 그냥 오래 걸었다. 먹는 걸 줄이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뛸 바엔 차라리 식단을 조절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생각할 정도로 나는 러닝이 싫었다.


로드 러닝은 정확히 반대다. 변수가 아주 많다. 날씨에 제약을 가장 크게 받는다. 운동복을 입고 나갔더라도 비가 오면 달릴 수 없다. 이슬비 정도는 괜찮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시야 확보도 어렵고 호흡도 쉽지 않다. 게다가 젖은 도로는 미끄럽고, 곳곳의 물웅덩이는 위험할 수 있다.


로드 러닝의 트랙인 도로 역시 참으로 불규칙하다. 보도블록이 일정하게 깔려 있지 않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단차가 있는 곳도 많다. 이런 가능성을 계속 염두에 두고 달려야 부상을 피할 수 있다. 게다가 맞은편에 오는 사람들, 앞질러야 하는 보행자,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 신이 나서 달려드는 강아지까지. 러닝 중엔 장애물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그래서 로드 러닝에서는 집중력이 필수다. 내 호흡과 페이스, 리듬과 자세를 신경 쓰면서도 외적인 변수에도 끊임없이 반응해야 하니까. 마이클 이스터의 [편안함의 습격]에서는 야외 운동의 이점을 인류학자 라이클렌의 주장을 통해서 보여준다.



"헬스장에서 하는 유산소 운동은 확실히 심혈관 계통을 자극하며, 이는 뇌에도 이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체가 가장 적합하게 적응한 운동 방식일까요? 사람들을 야외에 내놓으면, 그래서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로를 뛰면, 길을 잘 찾아가는 일, 어디서 멈추고 속도는 어떻게 잡고 어디서 꺾을지를 결정하는 일 등등 온갖 인지적 과제가 추가로 따라붙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뇌보호와 기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라이클렌은 주장한다. 뇌가 더 똑똑해지고, 더 빨라지고, 병에도 덜 걸린다는 것이다.
p.357



내가 달리기에 푹 빠지게 된 이유도 아마 이런 변수들 덕분일 것이다.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환경 덕에 달리다 보면 시간이 정말 금방 간다. 변수에 대처하는 그 순간순간이 재미다.

좌회전 깜빡이를 넣은 차를 마주하면 속도를 늦출지, 빨리 지나갈지를 판단해야 한다. 앞서 걷는 사람을 앞지를 때도 어느 쪽으로 붙을지 즉각 결정한다. 코너를 돌 땐 속도를 살짝 늦추고, 오르막에서는 코어에 더 힘을 주고 상체만 앞으로 살짝 기울인다. 이 모든 게 나에겐 즐거움이다. 운동이 재미있으면 이미 게임은 끝이다.


야외 러닝은 트레일 러닝만큼은 아니지만 자연을 느낄 수도 있다. 계절에 따라, 그리고 날마다 달라지는 공기와 하늘, 바람, 나무. 매일이 같을 수가 없다. 이 변화 속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해방감이 든다.


나는 주로 내가 좋아해서 정한 같은 코스를 달린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디로든 달려 나갈 수 있다. 내 의지에 따라 코스가 바뀌고, 새로운 풍경이 열린다. 해방감과 함께 지루할 틈 없이 달릴 수 있는 것. 그게 로드 러닝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달리기 시작하면 심장이 점점 빨리 뛰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생각이 많은 날도 있지만, 신나게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엔 발바닥의 리듬만 남는다. 그때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면 - 그 순간, 나는 완전히 자유다.


그날 하루가 어땠는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저 '내가 나로 존재하는 느낌'만 남는다. 모든 게 용서되고, 마음은 가벼워진다. 달리기 끝에 남는 건 기록도 있지만 회복도 있다.

이 해방감과 개운함으로, 나는 오늘도 달리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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