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나 부담될까 미리 연락 못하고 수능 날 맛있는 거 먹으라고 쿠폰을 보낼까 고민 중인)
2024년 11월 주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2019년 수능 전 주 토요일.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나.
유치원임용시험(정확한 명칭: 공립 유치원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은바로 수능 전 주 토요일에 치러진다.
남편의 말 한마디로 성한 동아줄이라 믿고 다시 시작한 임용시험. 지난 19년 6월 추시포함 벌써 4번째 도전되시겠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
시험준비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다 마음을 놓아버렸던 둘째가 찾아왔다. 타이밍 무엇? 10월 출산 후 한 달 만에 시험장 분위기만 느끼고 왔다.
둘째 백일 지나고부터 다시 책을 펼치며 재수생활 돌입했으나 4점 차로 1차 합격 실패. 젖병을 거부한 둘째 덕에 모유수유하며 한 수험생활이니 선방했다며 토닥토닥해 준다. 멘탈 지켜.
그리고 들려온 추시소식에 신이 주신 기회라며 희번덕. 다른 지역이었다면 합격점수인데 아쉽게도 0.34 차이로 다시 불합격. 좌절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네 번째 도전하는 시험 날, 새벽공기는 역시나 차갑다.
N수생답게 얇은 옷을 겹겹이 입고, 손이 굳으면 안 되니 핫팩을 필수로 챙긴다. 임용시험은 1교시 교직논술, 2교시 교육과정 A, 3교시 교육과정 B로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적절한 수준의 기분 좋은 혈당을 유지하기 위한 초콜릿, 까먹기 쉽고 소리 나지 않게 먹을 수 있는(수험생은 예민하니까) 귤 서너 개, 카페인 빼놓을 수 없으니 병마개 있는 편의점 커피도 쟁인다.(시험 보는 중간 화장실 이슈 없도록 한입씩만)
아이들은 자고 있는 시간이라 시험장 가는 길은 남편이 함께 한다. 라디오 속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시답잖은 농담을 가벼이 나누며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어본다.
ㅇㅇ고등학교 정문에 시험플래카드가 날린다. 남편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힘차게 교문을 들어선다. 수험표를 확인하며 시험 볼 교실과 내 자리를 찾는다. 처음도 아닌데 혹시나 내 응시번호 없을까 봐 순간 조마조마한다. 있네 내 번호, 안심하며 가방을 풀고 다음 코스는 화장실 점검. 아무래도 여자수험생이 많다 보니 쉬는 시간 화장실은 전쟁터이므로 위치 및 위생상태를 미리 파악하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이날만큼은 남자화장실도 여자화장실 표시가 붙어있으므로 당황하지 말 것.
가장 긴장되는 시간은 1교시 시작 전. 그동안 공부했던 자료 중 엑기스만 모아 온 것들을 눈으로 계속 보고 있지만 생각보다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것은 글자인가 까만 콩인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내쉬고, 달달한 편의점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것으로 의식을 마친다.
1교시가 시작되면 게임 끝이다. 3교시까지 집중하여 모든 것을 쏟아내다 보면 어느새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안내방송이 들리고 영혼까지 탈탈 털려 수척해진 나를 발견한다. 제출했던 핸드폰을 받아 북적북적한 시험장을 나온다. 교내의 단풍이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맑은 가을하늘을 바라보며 남편과 아이들에게 전화. 드디어 끝났어! 점심은 얼큰한 짬뽕이 먹고 싶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임고생 카페에 들어가 이번 시험 분위기를 파악하다가 이내 덮는다. 문제 경향이 어땠고
예상 컷부터 이것도 답이 될까 쉴 새 없이 올라오는 새 글들이 1차 합격자 발표일까지 계속될 것이고, 발표날이 되면 무용지물이 될 거라는 걸 아는 N수생이니까.
아파트 입구에 들어서니 놀이터에서 미끄럼틀 타는 초1 첫째, 아빠와 그네 타기 도전하고 있는 25개월 둘째가 보인다. 그리고 눈이 마주친 순간 두 아이가 "엄마다!" 하며 달려온다. 내 품으로.
엄마 이제 공부 끝난 거야? 같이 노는 거야?
얼큰한 짬뽕으로 속을 풀고 우리의 늦가을 나들이를 계획해 본다. 육아맘 수험생 생활을 시작한 뒤로 가족여행은 가을과 겨울에 몰려있다. 이번 가을여행은 아직 단풍이 볼만한 경주다. 신나게 보고 먹고 놀고 오자.
찬바람이 싸늘하게~두 뺨을 스치면~생각나는
2024년 가을 오늘은,
공립유치원교사임용시험일이다. 작년 우리 지역은 선발인원이 0명이었어서 2년 만에 치러지는 시험일.
5년 전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 많은 사연과 투지를 가지고 시험에 응시할 수험생들을 향해 소리 없는 응원을 보낸다.